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김정태 건설부동산 전문기자= 지난 27일 더불어민주당과 녹색정의당이 강행 처리한 단독 의결은 왠지 기시감(旣視感)이 든다.
'선(先)구제, 후(後)회수' 를 골자로 한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을 본회의에 직회부해 통과시킨 그것이 2020년 7월 문재인 정부에서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이 강행처리한 '임대차 3법'과 '오버랩'이 된다.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06회 국회(임시회) 제01차 본회의에서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안이 가결되고 있다. 2023.05.25 leehs@newspim.com |
전세사기특별법은 분명 여야 합의로 지난해 5월 25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미 통과시켰다. 그러나 민주당은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보증금을 정부가 먼저 갚아주는 '선 구제'를 포함시켜야 한다며 개정안을 요구해왔다.
이에 대해 정부와 여당인 국민의힘은 사인(私人) 간 전세 계약에 따른 피해를 정부가 세금으로 지원하는 것은 조세 형평성을 침해한다며 반대했지만 민주당은 또 다시 다수 의석의 힘으로 밀어붙인 것이다. 직회부는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된 지 60일이 지난 법안에 대해 해당 상임위 재적위원 5분의 3 이상 의결하면 가능하다.
한번 하는 게 어렵지, 맛을 들이면 두려울 게 없다는 식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민주당의 행태는 왜 전세사기의 비극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반성은 없는 듯한 자세다. 당시 민주당은 전셋값 급등과 전세대란에 대응하고 세입자를 보호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기존 2년 전세계약에 임차인이 요구하면 2년 더 연장할 수 있도록 한 '계약갱신청구권'과 연장기간 올릴 수 있는 전월세의 인상 상한선을 5%로 제한한 '전월세상한제'를 집주인에게 강제토록 했다.
하지만 '임대차 3법'의 졸속 강행이 가져올 혼란과 부작용을 우려하는 야당과 전문가들의 반대를 무시하고 다수 의석수만 믿고 강행처리한 결과는 어떠했는가.
'임대차 3법'이 시행된 지 만 3년 6개월이 지난 현재, 민주당의 바람대로 전셋값이 안정되고 진정 세입자 보호가 되고 있는지를 되묻고 싶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의 경우 전세대란이 가중되면서 아파트 전셋값이 2022년까지 지난 2년간 35% 급등했다. 이후 잠시 급락세를 보였던 전셋값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다시 상승세를 타기 시작하면서 41주 연속 상승세를 보이며 매물난에 시달리고 있다.
결국 이게 전세사기의 빌미가 됐다. 폭등한 아파트 전월세 가격을 못 버틴 서민과 청년층들이 상대적으로 값싼 빌라나 오피스텔 등으로 밀려나면서다. 아파트에 비해 보증금 보호 장치가 가뜩이나 미흡한 이들 다세대주택과 준주택의 전월세 가격이 급등하면서 수십, 수백 채를 전세 낀 채 무자본으로 매입하는 '갭 투자'가 활개를 친 것이다. 전세급등으로 전세대출 규모도 급격히 늘게 됐다.
하지만 2022년 하반기부터 전세가격이 급락하자 세입자의 보증금을 이용한 레버리지효과가 사라지게 됐다. 특히 악덕 부동산 업자와 투기꾼들은 바지 사장에게 넘겨 보증금을 떼먹는 '먹튀'로 전세사기의 비극이 전국 도심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과거의 실패를 인정치 않고 졸속 강행을 반복하는 민주당과 녹색정의당의 행태가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정부도 이 같은 결과에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졸속 강행 처리된 입법이나 개정안에 대해 정상화시킬 책무가 있음에도 수수방관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 공약으로 '임대차 3법' 폐지를 내걸었음에도 출범 3년 차에도 아무런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은 분명 문제다. 자칫 또 다른 혼란과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게 국토교통부의 입장이다. 하지만 졸속 법안으로 인해 전세불안과 전세사기가 반복되고 있다는 점은 왜 직시하지 못하는 지 안타깝다.
전세사기 피해자에 대한 '선(先)구제, 후(後)회수' 문제도 정부가 원칙론만 고수한 결과다. 국토교통부는 수조원의 혈세가 투입되면 회수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과 함께 다른 사기 피해자와의 형평성을 무시한 채 지원하는 것인 만큼 사회갈등 발생이 우려된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지난해 법안이 통과된 뒤로 야당의 목소리에 좀 더 적극적인 해결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특히 실질적인 피해 회복이 미흡하다는 현장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는 선 구제 방식을 강구했어야 했다. 귀를 아예 닫고 있다가 허를 찔린 결과가 '국토부의 경고'대로 더 큰 부작용으로 다가 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괜한 걱정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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