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웅희 기자=반듯한 형사반장으로, 정겨운 농촌의 어른으로 시청자 곁을 지켰던 배우 최불암(87)이 세상을 떠났다.
최불암(본명 최영한)이 29일 오후 10시 30분께 서울 강서구의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숨졌다.
고인은 지난해 3월 허리 디스크 수술 이후 건강을 회복하는 데 힘써왔다. 거동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14년 동안 진행했던 KBS 1TV '한국인의 밥상'에서도 물러났다. 이후 재활을 이어갔지만 최근 상태가 나빠진 것으로 전해졌다.
최불암의 연기 인생은 1959년 연극 '햄릿'에서 출발했다. 1965년 국립극단에 들어갔고, 1967년에는 KBS의 전신인 서울중앙방송 특채 탤런트로 선발되며 활동 영역을 넓혔다. 드라마 '수양대군'에서는 스무 살을 갓 넘긴 나이에 노년의 김종서를 맡아 일찍부터 무게감 있는 연기를 선보였다.
그를 대중에게 깊이 각인시킨 작품은 MBC '수사반장'과 '전원일기'였다. 박영한 반장으로는 원칙을 지키는 수사관의 모습을, 김 회장으로는 가족과 마을을 보듬는 어른의 얼굴을 보여줬다. '그대 그리고 나'의 캡틴 박 역시 시청자들에게 오래 기억된 배역이다.
특히 '전원일기'에서는 김혜자와 22년 동안 부부로 호흡을 맞췄다. 두 배우가 빚어낸 자연스러운 일상 연기는 극 중 관계를 실제로 여기는 시청자가 있을 만큼 큰 공감을 얻었다. 특유의 웃음소리도 그의 친근한 인상을 완성했다. 1990년대에는 이름을 딴 유머가 널리 퍼지며 드라마 밖에서도 세대를 넘나드는 인기를 누렸다.
영화에서도 다양한 인물을 남겼다. '만종', '영자의 전성시대', '진짜진짜 좋아해', '바람불어 좋은날', '기쁜 우리 젊은 날' 등에 출연하며 안방극장과 스크린을 오갔다.
연기의 바탕에는 어머니에게서 배운 사람에 대한 이해가 있었다. 인천에서 태어난 고인은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었다. 어머니가 서울 명동에서 운영한 주점 은성에는 문인과 화가들이 드나들었다. 훗날 어머니의 유품에서 발견한 외상 장부에는 손님들의 실명 대신 별명이 적혀 있었다. 고인은 이를 형편이 어려운 예술인들의 체면을 지켜주려 했던 배려로 받아들였고, 어머니를 자신의 삶과 연기에 큰 영향을 준 존재로 기억했다.
배우 김민자와는 1970년 결혼해 아들과 딸을 뒀다. 김민자가 출연한 드라마를 보고 마음을 품은 뒤 같은 방송사에서 활동하며 인연을 이어갔고, 연극 무대에서도 함께했다.
한때 정치에 참여하기도 했다.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권유로 통일국민당에 합류해 1992년부터 제14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1996년 총선에서 낙선한 뒤에는 '전원일기'로 돌아와 배우 활동을 재개했다.
후반기에는 교양 프로그램을 통해 또 다른 존재감을 쌓았다. KBS '좋은나라 운동본부'를 진행한 데 이어 2011년부터 '한국인의 밥상'으로 전국을 찾았다. 음식을 매개로 지역의 역사와 평범한 이웃들의 삶을 전하며 오랜 시간 시청자들과 만났다.
어린이를 위한 나눔도 꾸준했다. '전원일기'에서 형편이 어려운 금동이를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장면을 연기한 뒤 쏟아진 격려가 계기였다. 작품에서 받은 사랑을 현실의 실천으로 이어가고자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후원에 참여했고, 40년 넘게 후원회장을 맡았다.
연기와 사회공헌 활동으로 백상예술대상, 대종상영화제 남우주연상, 국민훈장 목련장, 은관문화훈장 등을 받았다. '수사반장'과 맺은 인연은 명예 경찰 활동으로 이어져 2024년에는 치안정감에 해당하는 명예 국가수사본부장에 위촉됐다.
올해 5월에는 그의 배우 인생을 돌아보는 MBC 다큐멘터리 '파하, 최불암입니다'가 방송됐다. 고인은 재활에 집중하기를 바라는 가족의 뜻에 따라 직접 출연하지 않았다.
유족은 아내 김민자와 아들 동녘, 딸 동비 씨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됐고, 30일 오전 10시부터 일반 조문을 받는다.
장례는 오랜 세월 어린이들을 위해 힘써온 고인의 뜻을 담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장으로 치러진다. 황영기 초록우산 회장이 장례위원장을 맡고 이수성·이낙연 전 국무총리 등이 장례위원으로 참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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