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뉴스핌] 김기랑 기자 = 지난 3일 동해 심해에 최대 140억배럴 규모의 석유·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희소식이 전해졌다.
이는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국가적인 낭보임에도 불구하고, 전담 기관인 한국석유공사에서는 다소 다른 분위기가 읽힌다. 경사라며 축하하기보다 부담감으로 인해 근심하는 모습이다.
김기랑 경제부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은 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브리핑을 열고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 막대한 양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물리 탐사 결과가 나왔다"고 국민들에게 직접 보고했다.
같은 날 산업통상자원부도 고위 관계자 주재로 곧장 백브리핑을 열고 물리 탐사 결과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소개했다. 산업부가 미국 액트지오(Act-Geo)사에 심층 분석을 의뢰한 결과, 최소 35억배럴에서 최대 140억배럴의 탐사 자원량이 예상됐다는 것이다.
산업부는 올 연말에 첫 번째 시추에 들어가며 결과는 내년 상반기 중 나올 것이라는 구상도 밝혔다. 시추 한번에 약 1000억원 이상의 재원이 소요되며, 산업부는 오는 2026년까지 최소 다섯번 가량 시추를 진행할 계획이다. 예상 시추 성공률은 약 20%로 추산됐다.
140억배럴은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면 1조4000억달러(한화 약 1930조원)에 달한다. 특히 산업부는 이를 우리나라 굴지의 대기업인 삼성전자의 시가총액과 비교했다. 안덕근 산업부 장관은 윤 대통령의 브리핑에 배석해 "140억배럴을 현재 가치로 따지면 삼성전자 시가총액의 총 5배가 정도가 된다"며 그 가치를 강조했다.
낭보임이 틀림 없는 소식이지만, 전 국민적인 관심이 고조될수록 석유공사의 근심도 함께 깊어지고 있다. 아직 초기 단계일 뿐 결과는 불투명한데도 대통령실이 '최대치'에 달하는 수치를 구체적으로 제시함으로써 기대감을 한껏 끌어올린 것이다. 전담 기관으로서는 사업 실패에 대한 부담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이 주도해 밝힌 이번 동해 매장 가능성은 말 그대로 '가능성'에 그친다. 정부와 석유공사가 액트지오 평가 결과를 토대로 아무리 3중·4중의 검사를 거쳤다지만, 막상 시추를 했을 때 예상했던 만큼의 매장량이 확인되지 않을 수 있다. 최대 140억배럴도 추정치 수준인 '탐사 자원량'일 뿐, 실제 시추를 통해 확인된 '발견 자원량'과는 다르다.
석유공사는 과거에 석유 탐사에 실패했던 경험이 다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는 1998년 동해-1 가스전에서는 국내 최초로 천연가스를 발견하는 데 성공했지만, 약 4500만배럴의 가스를 뽑아낸 뒤 고갈돼 개발 초기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이후 제주도와 서해 해상 등에서도 여러 차례 탐사·시추가 이뤄졌으나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런 석유공사의 부담감은 산업부 고위 관계자와 동시 배석한 백브리핑에서도 일부 드러났다. 이 자리에서 석유공사 관계자는 "최대 140억배럴은 탐사 자원량으로 이를 시추해서 확인해야 하는 과정에 있다", "당부드리고 싶은 건 이제 시작이라는 것이다. 이룬 게 아니라 이제 시작이다", "심해 자원 개발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등의 발언을 내놨다. 전담 기관으로서의 조심스러움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예외적인 윤 대통령의 직접 발표가 이런 상황을 불러일으킨 것에 대해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애초에 대통령이 주도할 현안이 아니며, 그 시점도 섣부르다는 견해다. 윤 대통령이 국정 브리핑을 열어 직접 현안을 설명한 것은 취임 이후 처음이다. 산업부로부터 보고 받은 지 하루 만에 발표가 이뤄졌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이에 대해 저명한 자원개발 분야 전문가로 꼽히는 강주명 서울대학교 자원공학과 명예교수는 "앞으로 여러 단계를 더 나가야 하는 일인데 대통령이 초기 단계에서 구체적인 수치를 밝히고, 이에 대해 '앞으로 기술자들이 다뤄야 할 문제'라고 말하는 것은 전례가 없다"고 우려했다. 이처럼 동해 심해가 대통령의 '전례 없는' 언급에 그친 사례가 될 지, 시추에 성공해 '전례 없는' 우리나라의 최대 개발지가 될 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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