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기락 기자 = 피고인의 휴대폰이 범죄 수행에 실질적으로 기여한 것이 아니라면 몰수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범죄 행위에 제공한 물건'이라도 비례의 원칙에 따라 재범 위험성 유무 등 제반 사정도 고려해야 한다는 판례를 재확인한 것이다.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위반(향정·대마)으로 원심에서 징역 1년과 휴대폰 몰수 등을 선고받은 박 모씨에 대한 상고심을 열어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수원지법으로 돌려보냈다.
박씨는 2020년 3월 24일 부산 기장군의 자신의 주거지에서 대마 2g을 택배로 받아 이튿날 새벽 베란다로 나가 대마 1g을 은박지 말아 흡연하고, 같은해 6월 12일 인천에서 필로폰 약 0.07g을 왼팔 혈관에 주사한 혐의로 기소됐다.
대법원 [사진=뉴스핌 DB] |
1심 재판부는 박씨에 징역 1년을 선고하고 압수된 휴대폰 몰수, 40만원 추징을 선고했다. 박씨는 2018년 2월에도 인천지법에서 향정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
박씨는 양형 부당 및 휴대폰 몰수에 대해 항소했으나, 2심 재판부는 기각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나이, 성행, 환경, 가족관계, 건강상태, 범죄 전력 및 수사기관과 법정에서의 태도, 죄질 등 사정을 종합해 보더라도 원심의 형이 그 재량의 합리적 범위를 벗어나 너무 무겁다고 할 수 없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휴대폰 몰수에 대해서도 문자메시지나 카카오톡으로 대마 요청 메시지 발신 및 수신, 사건 관련자와 통화 등 박씨의 공소사실 범행 수행에 휴대폰이 실질적으로 기여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원심이 이 사건 휴대전화를 형법 제48조 제1항 제1호의 '범죄행위에 제공한 물건'으로 보아 몰수한 판단은 정당한 것으로 수긍할 수 있고, 피고인이 주장하는 법리 오해의 잘못이 없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대법은 "몰수로 인하여 피고인에게 미치는 불이익의 정도가 지나치게 큰 편이라는 점에서도 비례의 원칙상 몰수가 제한되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가 많다"라고 원심 판결을 지적했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이유로 대법은 ▲박씨가 2018년 9월 형기만료 후 본인 명의로 개통할 수 없어 할머니 명의로 개통한 점 ▲대마 수수·흡연 관련 2020년 3월 23일 상대방과 문자메시지 몇개 주고받은 점 ▲필로폰 수수·흡연 관련 2020년 6월 12일 상대방과 1회 통화한 점 등을 들었다.
대법은 "범죄 실행에 사용된 정도·범위·횟수·중요성 등 범죄와의 상관성 관련성에 비추어, 범죄와 무관한 개인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정보에 대한 자기결정권 등 인격적 법익에 관한 모든 것이 저장되어 있는 사적 정보저장매체로서 휴대전화가 갖는 인격적 가치·기능이 이를 현저히 초과한다고 볼 수 있다"고 판시했다.
앞서 대법은 2008년에도 이 같은 취지의 판결을 선고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