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뉴스핌] 장일현 특파원 =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20일(현지시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회담을 갖고 "EU가 우크라이나에 350억 유로(약 52조원) 규모의 대출을 제공하겠다"고 말했다고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 등 외신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이 대출 지원은 대부분 EU 역내에 묶여 있는 약 3000억 달러(약 400조원)의 러시아 금융자산(동결자산)에서 나오는 이자를 담보로 하는 것이며 미국의 참여 없이 EU 단독으로 실행하는 것이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왼쪽) EU 집행위원장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가졌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이날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8번째 키이우를 방문했다"면서 "젤렌스키 대통령을 만나 EU의 변함 없는 지원과 겨울철 대비, 국방, 주요 7개국(G7)의 대출 문제 등을 논의했다"고 말했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자금 지원과 관련해서 "이 자금은 아주 빠르게 우크라이나에 전달될 것"이라면서 "이 돈을 어떻게 쓸 것인지는 전적으로 우크라이나가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곧 겨울철이 다가오는 상황에서 발전소 등 에너지 인프라 보강과 난방 대책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발전소) 등 에너지 인프라에 대한 공격을 계속하고 있다"면서 ""EU는 25GW 규모의 발전시설 복구를 지원하는 한편, 2GW의 전력을 우크라이나에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전날에도 "이번 겨울 우크라이나의 긴급한 인도적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1억6000만 유로(약 2400억원)을 즉각 지원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우크라이나는 전쟁 발발 이후 발전소 등이 집중적으로 공격을 받아 전쟁 전에 비해 전력 생산 규모가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러시아는 지금까지 9GW(기가와트)에 달하는 우크라이나 에너지 인프라를 파괴했다. 이는 발트 3국(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의 전체 전력 생산량과 맞먹는다.
러시아는 특히 지난 8월 초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남서부 쿠르스크 지역에 대한 기습 공격 이후 우크라이나 에너지 인프라를 표적으로 200발이 넘는 미사일과 드론 공격을 감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에너지기구(IAEA) 사무총장은 "올 겨울은 우크라이나에게 지금까지 가장 혹독한 시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무기 구매와 파괴된 에너지 인프라 재건을 위한 자금이 절실한 우크라이나에 EU의 대출 지원은 큰 위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EU의 대출 지원은 지난 6월 G7 정상들이 러시아 동결자산을 이용해 총 500억 달러(약 66조6000억원) 규모의 대출을 일으켜 이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하겠다고 했던 합의가 실행되지 않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당시 정상들은 미국과 EU가 각각 200억 달러를 책임지고 나머지 100억 달러는 영국과 일본, 캐나다가 분담하자고 약속했다.
하지만 미국이 6개월에 한번씩 갱신하는 EU의 러시아 제재(자산 동결) 기간을 36개월로 연장하자고 하면서 교착 상태에 빠졌다. 이런 변경은 EU 회원국 전체의 동의가 필요한데 대표적인 친러 국가인 헝가리가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EU의 대출은 기존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추진할 수 있어 전체 회원국의 과반 찬성만 있으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