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방보경 기자 =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은 분명히 있어요."
불법 투자사기 회사에서 모집책 일을 했던 A씨는 이렇게 말했다. 사기인 줄 모르고 조직에 들어가 반강제적으로 가담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의지만 있으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A씨는 불법 투자사기 모집책들을 모아놓은 법인이 종종 이합집산한다고 회고했다. 그동안 모집책들을 묶어놓았던 계약서도 한꺼번에 무효화된다. 중간에 빠져나가도 몇십 억원의 위약금을 내지 않아도 되고, 협박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A씨는 "기회는 매년마다 온다. 1년, 2년, 3년이 지나면 나갈 수 있는 기회는 더더욱 많아진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A씨에 따르면 대부분의 모집책들은 나올 기회를 잡기보다 조직에 머물러 있다고 한다. A씨는 "평생 못 만져볼 큰 금액을 쥐기도 하고, 조직에 오래 있다 보니 무뎌진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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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뉴스핌 취재진이 만난 A씨 같은 모집책은 불법 투자사기의 핵심 멤버다. 이들은 고객들에게 다가가 새로운 가상화폐(코인)에 투자하라고 설득한다. 다른 투자처와 다르게 높은 수익성이 난다고 홍보할 뿐 아니라 몇달 간 고객들의 집에 들락날락하며 라포(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상호 이해와 공감을 통해 형성되는 신뢰관계와 유대감)를 쌓는다.
모집책들이 이렇게 모으는 고객만 수만 명이다. 이에 아도인터내셔널, ICC코인, 휴스템코리아, 와콘 등에 투자한 피해자들은 적게는 수백억대에서부터 많게는 수조원에 달하는 피해액을 입었다.
불법 투자사기의 주된 피해자인 노인이나 조선족, 탈북민 등은 모집책에 크게 의지하다 보니 피해가 막심하다. 이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이용을 어려워하거나 정보에서 고립돼 있다 보니, 모집책의 말만 듣고 전재산을 맡기기도 한다.
중간모집책의 범죄행위를 막아야 다단계 사기를 뿌리뽑을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범죄 조직이 커지는 것은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들어온 말단 조직원이 성과를 내면서부터다. 조직 내에서 인정받은 이들은 이후 새로운 법인을 세우고 수뇌부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정작 모집책들이 범죄를 멈출 유인은 없다시피 하다. 조직 내부에서 이들을 주기적으로 교육하기 때문이다. '우리 조직은 법에 저촉될 것이 없다, 어차피 고객들은 주식 투자로 성과를 내기 힘든 사람들이다, 모집책에게는 책임이 없다' 등의 세뇌 교육이다. 우수 사원에게는 상을 주기도 한다. A씨는 "그러다 보니 구인광고 등을 통해서 들어온 사람의 비율이 90퍼센트 이상이더라도, 이후에는 (조직에) 동조한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고 전했다.
현행법에서 모집책에 대한 처벌 규정이 마련되지 않은 점도 '이 일을 계속 해도 문제가 없다'는 생각을 심어주기 쉽다. 현행 방문판매법에 따르면 무등록 다단계판매조직·후원방문판매조직을 개설하거나 운영한 자에 대해서만 징역형을 내릴 수 있다. 즉 판매원들은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구조다.
김주연 한국사기예방국민회 대표는 "피해자들의 얘기를 듣다 보면 모집책들 중에서도 범죄를 상습적으로 저지르는 사람들이 많다. 모집책들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 필요한 이유"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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