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방보경 기자 = 로맨스 스캠(관계 중심형 온라인 사기) 취재를 하면서 피해자가 아닌 사람들의 인식을 자주 들여다봤다. 가장 빠르게 알 수 있는 방법은 댓글을 보는 것이었다. 모든 악플이 질이 낮았다. 그중에서도 유독 눈에 들어온 내용은 '지능이 낮다'는 비난이었다.
피해자에게 '멍청하다'는 말을 한 사람의 얼굴은 모른다. 어쨌든 그는 피해자가 판단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인터넷에서 로맨스 스캠 수법이 알려져 있는데 몰랐다는 점, 얼굴도 보지 않은 사람을 믿었다는 점을 지능 문제라고 본 게 아닐까.
사회부 방보경 기자 |
하지만 세상에는 젊은데도 인터넷으로 정보를 얻는 데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있다. 낯선 이와 덥석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도 있다.
피해자 이서아(가명·37) 씨는 성인이 된 후 15년간 여러 직장을 전전했다. 부모가 정한 진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부모는 그가 농촌에서 일하기를 바랐다. 실은 서아 씨도 그 외에 할 줄 아는 건 없었다.
다만 스스로가 독립을 원한다는 것만은 알았다. 일뿐인 삶이었다. 사무실과 공장을 돌아다니며 닥치는 대로 일했다. 애인을 사귈 시간은 없었다. 서아 씨는 사기범과의 첫 만남에 대해 "내 삶의 한줄기 빛이라고 생각했다"고 술회했다.
피해자 이주희(가명·22) 씨는 상경한 후 돈을 모으고 싶었다. 하지만 지방에서 올라온 사회초년생은 그 방법을 몰랐다. 주희 씨는 금융과는 무관한 교육을 받았다. 유튜브를 보려고 해도 무슨 단어를 검색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고, 주식이 뭐고 펀드가 뭔지 얘기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재무설계사에게 돈을 주며 도움을 받는 게 최선이었다. 그런 주희 씨였기에 로맨스 스캠 수법까지 검색해볼 여력이 없었다.
어떤 사람이 특정 상황에서 자신을 해치는 판단을 하는 데는 복합적인 이유가 있다. 정보 접근성이 부족한 지역에 살고 있거나, 원하는 교육을 받을 수 없거나, 노동시간이 지나치게 길거나, 문제를 해결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인적 자산이 없거나. 사회경제적인 배경은 이들의 결정적인 선택에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지능이 낮다'며 일갈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로맨스 스캠 사기범들은 자신이 해외에 거주하고 있으며, 여러 가지 이유로 돈이 필요하다고 피해자를 속인다. 글로벌 사회가 됐다고 하지만 해외 문화가 익숙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적다. 통계청에 따르면(2019년 기준) 해외여행을 경험한 20·30대의 비율은 30%대 초반에 그친다. 한국인 전체로 확대하면 그 비율은 23%로 떨어진다. 그렇다면 누군가 외국인을 사칭했을 때, 사회 구성원들 대다수가 사기에 걸리지 않을 수 있다고 단언할 수 있나. 만약 이에 속는다면 정말로 '지능의 문제'인가.
정말 누군가 지능이 낮아 사기에 걸린다고 해도, 범죄 피해자를 비난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피해가 발생할 경우 사회는 피해자를 구제하는 데 힘써야 한다. 지능이 낮은 사람들이 범죄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봐야 한다.
사회는 복잡하고 우리는 타인을 모른다. 그들을 전부 만나 이야기를 듣는 건 불가능하고, 강요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적어도 피해자를 조롱해서는 안 된다. 정말이지 그럴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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