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성화 기자 = 고의 분식회계를 저지른 의혹을 받는 삼성바이오로직스(로직스)에 대한 금융당국의 제재 및 과징금 처분을 취소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로직스가 지난 2015~2018년 재무제표 작성·공시 과정에서 삼성바이오에피스(에피스)의 가치를 부당하게 평가하는 등 일부 제재 사유가 인정되지만 각 처분이 일체의 처분으로 이뤄져 전부를 취소해야 한다고 봤다.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최수진 부장판사)는 14일 로직스와 김태한 고문(전 대표)이 금융위원회와 산하 기관인 증권선물위원회를 상대로 낸 시정요구 등 취소 청구소송에서 "피고 증선위와 금융위가 원고들에 대해 한 각 처분을 모두 취소한다. 소송비용은 피고들이 부담한다"며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인천=뉴스핌] 김학선 기자 = 인천 송도 삼성바이오로직스. [사진=뉴스핌DB] |
재판부는 로직스가 2015년 에피스 투자주식을 공정가치(4조5436억원)로 부당하게 평가하고 2015~2018년 관련 자산 및 자기자본을 과대계상한 부분은 정상적인 회계 처리 과정으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이어 "로직스는 구 삼성물산의 합병일이 2015년 9월 1일이었기 때문에 지배력 상실 시점을 그 이후로 검토했다"며 "자본잠식 등 문제를 회피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특정한 결론을 정해 놓고 이를 사후에 합리화하기 위해 회계 처리를 하는 것은 로직스에 주어진 재량권을 남용한 것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반면 "로직스가 2012~2014년 에피스를 단독 지배했다며 종속기업으로 연결재무제표를 작성한 것은 재량권의 범위 내에 있고 회계 처리 기준 위반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처분사유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봤다.
그러면서 "증선위의 감사인 지정, 대표이사 및 임원 해임 권고, 재무제표 재작성 시정요구 등 각 처분의 경위를 고려하면 사실상 일체의 처분으로 이뤄졌고 서로 불가분적 일부를 이룬다"며 "이 사건 재제 처분은 그 기초가 되는 사실을 일부 오인해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것이라고 판단되고 취소 범위는 전부가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로직스와 김 전 대표에 대한 각 과징금 처분에 대해서도 일부 처분사유가 부존재하기 때문에 전부를 취소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했다.
이에 대해 "처분사유가 모두 존재함을 전제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상 과징금 한도액인 80억원이 부과된 점 등에 비춰 이 사건 처분은 그 기초가 되는 사실을 일부 오인했거나 위반 내용과 제재 수준 사이의 이익형량을 제대로 하지 못해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금융감독원(금감원)은 로직스가 상장 직전인 2015년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의 회계 처리 기준을 변경해 1조9000억원의 흑자를 낸 과정에서 고의적인 분식회계가 있었다고 보고 중징계를 의결했다.
금감원으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증선위도 2018년 7월 로직스가 에피스의 주식매수청구권(콜옵션)을 합작 투자사인 미국 바이오젠에 부여하고도 공시하지 않아 회계 처리 기준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또 같은 해 11월에는 로직스가 미국 바이오젠과 합작 설립한 에피스를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전환하며 지분 가치를 장부가액(2900억원)에서 시장가액(4조8000억원)으로 회계 처리해 4조5000억원대 분식회계를 저질렀다고 결론 내렸다.
증선위는 공시 누락에 대한 1차 제재로 재무 담당 임원에 대한 해임을 권고하고 3년간 지정 감사인의 감사를 받도록 했다. 또 회계 처리 변경에 대한 2차 제재로 김태한 당시 대표 및 담당 임원 해임 권고, 재무제표 재작성 시정요구, 과징금 80억원 부과 처분을 했다.
로직스 측은 정당한 회계 처리였다며 제재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소송과 함께 본안소송의 판결이 나올 때까지 처분의 효력을 정지하는 집행정지를 신청했고 대법원은 2019~2020년 1·2차 제재 처분에 대한 집행정지 인용 결정을 확정했다.
이번 소송은 2차 제재에 대한 것으로 2018년 11월 소 제기 이후 수년간 절차가 계속되다가 지난 2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김 전 대표의 로직스 분식회계 의혹 관련 형사재판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되면서 변론이 종결됐다.
이 회장의 1심 재판부는 "당시 에피스의 성공 여부가 불확실했던 상황을 고려하면 바이오젠이 보유한 콜옵션을 반드시 공시해야 한다고 볼 수 없고 회계사들과 올바른 회계 처리를 한 것으로 보인다"며 외부감사법 위반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한편 법원은 2020년 임원 해임 권고 등 1차 제재 행정소송에서 "1차 처분은 2차 처분에 흡수·변경돼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므로 증선위는 1차 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고 해당 사건은 서울고법에서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shl2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