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뉴스핌] 김기랑 기자 = 원전 확대의 필요성에 대한 전 국민적인 공감대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4월 총선에 미칠 영향을 우려해 국가의 장기적인 전력 계획 마련에 늑장을 부리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발표가 늦어지고 있는 이번 전력 계획의 핵심 사안은 신규 원전으로, 건설 규모 등을 둘러싼 여야 간의 갈등이 예상돼 당초 공개 시점보다 시일을 늦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력 계획이 늦어질수록 신규 원전의 활성화도 지연되고, 이는 차후 국민들의 전력 비용 부담을 더욱 가중하는 결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 전기본에 신규 원전 2기 혹은 4기?…정부, 총선 우려에 '소극적' 입장 고수
11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정부는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 발표를 위한 실무위원회의 막바지 작업을 거치고 있다.
앞서 산업부는 지난 1월 업무계획 보고 당시에도 전기본을 두고 "관련 위원회에서 마지막으로 점검하고 확정지어야 하는 사안이 있어 시간이 걸리고 있다"고 밝혔던 바 있다. 이로부터 두 달여가 흘렀음에도 진전을 이루지 못한 셈이다.
전기본은 향후 15년간의 전력 수급 방안과 장기 전망, 전력 수요 관리, 전력 설비 건설 등 국가 전력 운용에 대한 기본적인 방향을 담는 계획안이다. 2년마다 수립하는 일정상 지난해 12월 말이나 올해 1월 중 공개됐어야 하지만, 이번 11차 전기본은 이례적으로 발표가 늦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늦어도 2월 중에는 공개될 것이라는 예상도 빗나가 현재로서는 4월 총선 이후 발표가 유력하게 점쳐진다.
이번 전기본의 쟁점은 신규 원전의 건설 규모다. 몇 기를 지을 지가 관건일 뿐 건설 여부는 사실상 확정된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 정부는 지난해 1월 발표했던 10차 전기본에서도 원전 비중을 2022년 기준 29.6%에서 2036년 34.6%로 약 17% 확대하고, 같은 기간 석탄 비중은 32.5%에서 14.4%로 약 56% 낮추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신규 원전 건설이 필수적이라는 예측이다.
2기를 한 쌍으로 짓는 원전의 특성상 2기 혹은 4기를 건설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일각에서는 3기 가능성도 거론된다. 다만 아직 산업부는 건설 규모를 확정지은 적 없다며 입장을 계속 유보하고 있는 상태다.
정부가 3월을 넘어서까지 전기본을 공개하지 않는 배경에는 '선거'라는 우려가 존재한다. 오는 4월 10일에는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진다. 이번 총선은 현 '여소야대' 체제의 유지 혹은 반전이 달린 분기점이라는 점에서 여야 모두 사활을 걸고 있다. 정부는 신규 원전 건설을 포함한 전기본을 발표할 시 '탈원전'을 주장해 온 야당으로부터 집중 포화를 맞을 것을 우려해 소극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는 게 지배적인 관측이다.
◆ 세계 20개국 46% "원전 사용 지지"…건설 지연시 전력비용 증가 우려
원전의 필요성에 대한 국민의 인식은 이미 확고한 것으로 드러난다. 10일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에 따르면 국제 에너지 컨설팅사 래디언트 에너지 그룹이 전 세계 20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한국 응답자의 82%가 원전 사용 유지 정책 방향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지난해 에너지정보문화재단이 시행한 에너지 국민인식 조사에서도 75.6%의 응답자가 원전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는 불과 한국에 한한 것이 아닌 전 세계적인 흐름이다. 설문조사의 대상국인 20개국을 통틀어 원전 사용 지지자 수(46%)는 반대자 수(28%)보다 약 1.5배 높았다. 같은 조사 내 청정에너지의 선호도에 대한 질문에서도 원전(25%)은 태양광발전(33%) 다음으로 선호도가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원전에 대한 글로벌 대중인식 [자료=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 2024.03.11 rang@newspim.com |
20개국은 원전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기보다 사용을 유지해야 한다는 데에도 공감대를 갖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원전의 정책 방향성에 대한 질문에서 원전을 중단하기보다 유지하자는 의견이 68%로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특히 탈원전 정책을 추진해 오던 스웨덴(76%)과 벨기에(74%) 등의 응답자가 높은 비율로 원전 유지를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두 국가는 모두 지난해에 탈원전 정책을 폐기했다.
미래 전력 방향이 원전을 중심으로 나아감은 세계적으로도 공언되는 사실이지만, 정부가 전기본을 통한 국가 전력 계획을 확정짓지 않으면서 국내 원전 활성화가 더뎌질 것이라는 우려가 불거진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원전의 건설이 늦어질수록 국민을 향한 전력 공급 비용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통상 신규 원전 건설에 10여년이 넘는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절차에 조속히 착수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산업부는 여전히 구체적인 시점을 언급하지 않고 올해 상반기 중으로는 공개하겠다는 방침을 거듭 밝히고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올 상반기 중 발표할 것이라는 계획에 변함이 없다"며 "신규 원전 건설 규모는 아직 협의 중인 사안"이라고 전했다.
경북 울진의 한울원자력발전소 [사진=한울원전본부] 2022.12.28 nulcheon@newspim.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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