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배정원 기자 = 해외금융계좌정보 신고의무자가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국외에 체류한 경우, 공소시효가 정지된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국제조세조정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를 기각하고 벌금 12억5000만원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 [사진=뉴스핌 DB] |
홍콩과 국내를 오가며 사업을 운영하던 A씨는 2016년 1월 1일부터 6월 14일까지 스위스에 있는 금융회사 AG(Zurich)에 개설된 해외금융계좌를 보유하면서 계좌 잔액이 10억원을 초과했음에도 이를 납세지 관할 세무서장에게 신고하지 않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국제조세조정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해외금융회사에서 개설된 해외금융계좌를 보유한 사람 중에서 해당 연도의 매월 말일 중 보유계좌 잔액이 10억원을 초과하는 사람은 금융계좌정보를 납세지 관할 세무서장에 신고해야 한다. 당시 A씨는 2016년 2월 29일 기준 해외금융계좌 잔액이 220억9780만원 상당이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1심 재판부는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피고인이 국내자금을 해외로 불법 유출했거나 의도적으로 해외금융계좌 잔액을 숨기려고 했다는 사실을 뒷받침한 만한 자료는 없다"고 판시했다.
이어 "다만 피고인의 신고의무 위반금액이 약 220억원으로 적지 않은 액수인 점, 조세범처벌법 개정 취지를 고려할 필요가 있는 점 등을 고려했다"며 벌금 25억원을 선고했다.
이에 불복한 A씨는 항소했다. A씨 측은 "홍콩을 생활 터전으로 삼고 있는 피고인은 이 사건 위반행위를 알지 못한 채 가족들과 함께 홍콩에서 거주하고 있었을 뿐"이라며 "형사처벌을 면할 목적으로 국외에 있던 것이 아니므로 홍콩에 출국해 있던 기간 동안 범죄의 공소시효는 정지되지 않는다"며 공소시효가 완성돼 처벌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홍콩으로 출국한 이후 이 사건 위반행위로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음을 알게 됐으면서도 곧바로 국내로 돌아오지 않았고, 수사기관으로서는 소재가 불분명한 피고인에 대한 수사가 지연돼 당초 예정한 공소시효 완성 전에 공소제기가 곤란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피고인이 국외에 체류한 기간 이 사건 위반행위에 의한 범죄 공소시효는 정지된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피고인은 공소시효 완성 이전, 서울지방국세청이 피고인의 해외금융계좌를 조사하기 시작한 무렵부터 위반행위에 따른 과태료 부과 사전통지를 한 무렵 이 사건 위반행위가 문제가 된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했다"며 "또 피고인은 조세 및 회계 전문가 등을 통해 과태료 부과 사유에 대한 전문적인 자문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다만 "피고인이 보유한 해외금융계좌의 자금 원천은 홍콩에서 영위한 사업을 통해 얻은 급여와 배당금 등 국외 원천소득인 것으로 보이고, 당시 세무조사를 통해 부과된 종합소득세도 모두 성실히 납부했다. 또 위반행위가 1회에 불과하고 아무 범죄전력이 없는 초범인 점 등을 고려하면 원심의 형은 다소 무거워서 부당하다"며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벌금 12억5000만원으로 감형했다.
대법원은 "원심 판단에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공소시효의 정지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고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며 상고를 기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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