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서영욱 기자 = 롯데그룹의 창업주 고(故) 신격호 명예회장의 일생을 담은 뮤지컬 공연에 그의 차남 신동빈 회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일본 롯데 경영권을 확보한 뒤 '원 롯데' 체제를 다지고 있는 그룹 입장에서 불필요한 잡음을 사전에 차단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번 공연은 신동빈 회장의 이복누나 신영자 의장이 기억하는 아버지가 주된 내용으로 신 회장은 극 중에 등장하지 않는다.
[서울=뉴스핌] 조민교 기자 = '더 리더' 공연 리허설 후 기자 간담회에서 장혜선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이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왼쪽부터 장 이사장, 박종훈 감독, 조성웅 배우. 2024.05.03 whalsry94@newspim.com |
◆신동빈 회장 불참, 신동주 회장은 화환으로 대신
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신동빈 회장은 지난 3~5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린 뮤지컬 '더 리더(The Reader)' 공연을 관람하지 않았다.
이 공연은 신격호 명예회장을 기리기 위해 롯데재단이 만든 작품으로, 신 명예회장이 평소 즐겨 읽던 문학 작품을 그의 일대기 속에 풀어내는 형식으로 만들어졌다. 고난 끝에 일본에서 사업 성공을 거둔 한 남성이 한국에 돌아와 테마파크를 세우기까지의 여정이 담겼다.
롯데재단에 따르면 사흘간 공연에 롯데 전·현직 임직원들과 신 명예회장의 친인척 200여 명이 다녀갔다. 재단은 롯데 전 계열사 대표를 초청했다고 밝혔지만 신동빈 회장을 비롯해 핵심 임원들은 불참했다.
이동우 롯데지주 부회장을 비롯해 김상현 유통군 총괄대표 부회장, 이영구 식품군 총괄대표 부회장, 이훈기 화학군HQ 총괄대표 사장 등은 참석하지 않았다.
신동빈 회장의 장남 신유열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 전무 역시 공연을 관람하지 않았다.
김태홍 롯데호텔앤리조트 대표, 김혜주 롯데멤버스 대표, 김진엽 한국에스티엘 대표 등은 첫날 공연을 관람했다.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신동빈 회장의 형 신동주 에스디제이 회장도 참석하지 않았다. 다만 '더 리더 공연을 축하합니다'라는 메시지가 담긴 축하 화환으로 대신했다.
◆경영권 분쟁 끝낸 롯데, '통합경영' 바쁜데...
업계에선 재단의 이번 공연이 그룹의 현 상황을 반영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온다. '원 롯데' 체제를 공고히 해야 하는 상황에서 불필요한 잡음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롯데그룹은 경영권 분쟁 끝에 신동빈 회장이 일본 롯데 경영권까지 확보하면서 한일 통합경영 체제에 속도를 내고 있다. 또 신동빈 회장 후계는 신유열 전무로 굳혀가고 있는 상황이다.
신동주 회장이 매년 일본 롯데홀딩스 주총 때 경영권 회복을 노리고 있으나 9년째 빈손으로 돌아갔다. 올해에도 롯데알미늄 물적분할을 반대했지만 목적을 달성하지는 못했다.
'원 롯데' 체제를 다지고 있는 그룹 입장에서 신동빈 회장의 이복누나인 신영자 의장과 그의 장녀 장혜선 이사장이 전면에 나선 상황이 달갑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공연을 기획한 롯데재단에서 장혜선 이사장은 지난해부터 장학재단과 삼동복지재단을 맡고 있다. 신영자 의장이 지난해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복권된 후다. 신영자 의장은 롯데재단 의장으로 든든한 후원군을 자처하고 있다. 지난 3일 공연장을 찾아 직접 무대인사에 나서기도 했다.
[서울=뉴스핌] 조민교 기자 = 뮤지컬 '더 리더'의 일부분. 신격호 회장 역할을 맡은 남자 배우와 신영자 의장 역할을 맡은 여배우가 나란히 서 있다. 2024.05.03 whalsry94@newspim.com |
실제로 이번 공연 역시 극중 등장하는 여성은 신영자 의장을, 남성은 신격호 명예회장을 모티브로 한다. 철저하게 신영자 의장이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담았다. 장남 신동주 회장이나 차남 신동빈 회장은 등장하지 않는다. 공연 기획 역시 장혜선 이사장이 취임 후 이뤄졌다.
지난해 장혜선 이사장이 취임하면서 언론에서 '롯데가 3세'의 부상을 다루는 보도가 나간 바 있다. 이 때 신유열 전무와 함께 장혜선 이사장의 역할론이 거론되면서 그룹에서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재단 측도 이 같은 분위기를 감지하고 있다. 재단 측은 이번 공연을 '신격호 명예회장의 도전정신을 바탕으로 소외계층에 희망을 전달하기 위한 취지'라고 강조하고 있다. 장혜선 이사장은 지난 3일 기자들을 만나 "(신동빈 회장과) 연락은 된다"며 "공연에 초청도 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롯데그룹은 또 다른 방식으로 신격호 명예회장을 기리고 있다. 지난 2일 열린 '2024 롯데어워즈'에서 신격호 명예회장의 목소리를 AI 기술로 복원해 직원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했다. 신격호 명예회장은 "정열과 의욕으로 원하는 미래를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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