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조승진 기자 =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킬러문항' 대신 '매력적인 오답'으로 변별력을 줬다는 정부 발표에 대해 학부모와 수험생 사이에서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학부모와 수험생 입장에서는 킬러문항과 매력적인 오답 간 유의미한 차이를 느끼기 어렵다는 것이다.
입시업체들은 20일 이번 수능에서 킬러문항은 배제됐더라도 '준킬러' 문항과 '매력적인 오답' 등 변별력을 주기 위한 장치가 등장했다고 분석했다. 준킬러 문항은 킬러문항보다 약간 쉬운 문항을 뜻하고, 매력적인 오답은 선택지에 정답과 유사한 문항을 섞는 것을 말한다.
[서울=뉴스핌] 이호형 기자 = 종로학원이 17일 오후 세종대학교 대양홀에서 2024 수능 결과 및 정시합격점수 예측 설명회를 개최했다. 2023.11.17 leemario@newspim.com |
앞서 교육부는 킬러문항(초고난도문항)에 대해 공교육 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내용이며 사교육에서 문제 풀이 기술을 익히고 반복적으로 훈련한 학생들에게 유리한 문항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 수능이 역대급 불수능이라는 평가가 나오면서 수험생들은 말로만 킬러문항을 뺀 게 아니냐는 입장이다. 수험생 입장에서는 '어려운 문항'을 '킬러문항'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 수험생은 "킬러문항을 없앤다고 했는데 이게 킬러가 아니면 뭔지 모르겠다. 오히려 작년보다 더 어렵게 낼 줄은 몰랐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또 다른 수험생도 "킬러문항 대신 매력적인 오답을 냈다고 하는데 학생 상대로 말장난을 하냐"고 날 선 비판을 했다.
특히 한 입시학원 강사가 유튜브에서 수학 공통과목 실시간 문제 풀이를 진행했는데 22번의 경우 답을 구하는 데만 20분이 걸려 사실상 '킬러문항'으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해당 문항은 미분계수의 부호를 고려해 조건을 만족시키는 그래프의 개형을 추론하고 이를 바탕으로 함숫값을 구해야 한다. 20일 오전 EBS가 공개한 문항별 오답률에 따르면 수학 22번 문항 오답률은 98.5%다. 100명 중 1.5명 정도만 문제를 맞췄다는 얘기다.
최수일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수학혁신교육센터장은 "수학 22번은 특정 사교육을 받은 학생이 유리한 문항"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논란에도 교육부는 공교육 내에서 출제가 이뤄졌다는 완고한 입장이다. 2024학년도 수능 출제위원장인 정문성 경인교대 사회교육과 교수는 지난 16일 "교육부의 사교육 경감 대책에 따라 소위 '킬러문항'을 배제했으며, 공교육 과정에서 다루는 내용만으로도 변별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적정 난이도의 문항을 고르게 출제했다"고 밝혔다.
2024학년도 공통수학 22번 문항. [사진=한국교육과정평가원] |
다만 학부모들이 이 같은 교육부의 발언을 믿을지는 미지수다. 지난해 9월 교육부는 "지금도 수능은 교과과정 내에서 출제되고 있다"며 킬러 문항의 존재를 부정했지만 이러한 입장은 윤석열 대통령이 올해 6월 킬러문항 존재에 대해 지적한 뒤 단번에 뒤집혔다.
지난해 윤 대통령은 사교육비가 역대 최고라는 수치가 나오자 사교육비 경감을 위해 수능에서 킬러문항을 배제하라고 지시했다. 이러한 지시 직후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킬러 문항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교과과정 내에서만 수능 문제를 출제하겠다"며 "기존 입장을 번복한 것을 반성하겠다"고 했다.
이번 수능에 대해 중1 자녀를 대치동 학원에 보내고 있는 한 학부모는 분노를 표했다. 그는 "킬러문항 배제 조치에 따라 수능이 쉬워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어렵게 나와 학원에 안 보낼 수가 없다"며 "오히려 수능 예측 가능성이 없어져 사교육이 폭증하지 않겠냐"고 소리를 높였다.
수험생 자녀를 둔 학부모도 "킬러문항 배제 소식 이후 오히려 재수생이 증가했는데, 올해 불수능으로 시험을 망친 고3들이 또다시 재수를 선택해 사회적 비용은 더 들 것"이라며 "애초에 수능 6개월 전 출제 정책을 흔든 게 문제였다"고 했다.
남윤곤 메가스터디 입시전략연구소장은 "수학 22번의 경우 학부모들은 정답률만 보고 킬러문항으로 봐 불만이 있을 수 있지만 교육부 입장에서는 킬러문항이 아닐 수 있다"면서도 "고등 사교육의 경우 그해 수능에서 어려운 과목에 쏠리는 경향이 있는데 올해는 전부 다 어려워 사교육이 줄어드는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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