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를 왜 배우고 싶으세요?" 하얀 커트 머리를 곱게 넘긴 70대 할머님이 답하셨다.
"6살짜리 손주 랑 잘 놀아보려고"
디지털 교육을 받는 시니어가 늘고 있다. 지자체 교육프로그램은 물론 내일배움카드로 국가에서 교육비를 지원하는 심도 있는 IT 교육에서도 50~70대 교육생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부분 곧 시작될 AI시대를 잘 살아보고 싶다는 이유에서 교육신청을 했다고 한다.
저출산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 중이다. 통계청에 의하면 2024년 합계출산율은 0.68명, 2023년 인구통계에선 70대 이상 인구가 20대 인구를 처음으로 추월했다. 2025년이면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0%를 넘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한다. 해외에선 '한국 소멸'까지 거론하며 우려 섞인 눈길을 보내지만 당장 뾰족한 해결책은 없다.
사실 인구감소가 반드시 그 나라의 몰락을 불러온다고 단정짓기도 어렵다. 2050년이면 전 세계가 인구감소로 축소사회로 접어든다. 젊은 세대 인구는 점점 줄고 베이비붐 세대인 60세부터 70세까지 노령 인구는 증가한다. 2030년 전 세계 인구 비율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 세대는 약 35억 명에 달하는 60세 이상 노령 인구다. 출산율 저하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은 누구나 맞아야 할 매를 그저 먼저 맞는 것뿐이다.
하민회 이미지21 대표. |
'축소되는 세계'의 저자 앨런 말라흐는 인구 감소는 해결해야 하는 것이 아닌 '관리' 해야 하는 것이라 말한다. '세계는 이제 성장의 시대에서 축소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며 인구도, 경제도, 세계도 축소된 세상에서는 지금까지 우리가 익숙하게 여겼던 것과는 다른 사고방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감소한 인구가 기후변화, 기술혁신 등의 다양한 미래의 위험과 기회를 어떻게 대처하고 생존하는가 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인류사에서 가장 부유하고 평화로왔던 시대가 대전환기를 맞고 있다. 블룸버그는 특집기사에서 고소득 국가의 5세 이하의 절반은 100세까지 살 것으로 예측했다. 인구도 경제도 축소되겠지만 과학과 기술의 힘으로 오래 사는 인간이 자신이 만든 지능체와 더불어 살아간다. 노동이 가벼워지고 시간적 여유가 많아졌다. 상상으로만 가능했던 많은 일들이 가능해지는 사회다.
인식을 바꿔야 한다. 장수사회, 축소사회는 선택이 불가능한 미래다. 막연하게 저 출생의 부담에 시달리기 보다는 대전환기에 적절한 태도와 마음가짐을 장착하고 각종 정책과 사회적 노력준비를 준비하는 것이 현명하다.
마우로 가옌 와튼 스쿨 교수는 저서 <멀티 제너레이션, 대전환의 시작>에서 인간의 수명이 늘어나고 기술 중심의 지식과 고령화가 맞물리면서 생애 전 과정의 역학 관계가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고 한다.
정해진 나이에 배우고 일하고 출산, 양육을 거쳐 은퇴로 이어지는 단선적이고 순차적인 인생 모형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그는 '퍼레니얼(Perennial)'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다년생 식물'을 뜻하는 퍼레니얼은 자신이 속한 세대의 생활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세대를 뛰어넘어 지속적으로 변화하며 거듭 나는 사람을 뜻한다. 약간의 뉘앙스 차이가 있긴 하지만 우리말 '평생 현역'과도 상통한다.
가옌 교수는 먼저 나이에 얽매이지 않는 퍼레니얼 마인드를 갖추길 권한다. 100세 시대에 '나이에 맞는' 이라는 강박은 무의미하다. 젊음과 노년, 활동과 비 활동, 풀타임과 파트타임 같은 고정된 범주에 갇히지 않아야 길어진 인생의 재설계가 가능하다.
상황에 따라 새로운 기술을 익히거나 전혀 다른 공부를 시작할 수도 있다. AI, 로봇공학, 블록체인 등의 신기술은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을 과거보다 훨씬 빨리 쓸모없게 만들고 인간을 노후화 대상으로 만든다. 과거처럼 대학 4년 배운 지식을 40년 써먹는 게 아니라 1년 배워 4~5년 활용하고 3개월 배워 1년을 사는 시대다. 평생에 거친 재학습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의 필요성도 강조한다.
신생아 모습 [사진=뉴스핌DB] |
결국 변화된 세상에 대한 적응력을 높이라는 말이다.
AI미래학자 마틴 포드는 "일자리의 개념이 다시 정의(redefined)될 것" 으로 전망한다. 예를 들어 셋이 일하던 조직에서 AI로 둘을 줄이면 남은 한 사람의 업무의 범위와 성격은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이다. 또 AI가 점점 인간을 닮으면서 감정을 읽거나 복제하거나 조작하는 심리적인 도구로까지 활용될 수 있기 때문에 관계와 감정을 다루는 소프트 스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한국은 세계에게 '먼저 온 미래'의 관심모델이다.
우리나라의 AI 기술은 세계 6위(IMD World Competitiveness Center 기준)이고 초거대언어모델(LLM)을 보유한 5개국에 든다. 로봇밀도 세계 1위이며 반도체, AI 등 미래를 여는 첨단 기술을 이끄는 선두국가이다.
한국의 중 장년층은 고학력에 배움에 익숙하다. 젊은 세대 못지 않게 SNS 활용도가 높고 AI에 대한 관심이 크다. 지자체마다 중 장년 대상의 디지털 적응 교육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고 재교육 재취업에 대한 욕구도 크다.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 지난해 60대 이상 대학·전문대 재학생은 3만4172명으로 전년 대비 3000명 가까이 늘었다.
[사진=영화 '인턴' 스틸] |
노년의 역량이 그 나라의 미래를 결정한다면 확실히 한국이 밀릴 일은 없을 것 같다.
본격적으로 장수, 축소사회를 살아가기 위한 사회적 노력이 시작되어야 할 시기다. 나이나 세대 제한 없이 일할 수 있는 유연한 제도와 열린 문화가 필요하다. 영화 <인턴>에서처럼 '60대 인턴, 20대 관리자'가 특별하지 않은 세대 간 협업이 가능한 기업이 늘어날 수 있도록 쿼터제나 세제혜택 같은 제도적 보완을 마련해야 한다.
50~60대에 대한 재교육도 다양화되어야 한다. 은퇴 후 재취업과 경력 전환을 위한 재교육은 물론 기계(AI, 로봇 등)과 생산적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는 기술 외에 팀워크를 이루고 다른 세대와 유연하게 소통하는 법, 수평적 관계 형성법 등의 소프트 스킬에 대한 교육도 요구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 1분기 노인 취업자는 606만여 명에 고용률 43.4%로 3년 전부터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60세 이상 취업자가 2년 전 30대를 앞질렀고 2023년에는 40대도 넘어선다는 전망이 나왔다. 5060세대 중 30.3%는 대졸 이상 학력 소지자다. 고급 인력은 은퇴 시장으로 쏟아져 나오는데 적합한 일자리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챗GPT를 배우고 능숙하게 활용하는 시니어가 늘고 있는 건 확실히 희망적이다. 노년이 미래가 되는 세상에선 AI프로그램과 친한 시니어가 곧 국가경쟁력이기 때문이다.
◇하민회 이미지21대표(코가로보틱스 마케팅자문) =△경영 컨설턴트, AI전략전문가△ ㈜이미지21대표, 코가로보틱스 마케팅자문△경영학 박사 (HRD)△서울과학종합대학원 인공지능전략 석사△핀란드 ALTO 대학 MBA △상명대예술경영대학원 비주얼 저널리즘 석사 △한국외대 및 교육대학원 졸업 △경제지 및 전문지 칼럼니스트 △SERI CEO 이미지리더십 패널 △KBS, TBS, OBS, CBS 등 방송 패널 △YouTube <책사이> 진행 중 △저서: 쏘셜력 날개를 달다 (2016), 위미니지먼트로 경쟁하라(2008), 이미지리더십(2005), 포토에세이 바라나시 (2007)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