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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AI번역에 깊이를 더하면

기사등록 : 2024-10-14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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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민회 (이미지21대표, 미래기술문화연구원장)

"파도 같은 축하에 감사드립니다." 소설가 한강이 한국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개인의 영광일 뿐 아니라 한국어를 쓰고 말하는 모든 이에게 큰 기쁨이다. 우리도 이제 노벨 문학상 수상자의 작품을 '원어'로 읽게 되었다.

그 동안 노벨문학상은 한국에겐 닿을 듯 닿지 않는 별이었다. 일본이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오에 겐자부로, 중국이 모옌 등의 수상자를 배출했지만 한국은 시인 고은, 소설가 황석영 등이 유력 후보로 꼽혔을 뿐 수상엔 번번이 실패했다.

번역이 문제였다. 정서나 뉘앙스는 고사하고 작품의 내용조차 온전하게 전달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한국어 글쓰기는 어휘가 애매하고 문법적 논리가 부족하여 세계적 작가가 나오기 어렵다는 동의하기 어려운 주장까지 나올 정도였다.

하민회 이미지21 대표.

그런 의미에서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깊이 있는 번역'은 확실한 몫을 해냈다.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영국 번역가 데버라 스미스, 원작의 섬세한 문체를 오롯이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는 그는 2016년 한강과 함께 맨부커상을 수상했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채식주의자'를 소개하며 "한강의 통찰력 있는 탐구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날카롭고 생생한 영문으로 바꿨다."고 번역을 호평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스미스는 2010년 독학으로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한국은 부유하고 문화수준이 높은데 비해 한국어는 잘 알려지지 않았고 영국 내 한국어전문 번역가는 거의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이후 런던대 동양 아프리카대에서 한국학 석사와 박사 과정을 밟으면서 한국 문화 전반에 대해 이해를 넓혔다.

스미스는 한국어를 배운 지 3년 만에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번역했다.

11일 도쿄 한류박람회에서 신영석 범일산업 대표가 '한강 라면 기계'로 이름을 알린 인덕션 조리정수기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사진=도쿄 한류박람회 공동취재단] 2024.10.12 rang@newspim.com

"저는 항상 원작의 정신에 충실 하려 하고, 그 정신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가능한 한 언어 형태에도 충실 하려 합니다." 2016년 '한국문학 세계화 포럼' 초청 기자회견에서 스미스는 자신이 번역한 책이 영국 독자가 처음 접하는 한국 문화가 될 수 있기에 '소주'를 '코리안 보드카'로 풀어내지 않고 그대로 '소주'로 썼고 만화, 선생님 등의 단어도 우리말 그대로 번역했다고 밝혔다. 영어로 옮기되, 한국적인 색채와 질감을 잃지 않는 것에 초점을 둔 셈이다.

또 영역본을 접하는 독자들이 (한글) 원서를 접한 독자들과 최대한 근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인물 호칭에서도 한국의 유교적 위계질서와 관계성의 특성을 전달하기 위해 서양식으로 이름을 쓰지 않고 '처제의 남편'이라든가 '지우 어머니' 같은 표현을 사용했다고 밝혔다.

좋은 번역은 문화전반에 대한 이해와 작가의 목소리 톤과 질감까지 읽어내는 섬세한 공감임을 보여주었다.

한강 작가의 한글판, 번역본 도서들. [사진= 뉴스핌 DB]

한 동안 챗GPT로 사라질 대표적인 직업으로 통, 번역가가 꼽혔다. 

해외에서도 스마트폰 번역 애플리케이션만 있으면 의사소통에 별 어려움을 겪지 않고 최근엔 아예 스마트폰이 동시 통역을 해줄 정도니 그럴만하다 싶다. 

하지만 'AI가 번역가라는 직업을 사라지게 할 것인가'를 직접 연구했던 한양대 차경진 교수의 연구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AI 로 인해 사라질 줄 알았던 번역 시장은 비용이 저렴해지면서 오히려 늘어났고 특히 고급 번역가들은 일이 더 많아졌다. AI에 대체되는 현상은 번역가 라는 직업이나 번역 시장이 아니라 초급 번역가들에게만 해당되었다.

번역은 AI를 어떻게 활용하는 것이 효과적인지 모범 사례를 보여주는 분야다.

AI 번역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달 중이다. 새로운 버전의 챗봇이 등장할 때마다 문법적 오류나 어색한 번역의 빈도가 줄어들고 표현의 유연성도 향상되고 있다. 워낙 방대한 분량의 학습 데이터로 훈련하고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되고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뉴스, 비즈니스 문서, 일상 대화 등 실용적인 분야에서는 다국적 소통이 원활해지고 있다.

하지만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법률, 학술 문서 등 과 문학작품처럼 창의적인 요소가 요구되는 분야에서는 여전히 한계를 보인다. AI가 언어의 미묘한 뉘앙스와 문화적 맥락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인간의 감정적 경험이나 문화적 배경에 뿌리 깊이 연결된 문학 작품의 섬세한 뉘앙스와 다의성을 제대로 읽어내 번역하는데 부족함이 뚜렷하다.

AI 번역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려면 인간과 AI의 협력이 필요하다.

AI는 대량의 텍스트를 빠르게 처리하는 장점이 있다. 번역 초안단계에서 AI를 사용해 전문을 번역한 후 번역가가 해당 초안을 다듬는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하면 시간이나 비용을 절감하고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법률문서나 의학 보고서 등의 정확성을 요하는 번역은 반드시 번역가뿐 아니라 해당 분야 전문가가 번역을 검토하고 수정하는 과정을 거쳐야 오역으로 인한 치명적인 결과를 예방할 수 있다.

AI번역과 사람의 번역이 차이를 보일 경우엔 막연하게 AI번역을 믿기 보다는 번역의 목적과 문장의 특성을 먼저 짚어보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문학작품일 경우엔 번역가의 감수성과 직관이 더 우선되어야 한다.

지금도 앞으로도 AI번역 만으로는 완벽할 수 없다.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데버라 스미스처럼 번역가의 깊이 있는 문화적 이해와 배려, 작가의 호흡과 결을 읽어내는 섬세한 노력 그리고 다양하고 다의적인 표현 시도가 더해져야만 비로소 번역이 마무리된다. 

[서울 = 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2024.10.11 oks34@newspim.com

AI는 강력하지만 여전히 인간의 손길이 닿아야 하는 보조도구일 뿐이다. 번역뿐 아니라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다. AI가 등장하면서 고급 번역가의 일이 늘어났듯 모든 분야에서 감성과 문화 맥락 이해력, 통찰력을 갖춘 고급 인력에 대한 니즈는 더 늘어나지 않을까?

한국은 지금 한강 열풍이다. 노벨상 수상 후 반나절 만에 13만부가 판매되었다고 한다. 한국문학번역원 자료에 따르면 한강의 2016년 맨부커상 국제부문 수상을 시작으로 노벨문학상을 받기까지 8년여간 한국 작가들은 국제문학상(만화상 포함)에서 31차례 수상했다. 결코 적지 않은 수상이다.

AI라는 강력한 보조도구가 나온 만큼 번역가의 깊이 한 동이를 더해 우리 작가들의 아름다운 작품들이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어 널리널리 알려졌으면하고 바래 본다.

◇하민회 이미지21대표(미래기술문화연구원장) =△경영 컨설턴트, AI전략전문가△ ㈜이미지21대표 △경영학 박사 (HRD)△서울과학종합대학원 인공지능전략 석사△핀란드 ALTO 대학 MBA △상명대예술경영대학원 비주얼 저널리즘 석사 △한국외대 및 교육대학원 졸업 △경제지 및 전문지 칼럼니스트 △SERI CEO 이미지리더십 패널 △KBS, TBS, OBS, CBS 등 방송 패널 △YouTube <책사이> 진행 중 △저서: 쏘셜력 날개를 달다 (2016), 위미니지먼트로 경쟁하라(2008), 이미지리더십(2005), 포토에세이 바라나시 (2007)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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