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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김현영 기자 = 콘텐츠 전송과 사이버보안의 대명사였던 아카마이 테크놀로지(종목코드: AKAM)가 인공지능(AI) 인프라 기업으로의 변신에 결정적인 발판을 마련했다. 첨단 AI 기업 앤스로픽과 향후 7년간 116억 달러 규모의 클라우드 컴퓨팅 공급 계약을 체결하면서다. 1998년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인 이번 계약을 계기로 월가는 아카마이의 성장 경로를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 다만 매출이 본격화하기 전 수십억 달러의 선투자가 필요하고, 계약 조건에 지분 희석 요인까지 포함돼 있어 기대와 경계가 교차하는 모습이다.
◆ 16% 급등 후 상승폭 일부 반납
시장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아카마이가 24일(현지시간) 계약 사실을 공개하자 주가는 시간외 거래에서 약 20% 치솟았다. 이튿날인 25일 뉴욕증시 정규장에서도 장중 한때 128.46달러까지 올라 전일 종가(110.41달러) 대비 16.34% 급등했다. 이후 차익 실현 매물이 나오며 상승폭을 상당 부분 반납해, 전일보다 3.20% 오른 113.94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이번 발표는 주가가 가파른 하락세를 이어가던 와중에 나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날 상승 마감에도 불구하고 아카마이 주가는 지난 5월 13일 기록한 연중 최고점(165.45달러)보다 약 31%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럼에도 주가가 주요 이동평균선을 일제히 돌파하면서, 기술적으로는 단기 상승 모멘텀이 이어질 수 있다는 신호가 켜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 최대 200억 달러까지 확대 가능 계약
계약에 따르면 앤스로픽은 7년에 걸쳐 116억 달러를 지불하고, 아카마이 클라우드의 분산형 AI 인프라와 소프트웨어를 통해 전용 컴퓨팅 용량과 관련 관리형 서비스를 이용한다. 여기에 앤스로픽이 추가 연산 자원을 필요로 할 경우 계약 규모를 최대 90억 달러 늘릴 수 있는 옵션도 붙어 있다. 옵션이 모두 행사되면 총 계약 가치는 200억 달러 안팎으로 불어난다. JP모간은 이 옵션이 큰 걸림돌 없이 행사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이번 계약은 두 회사가 올해 초 맺은 18억 달러 규모 계약을 대폭 확대한 것으로, 기존 계약의 6배가 넘는다. 계약의 무게는 아카마이 자체 실적과 비교하면 더 분명해진다. 아카마이는 지난 8월 2분기 실적 발표 당시 클라우드 고객 전체로부터 확보한 다년 약정 규모가 28억 달러라고 밝힌 바 있다. 단일 고객과의 이번 계약이 그 4배를 웃도는 셈이다.
다만 약정이 무조건 확정된 것은 아니라는 점도 짚어둘 필요가 있다. 아카마이의 공시에 따르면 계약 이행은 아카마이가 일정한 공급 및 서비스 가용성 요건을 충족하는지에 달려 있으며, 양사 모두 특정 조건에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 GPU가 아닌 CPU… AI 에이전트 시대의 새로운 수요
이번 계약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연산 자원의 종류다. 엔비디아(NVDA)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중심으로 짜인 대다수 대형 AI 인프라 계약과 달리, 이번 계약은 범용 연산을 담당하는 중앙처리장치(CPU)에 초점을 맞췄다.
대규모 모델 학습에는 주로 GPU가 쓰이지만, AI 에이전트가 코드를 실행하거나 웹을 검색하고, 여행 예약이나 고객 문의 응대 같은 업무를 수행할 때 필요한 조율 작업은 CPU가 맡는다. AI 에이전트가 처리하는 작업이 빠르게 늘어나면서 데이터센터의 CPU 수요도 다시 증가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계약을 AI 컴퓨팅 수요가 GPU 기반 학습을 넘어 CPU가 뒷받침하는 추론 워크로드로 확산되고 있다는 또 하나의 방증으로 보고 있다. 다만 아카마이는 앤스로픽이 해당 용량을 구체적으로 어떤 용도에 쓸지는 밝히지 않았다.
앤스로픽 입장에서는 공격적인 컴퓨팅 확보 전략의 연장선이다. 최근 코딩을 비롯한 각종 업무를 간소화하려는 기업 고객이 몰리면서 클로드 수요가 급증했고, 앤스로픽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알파벳(GOOG)의 구글부터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SPCX)에 이르기까지 여러 기업과 손잡고 연산 자원 확보에 나서고 있다.
◆ 공급업체가 고객에게 지분을… 이례적인 워런트 구조
계약 조건에는 지분 관련 내용도 담겼다. 아카마이는 앤스로픽에 보통주 770만 주로 전환 가능한 무의결권 우선주를 주당 111.33달러에 매입할 수 있는 신주인수권(워런트)을 부여했다. 이는 아카마이 발행주식의 최대 약 5%에 해당하며, 행사가격은 계약 발표 전날인 24일 종가(110.41달러)와 비슷한 수준이다.
워런트는 단계적으로 권리가 확정되는 성과 연동형 구조다. 약 2%는 컴퓨팅 공급 개시와 앤스로픽의 첫 대금 지급에 맞춰 행사 가능해지며, 나머지는 앤스로픽의 추가 지출과 연동된다. 앤스로픽이 아카마이 클라우드 서비스에 30억 달러를 추가로 약정할 때마다 약 1%씩 권리가 풀리는 방식이다. 결국 앤스로픽이 아카마이에 더 많은 돈을 쓸수록 더 많은 지분을 확보할 수 있는 셈이다.
아카마이가 고객과의 클라우드 계약에 워런트를 결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톰 레이턴 아카마이 최고경영자(CEO)는 "중대한 결정이지만 이번 경우에는 그렇게 하는 것이 타당했다"며 "두 회사를 더욱 긴밀하게 묶어주는 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 구조는 최근 월가가 우려해온 이른바 '순환형 AI 거래'와 맞닿아 있으면서도 방향은 정반대다. 통상적으로는 칩 제조사나 클라우드 사업자 같은 공급업체가 자사 제품을 사는 AI 기업에 직접 투자한다. 반면 이번에는 공급업체가 고객에게 잠재적 지분을 제공한다. AMD(AMD)가 지난해 오픈AI와 칩 구매 목표 달성에 연동해 워런트를 부여한 것과 유사한 방식이다.
일부 투자자들은 이런 거래들이 실제 AI 수요를 가늠하기 어렵게 만든다고 지적해 왔다. 앤스로픽 역시 아마존(AMZN),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FT), AMD 등과 컴퓨팅 구매와 투자가 맞물린 거래를 맺어왔지만, 다리오 아모데이 앤스로픽 CEO는 앤스로픽의 참여 규모가 다른 일부 업체만큼 크지 않다고 강조한 바 있다.
◆ 매출은 2027년부터, 투자는 지금부터
투자자들이 가장 주목하는 부분은 매출과 투자의 시차다. 아카마이는 올해 이번 계약에서 매출이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매출은 2027년 하반기부터 반영되기 시작해 같은 해 약 1억5000만~3억 달러를 기록하고, 2028년 말에는 연간 환산 매출(런레이트) 기준 약 17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회사는 전망했다.
반면 비용은 선행한다. 아카마이는 앤스로픽 전용 용량 구축을 위해 총 55억 달러의 설비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이는 2025년 한 해 전체 설비투자의 6배가 넘는 규모다. 이 가운데 약 16억~17억 달러는 메모리 반도체 등 핵심 부품을 미리 확보하기 위해 올해 설비투자에 추가로 배정된다.
레이턴 CEO는 투자의 대부분이 서버, 칩, 네트워크 장비 등 하드웨어에 투입되며 상당 부분이 내년에 집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것이 "설비투자의 큰 폭 증가"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수익성은 탄탄하다고 강조했다.
대규모 선투자는 자연스럽게 자금 조달 문제로 이어진다. JP모간은 아카마이가 내년에 추가 자금을 조달해야 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에드워드 맥고완 최고재무책임자(CFO)도 콘퍼런스콜에서 이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는 회사가 현금 46억 달러와 은행권이 약정한 10억 달러의 차입 한도를 보유하고 있다며, 추가 자본이 필요해지면 이사회·경영진과 논의해 주주 전체에 가장 이로운 방향으로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계약 이행을 위한 공급망 정비도 병행되고 있다. 아카마이는 같은 날 레노버 글로벌 테크놀로지 아일랜드와 하드웨어·소프트웨어·서비스 조달을 위한 3년 기간의 기본 제품·서비스 계약(MPSA)을 체결하고, 7년 기간의 핵심 작업명세서(SOW)도 함께 맺었다. 위탁생산업체 자빌(JBL)과의 협력도 확대해 맞춤형 서버 하드웨어 생산 및 수리 지원을 위한 신규 제작 요청을 진행하기로 했다. 투자자들은 이를 수십억 달러 규모의 컴퓨팅 약정을 차질 없이 이행하기 위한 핵심 토대로 보고 있다.
▶②편에서 계속됨
kimhyun01@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