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서영욱 기자 = 오는 6일이면 삼성전자가 반도체 사업에 진출한 지 50주년이다. 1974년 12월 6일은 이건희 선대회장이 사재를 털어 한국반도체 지분 50%를 인수한 날이다. 이건희 선대회장은 1977년 나머지 지분 50%를 인수했고, 1978년 삼성반도체로 사명을 변경했다. 1980년 삼성전자 내 반도체 사업부로 흡수합병하며 반도체 사업을 온전히 품게 된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부문 매출은 1975년 2억원에서 시작해 1986년 1000억원을 돌파, 사업 시작 17년 만인 1991년에 1조원을 돌파했다. 1993년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한 뒤, 현재까지 그 위치를 유지하고 있다.
올해 반도체 매출은 사상 처음으로 100조원을 넘어 설 것으로 예상돼 50년 동안 매출 규모가 50만 배 성장하는 성과를 거뒀다.
◆누구도 반기지 않았던 반도체에 '첫 발'
삼성의 반도체 산업 진출은 운명을 건 마지막 도전이었다. 당시 국내외 경제는 변수가 많아 기업들은 혁신적 방향 설정을 고민해야 했고, 무작정 투자하기엔 위험이 컸다. 1970년대는 반도체 기술의 상용화가 시작되던 시기로, 전자제품의 보급이 급속히 확대됐다. 정부는 반도체 산업의 잠재성을 보고 기업 진출을 장려했다.
그러나 미국과 일본의 철저한 기술 보호로 자체 기술 개발이 어려웠다. 그럼에도 이병철 창업회장은 반도체를 주요 사업으로 삼겠다는 결단을 내렸고, 이는 '2·8 도쿄 선언'이라 불리며 역사적 사건으로 이어졌다. 이건희 선대회장이 세계의 반도체 전문가를 만나며 사업 계획을 세운 결과였다.
◆'애국' 청년들이 해냈다...6개월 만에 64K D램 개발
1983년 4월 삼성전자는 반도체 사업의 시작으로 D램을 선택했다. 이를 위해 미국에 현지법인을 설립하고 글로벌 인재를 적극적으로 영입하며 첨단 기술 개발에 집중했다. 이 과정에서 여러 한국인 연구자들이 뛰어난 미국의 연구 환경을 뒤로하고 '애국'의 마음 하나로 귀국했다.
어느 날 한 연구원이 실험실을 뛰쳐나오며 "만세!"를 외쳤다. 실험실에 며칠을 틀어박혀 일한 팀원들도 환호하며 서로를 껴안았다. 이들은 삼성전자의 전신인 삼성반도체통신의 이상준 박사팀으로, 미국 마이크론사의 칩을 바탕으로 6개월간 노력한 끝에 64K D램을 자체적으로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 소식은 전 세계에 충격을 주었는데, 같은 기술 수준을 달성하는 데 일본은 6년이 걸린 반면, 삼성전자는 더욱 안정적으로 6개월 만에 이를 이뤄냈기 때문이다.
1983년 12월 12일 64K D램 개발 생산 경축 행사 당시 모습. 오른쪽 사진은 그 해 11월 64K D램 시생산 성공을 기념한 개발진들 [사진=삼성전자] |
◆D램, 세계 정상에 오르다
1992년 삼성전자는 세계 D램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며 후발국의 한계를 극복하고 첨단 반도체 기술로 정상에 올랐다. 반도체 산업에 진출한 지 10년 만에 메모리 분야에서 세계 정상에 오른 것은 본격적인 신화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이후 삼성전자는 단 한 번도 추월당하지 않는 '불패신화'를 이어갔고, 1993년 메모리 전 분야, 1995년 S램, 그리고 2000년대 플래시 메모리와 비메모리 분야에서도 세계 1위를 기록했다.
또한, 삼성전자의 성공에는 운이 따른 측면도 있었다. 1990년대 마이크론사가 제기한 반덤핑 소송에서 초기 '80% 덤핑' 판정을 받았으나, 최종적으로 '반덤핑 관세율 0.74%'로 마무리됐다. 이는 미국이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오히려 한국 반도체 산업을 성장시키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도 작용한 결과였다.
◆일본제치고 '완전한 기술 자립'을 이루다
1994년 9월, 한 일간지에 특이한 전면 광고가 등장했다. 이 광고는 '한민족 세계 제패, 월드베스트 정신으로 해냈습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256M D램 개발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광고 중앙에는 구한말 당시의 태극기가 크게 그려져 있었다. 김광호 당시 삼성전자 사장은 이 광고가 한국과 일본의 D램 기술 관계가 구한말 이전의 평등한 상태로 돌아갔음을 암시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이상이었다. 삼성전자의 이 성과는 당시 일본 업체들이 지배하던 시장에서 기술 격차를 6개월 이상 벌리는 획기적인 사건이었고, 이를 통해 삼성전자는 완전한 기술 자립을 이루며 '좇는 자'에서 '이끄는 자'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삼성전자 기흥캠퍼스 NRD-K 전경 [사진=삼성전자] |
◆반도체 역사 시작된 기흥에서 새 100년 준비
50주년을 맞이한 삼성 반도체의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오는 6일 별도의 기념행사도 예정돼 있지 않다.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이 열리면서 '반도체 1위' 지위가 흔들리면서다. 고대역폭메모리(HBM) 개발에 힘을 빼면서 시장 주도권을 SK하이닉스에 내줬다. 파운드리 사업은 TSMC와 격차를 줄이기 위한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고 있지만, 차이는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같은 시기 중국은 미국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자급을 목표로 구형 반도체 생산을 확대하며 격차를 줄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삼성 반도체 역사가 시작된 기흥캠퍼스에서 앞으로 다가올 100주년을 대비해 반전을 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사업 태동지인 기흥에 미래 기술 연구의 핵심인 NRD-K(New Research & Development-K)를 건설해 혁신의 전기를 마련할 계획이다. NRD-K는 삼성전자가 미래 반도체 기술 선점을 위해 건설 중인 10만9000㎡(3만3000여 평) 규모의 최첨단 복합 연구개발 단지로 오는 2030년까지 20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전영현 DS(디바이스솔루션)부문장 부회장은 "NRD-K에서 차세대 반도체 기술의 근원적 연구부터 제품 양산에 이르는 선순환 체계를 확립하겠다"며 "삼성전자 반도체 50년의 역사가 시작된 기흥에서 재도약의 발판을 다져 새로운 100년의 미래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지난 연말 인사에서 반도체 사업부장들을 대거 교체, 경쟁력 회복에 초점을 맞춘 인사를 단행했다. 전영현 부회장이 메모리사업부장을 겸임하도록 하고, 김용관 사장을 DS부문에서 새롭게 신설된 경영전략담당으로 임명, 기술 경쟁력 회복을 위한 투자 전략 등을 지원하도록 했다.
syu@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