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한태봉 전문기자 = 연 환산 수익률이 불과 2%대인 퇴직연금의 부진한 수익률로 새롭게 떠오르는 조직이 있다. 바로 국민연금공단 산하의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다. 과거 국민연금 수익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해마다 '기금운용본부'는 언론의 혹평을 받아 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안정적인 장기수익률로 우호적인 재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퇴직연금 개혁] 글싣는 순서
1. 금융사 전문성 있나…퇴직연금 5년 연 수익률 '2.35%' 그쳐
2. 증권사 퇴직연금 상품수의 절반…'현물이전제'에 은행들 난리
3. 국민연금 운용에 금융권 '패닉'…"원리금 보장상품 규제 풀어야"
4. 국민의힘 '연금개혁 부처 협의체' 추진
5. 국민연금, 퇴직연금시장 진출 '물꼬'…고용부 '난감' vs 국민연금 '표정관리'
6. 여당, 국민연금 운용에 '긍정적'…금융업계 "연기금, 자본시장 장악" 우려
7. 野 "국민연금은 '메기효과'…수익률 개선 선택지일 뿐"
8. 퇴직연금에 '투자성향진단' 족쇄 풀어야
◆ 국민연금 증시 폭락 때마다 혹평? 장기 수익률은 양호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국민연금기금을 전문적으로 운용하기 위해 1999년 설치된 전담 조직이다. 기금운용본부장 아래 14실·1단·3개 해외사무소로 구성돼 있다. 국민연금기금의 관리∙운용을 위해 300명 이상의 전문 인력이 선발됐다. 이들이 시장 분석, 포트폴리오 관리, 투자상품 매매 등으로 1147조원의 기금을 운용 중이다.
1988년 설립 이후 2023년말까지 국민연금의 연 수익률은 5.92%(금액가중 수익률)를 기록했다. 캐나다 등 일부 선진국들의 연금수익률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하지만 절대적 기준으로는 은행 예금금리를 훨씬 뛰어넘는 양호한 성과다. 특히 퇴직연금의 10년 연 환산 수익률 2.07%와 비교하면 더욱 도드라지는 수익률이다.
지난 14년간 국민연금 수익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해는 딱 2번이다. 2018년에 -0.92%로 소폭 마이너스를 기록했고 2022년에는 -8.22%로 크게 부진했다. 그 때마다 국민연금에 대한 비난이 빗발쳤다. 전 국민의 노후생활이 달린 마지막 보루 국민연금의 마이너스 수익률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언론과 국민들의 비판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국민연금의 투자대상은 은행 예금이 아니다. 주식, 채권, 대체투자 분야에 분산하는 국민연금의 포트폴리오 특성상 시장 상황에 따라 마이너스를 기록할 수도 있는 건 상식이다. 따라서 국민연금의 운용능력에 대한 평가는 연간 단위가 아니라 훨씬 더 장기적인 관점으로 접근하는 게 합리적이다.
◆ 주식 비중 늘려야 수익률 높아져…진화하는 포트폴리오
과거 국민연금의 포트폴리오는 주식보다 채권 비중이 높은 안정형 성향이 강했다. 4년6개월 전인 2019년말 기준 국민연금 포트폴리오를 살펴보면 주식 비중이 40.6%, 채권 비중이 47.6%, 대체투자 비중이 11.4%다. 반면 현재의 포트폴리오에서는 주식비중이 큰 폭으로 늘었다.
2024년 6월말 기준 국민연금 포트폴리오는 2019년말 대비 주식 비중이 7.2%P 증가한 47.9%, 채권 비중은 -11.7P 감소한 35.9%, 대체투자 비중은 4.5%P 증가한 15.9%를 기록했다.
국민들의 투자 이해도가 높아짐에 따라 국민연금의 포트폴리오도 위험자산을 더 높이는 '고위험 고수익' 선호형으로 진화한 셈이다. 국내투자와 해외투자의 비중도 44.9% 대 55.1%로 역전됐다. 사상 처음으로 해외투자 비중이 55%를 넘긴 상황이다.
국민연금의 중기 자산배분은 더 공격적이다. 2028년에는 위험자산인 주식 비중을 현재의 47.9%에서 7.1%P 끌어올린 55%까지 증가시킬 계획이다. 반면 안전자산인 채권 비중은 현재의 35.9%에서 -5.9% 축소한 30%까지 낮출 계획이다. 이는 지금보다 더 높은 포트폴리오 수익률을 달성하기 위한 전략이다.
◆ 수익률 부진한 퇴직연금 운용도 국민연금에 맡길까?
양호한 국민연금 수익률과 달리 연 환산 2%대의 부진한 퇴직연금 수익률에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치권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더불어민주당의 한정애 의원이 지난 8월 28일에 발의한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이 대표적이다.
이 법안은 '국민연금(NPS)'에 퇴직연금 사업자 지위를 부여해 퇴직연금의 부진한 수익률을 개선하자는 내용이다. 구체적으로는 100인 초과 사업장을 대상으로 국민연금에 '기금형 사업자 지위'를 부여하는 게 핵심이다. 이렇게 되면 신뢰성 높은 정부기관인 국민연금과 일반 사기업인 은행, 증권, 보험이 경쟁하는 구도가 돼 버린다.
이 내용이 알려진 후 기존 퇴직연금 사업자인 금융권 관계자들은 패닉 상태다. 주요 은행이나 증권 관계자들도 현재의 퇴직연금 수익률 부진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연금과 퇴직연금과는 제도적 차이가 크다는 점도 감안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만약 국민연금이 지금의 방식으로 퇴직연금을 운영하게 되면 수익률 개선 가능성은 확실히 높아지게 된다. 하지만 퇴직연금은 국민연금 기금과 달리 강제운용 방식이 아니다. 회사 또는 근로자가 은행, 증권, 보험 등의 민간 금융기관과 계약해 직접 투자상품을 선택하는 '계약형 제도'다.
그런데 직장인 입장에서 퇴직연금은 은퇴 후의 마지막 보루다. 심리적으로 공격적인 실적배당상품보다 원리금 보장형 상품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다. 특히 은퇴가 임박할수록 이런 경향이 더 강해진다. 이런 특수성을 감안하지 않고 강제 운용되는 국민연금과의 단순 수익률 비교는 불합리하다는 게 금융권의 입장이다.
◆ 국민연금 음모론까지…20년 일군 시장 못 뺏겨
퇴직연금 수익률 부진의 또 다른 원인으로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을 지적하는 금융권 관계자도 많다. 디폴트 옵션은 가입자가 운용지시를 하지 않았을 때 작동하는 제도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디폴트옵션 도입 목적이 원리금보장 상품을 벗어나 실적배당상품 비중을 늘려 수익률을 높이려는 취지였다"며 "그런데 원리금 보장상품이 포함되는 바람에 90%의 가입자가 예금상품을 선택해 제도의 취지가 퇴색했다"는 주장이다.
그는 또 "만약 원리금 보장상품을 원하는 투자자라면 디폴트 옵션 작동 전에 미리 예금상품을 지정해 운용 지시하면 되므로 디폴트옵션에서는 예금상품을 제외하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실제 대부분의 선진국에는 '디폴트옵션' 안에 원리금 보장상품이 없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금융업 관계자는 "퇴직연금 시장이 짧은 기간에 394조원까지 성장한 건 금융권이 지난 20년간 막대한 비용을 들여 시장을 키운 공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제 와서 국민연금이 퇴직연금 시장까지 개입하는 건 미래에 연금 지급이 본격화되면 고갈될 운명인 국민연금이 조직 축소 가능성에 대비해 현재의 조직을 유지하기 위한 사전 작업이라는 음모론적 시각도 있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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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연금 몰아주기...퇴직연금 악용 우려도
금융투자협회의 한 관계자는 "현재 한국의 연금구조는 1층 국민연금, 2층 퇴직연금, 3층 개인연금으로 구성돼 있다"며 "각 층별로 엄연히 각자의 역할이 있는데 1층에 이어 2층마저 국민연금에게 몰아주는 게 과연 합리적인 방향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있다"고 밝혔다.
또 "사실상 국민연금과 금융업계는 다양한 비즈니스를 함께하는 '갑'과 '을'의 관계"라며 "이번 국민연금의 퇴직연금 시장 진출 가능성에 대해 '을'의 입장인 금융권에서는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상황"인 점을 우려했다.
지금도 국민연금이 주총 의결권 등을 통해 경제 전체에 미치는 영향력이 막대한 상황이다. 그런데도 퇴직연금의 수익률을 더 높이겠다는 단 한가지 이유만으로 퇴직연금 운영마저 국민연금에 맡겼을 때의 부작용도 고민해야 한다. 먼 미래에는 국민연금 고갈 방어를 위해 퇴직연금이 악용될 우려도 있다.
지금의 부진한 퇴직연금 수익률은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 하지만 국민연금이 퇴직연금시장에도 관여할 경우 국가가 자본시장을 운용하는 꼴이라 부작용이 상당하다는 우려도 많다. 퇴직연금 '수익률 부진'과 '권력 집중'이라는 2가지 난제를 동시에 해결할 묘수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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