[서울=뉴스핌] 정광연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의 잇단 압박성 발언에 은행권이 동요하고 있다. 상생금융 강화 방침에는 공감하지만 고금리로 인한 서민고통마저 은행 책임으로 떠넘기는 건 과도하다는 반응이다. 윤 대통령이 언급한 서민금융 공급확대와 관련해서는 금융당국의 방침이 정해지는대로 신속하게 논의한다는 입장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아직 금융당국으로부터 상생금융 확대를 위한 추가적인 지침 등은 받은 게 없다"며 "그동안 나름대로 적극 협조했다고 생각하는데 또다시 원색적인 비판을 받으니 참담하다는 분위기"라고 31일 밝혔다.
은행권을 자극한 건 30일 국무회의에서 나온 이른바 '종노릇' 발언이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31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2023.10.31 pangbin@newspim.com |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참모진이 민생현장을 찾아 청취한 내용을 소개하며 "고금리로 어려운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이 일해서 번 돈을 고스란히 대출 원리금 상환에 갖다 바치는 현실이 마치 은행 종노릇을 하는 것 같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대통령실에서 "현장 목소리를 전달한 차원으로 어떠한 정책과 직접 연결을 짓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며 해명에 나섰지만 당일 주요 은행주들이 하락세를 기록할만큼 파장은 거셌다.
올해 2월 "은행들의 '돈 잔치'로 국민 위화감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발언에 이어 또다시 수위 높은 발언이 나오자 은행권은 답답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이번에 거론된 소상공인·자영업자 대출의 경우 금리 인하(신규 대출)를 비롯해 연체이자 탕감(기존 대출) 등 다양한 지원책을 이미 시행하고 있음에도 마치 부당한 이익을 얻고 있는 것처럼 언급됐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은행 관계자는 "마치 고금리가 은행 탓이라는 소리로 들린다. 기준금리가 3.5%에 달하는 상황에서 도대체 뭘 어쩌라는 건지 답답하다"며 "이미 시행된 소상공인 대출에 대한 금리도 낮추라는 건지, 그렇다면 정부가 인위적으로 개입해 금리를 조정하겠다는 건지 제대로 된 설명조차 없다"고 말했다.
서민지원확대 등 정부의 상생금융 강화 방침에 대한 고민도 크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국회 본회의 시정연설에서 "서민 금융 공급 확대로 고금리 부담을 완화하겠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계획 등은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다.
내년도 서민금융지원 예산은 1조6000억원 규모. 금융위는 이중 7600억원을 소상공인 및 자영업자 채무조정 프로그램에 투입한다는 계획이다. 대표적인 서민금융인 '햇살론15'와 최저신용자 한시 특례보증 예산은 각각 900억원과 1657억원으로 책정됐다.
금융권은 올해 추진한 상생금융 규모는 약 1조1000억원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정부가 지출을 줄이는 '건정재정'을 선언한 이상 서민금융지원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출연금 등 은행권의 협조가 필수적인 상황. 잇단 압박성 발언으로 불만이 폭발한 업권 분위기와는 별개로 결국 은행들이 상생금융강화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다만 일각에서 제시한 초과이익 환수, 이른바 '횡재세' 도입에 대해서는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올해 3월 공개한 보고서에서도 이미 금리 등에 대한 당국 규제가 강한 상황에서 초과이익 규모가 제한적이고 사회공헌 유도를 통한 효과가 더욱 크다는 이유로 도입 필요성을 낮게 평가한바 있다.
여기에 횡재세 도입을 위해서는 관련 법안의 국회통과가 필요한데 현 '여소야대' 정국에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분석이다.
또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인위적으로 시장을 흔들고 개입하는 건 매우 위험하다. 결국 중요한 건 경기회복이다. 경제정책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금융시장 안정을 요구하는 건 어불성설"이라며 "한쪽에 책임을 넘기는 태도가 아니라 좀더 유기적으로 소통하고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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