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조민교 기자 = #최씨는 채팅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한 여성을 알게 돼 깊은 유대를 쌓아가다 자위행위를 한 동영상을 전송했다. 그러나 이미 최씨의 휴대전화에는 성명불상의 조직이 채팅 앱을 통해 유포한 악성프로그램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이들은 최씨 지인들 연락처 목록을 확보한 뒤 "돈을 보내지 않으면 동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했다. 최씨는 어쩔 수 없이 그들에게 돈을 이체했다.
6일 뉴스핌 취재에 따르면 전직 펜싱 국가대표 남현희(42) 씨와 전청조(27) 씨 사건을 통해 최근 '로맨스 스캠(romance scam)'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고 있다.
앞서 남씨의 재혼 상대로 소개됐다가 사기 의혹이 불거진 전씨는 강연 등을 하면서 알게 된 이들로부터 투자금 명목으로 돈을 건네받아 가로채거나 이를 위해 대출을 받도록 유도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로 지난 3일 구속됐다. 현재 남씨는 전씨가 자신을 속였다는 취지로 주장하고 있는데 해당 주장이 사실일 경우 전형적인 '로맨스 스캠'에 해당된다. 경찰은 현재 정확한 공범 여부 등을 파악하기 위해 남씨를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해 조사 중이다.
로맨스 스캠은 피해자와 친밀감과 애정 관계를 형성한 뒤 금전·투자 요구한다는 점에서 일반 보이스피싱, 협박 등과 차원이 다른 고도의 치밀함을 보이는 범죄다.
[서울=뉴스핌] 이호형 기자 = 사기 혐의를 받는 전청조가 3일 오후 서울동부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송파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전청조는 전 펜싱 국가대표 남현희씨의 재혼 상대였다. 2023.11.03 leemario@newspim.com |
피해를 당하지 않은 사람은 '당한 사람이 바보'라고 피해자를 손가락질하기 마련이다. 전씨 사건 후에도 피해자인 남씨를 손가락질하거나 해당 사건이 '밈'으로 활용되는 등 조롱거리로 비하되고 있다.
그러나 범죄를 저지르기에 앞서 오랜 기간 감정적 유대를 쌓아 올려 상대방이 '지인', '연인'이라는 등 관계 자체를 착각하게 만든 상태로 고도의 사기 범죄를 저지르기 때문에 누구나 피해를 볼 법했다.
또 최근에는 보이스피싱과 같이 역할이 분담되어 있어 각 역할을 맡은 이들이 제시하는 자료와 파일 등이 상당히 고도화돼 있어 위험성이 컸다. 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최씨를 협박한 조직은 '총책', '모집책', '콜센터 조직원', '전달책', '인출책' 등으로 나뉘어 있었다.
또 다른 피해자 A씨의 경우에는 로맨스 스캠의 일종인 '환전사기'를 당했다. 소개팅 앱을 통해 상대가 호감을 느끼게 만든 후 "어플 포인트를 오늘까지 환전하지 않으면 소멸된다. 대신 환전해달라"고 요청해 환전을 위한 중간 수수료와 보증금 등을 입금하게 만들어 이를 편취하는 방식이다. 상대가 시간을 계속 압박하는 상황에서 사기임을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 A씨의 설명이다.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
수법이 교묘해진 만큼, 범행은 대담해져 피해액은 눈에 띄게 늘었다. 국가정보원이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집계한 로맨스 스캠 피해 건수는 총 281건으로, 피해액은 92억 2000만원에 달한다. 피해액은 ▲2020년 3억 2000만원 ▲2021년 31억 3000만원 ▲2022년 39억 6000만원으로 급격한 증가세를 보였다.
피해 사례가 늘고 있지만 로맨스 스캠과 같은 신종 사기 범죄를 처벌할 법규가 마련되지 않은 실정이다. 일부 수사기관에서 관련 피해자 통계를 내고 있지만 피해 사례마다 적용되는 법규가 달라 정확한 피해 규모도 파악되지 않고 있다.
일단 당하면 피해 구제도 쉽지 않다. 주로 해외 서버에 기반을 둔 데다가 최근에는 가상화폐나 디지털 자산 등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현재 '다중 사기 범죄'에 로맨스 스캠을 포함하고, 계좌 지급정지 등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는 '다중 사기 범죄의 피해 방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다중 사기 범죄 방지법)' 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인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피해 구제가 쉽지 않은 만큼, 우선은 개인 보안 관리에 철저한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로맨스 스캠은 기본적으로 특정 사람에게 맞춤형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 동정심이나 연애 감정을 부추기기 때문에 예방이 쉽지 않다"라며 "이체한 돈이 계좌에 남아있으면 민사로 강제집행을 통해 돈을 받을 수 있지만 대부분 돈을 받자마자 다른 곳으로 빼버리거나 대포통장인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일단 자기 보안 관리를 철저히 하고 익명의 제3자에게 중요한 금융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정확하게 확인하는 등의 개인 보안 생활화 정도가 대비책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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