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한기진 기자 = 농협중앙회가 규정 등 근거없이 NH농협금융지주와 금융자회사의 인사나 경영목표에 개입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농협중앙회장이 NH농협금융지주사 회장을 농협중앙회내 인사 및 경영회의에 불러들여 NH농협금융의 중요 의사결정을 논의했다. 회의록을 작성하지 않는 등 경영판단의 논의 근거도 남기지 않았다. 금융감독원은 최근 잇따라 터진 NH농협금융 계열사의 금융사고 원인의 하나로 중앙회 임직원이 전문성 검증 없이 금융 자회사로 손쉽게 이동하면서 내부통제 문제가 불거졌다고 본다.
22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농협중앙회는 NH농협금융지주에 비공식적이고 투명하지 않은 방법으로 금융 자회사 경영목표 및 평가기준 그리고 인사 등을 지시했다. 특히 NH농협금융지주의 '자회사경영관리규정'에 따른 금융계열사의 경영목표 및 이에 대한 평가기준을 설정하는 과정에 개입했다. 농협중앙회는 유선 또는 대면 등 비공식 채널로 금융지주사와 자회사간 협의에 참여했다.
실제로 지난 2022년 NH농협금융지주는 농협중앙회의 요청을 반영해 보험계열사에 대한 농업지원사업비 산출기준을 변경하고 보험계열사인 농협손해보험 및 농협생명보험의 경영목표와 평가기준을 조정한 사실이 있다. 이 과정에서 중앙회의 요청 내용 및 요청에 대한 검토결과에 대한 문서를 남기지 않았다. 보험계열사의 경영목표나 평가기준 심의 및 의결자료 상 관련된 경영활동의 근거 자료가 없는 것이다. 금감원은 농협중앙회의 영향력 행사 내역이 불투명하게 감춰진 것으로 해석하고 '경영유의조치'를 내렸다. 이에 따라 "공식적인 중앙회-금융지주사 협의체 구성, 논의사항 문서화, 협의 내용을 이사회 부의자료에 포함시키는 등 투명한 자회사 관리절차를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서울=뉴스핌] 한기진 기자 = 2024.10.21 hkj77@hanmail.net |
또한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은 정기적으로 '농협중앙회 인사조정위원회'에 참석했다. 회장이 참석한다는 NH농협금융지주의 규정도 없는 위원회다. 농협중앙회 인사조정위원회가 금융지주사 집행간부 등 후보를 결정하는 데 지주사 회장이 협의한 셈이다. 물론 위원회 회의자료, 논의내용 및 결과 등을 기록 관리하지 않았다.
이런 과정을 통해 농협중앙회가 NH농협금융지주 인사에 개입했다. 금융계열사에 금융전문가 보다는 중앙회의 출신들이 고위직을 차지하게 됐다.
은행, 보험, 카드, 증권 등 NH농협금융 주요 계열사 7곳의 현직 CEO(최고경영자) 7명 가운데 6명이 농협중앙회 출신이다. 이석용 NH농협은행장이 중앙회 기획조정본부장 등 중역을 지낸 것을 비롯해 윤해진 NH농협생명 대표, NH농협손해보험 대표, NH농협카드 대표, 오세윤 NH농협저축은행 대표, 서옥원 NH농협캐피탈 대표 등이 농협중앙회에 입사해 임원을 주로 했다.
NH투자증권만 유일하게 전현직 대표가 중앙회에서 일한 적이 없는 금융투자업 전문가이다. 윤병운 현 대표는 오랫동안 NH투자증권에서 IB(투자은행) 업무를 했다. 이 자리마저도 최근 중앙회 출신으로 채워질 뻔했다.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이 유찬형 전 중앙회 부회장을 추천했으나 금융당국이 "전문성 부족"과 "중앙회장의 지나친 인사개입"을 정면비판하자 한발 물러섰다.
인사제도가 최근 잇따라 터진 금융사고와 관련있다는 게 금감원의 판단이다. 내부통제 인식이 부족한 중앙회 출신 직원이 금융사고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아서다. 이복현 금감원장도 최근 "신용·경제사업들이 구분은 돼 있지만 리스크가 명확히 구분되느냐에 대해서는 좀더 고민할 지점이 있다"며 "금산분리 원칙이나 내부통제와 관련된 합리적인 지배구조법상 규율체계가 흔들릴 여지가 있는지 잘 챙겨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정감사에서도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강호동 회장 취임 이후 중앙회와 계열사, 심지어 농협대학교에까지 낙하산 인사가 채용됐다"며 "농협법 개정 취지와 다른 방향으로 회장 중심의 지배구조가 심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반면 강호동 회장은 농협중앙회가 NH농협금융지주에 과도하게 관여하고 있다는 금감원의 지적을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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