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한기진 기자] 근저당권 설정비용 반환소송에서 은행이 승소한 이유는 ‘대출약관’의 적법성을 법원이 인정한 결과다. 반환소송을 제기했던 소비자단체 등은 “원래 은행이 부담해야 하는 것을 잘못된 약관에 따라 소비자에게 전가했다”고 주장했다.
6일 서울중앙지법 민사37부(부장판사 고영구)는 원고 패소 판결에서 "대출할 때 근저당 설정비의 부담주체를 고객이 선택하도록 한 표준약관 규정은 고객에게 무조건 부담시키는 것이 아니라 선택권을 부여한 '개별약정'으로 볼 수 있다"며 "무효로 볼 만한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이어 "약관조항이 무효로 인정되려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해 공정을 잃은 조항'이어야 한다"면서 "원고들이 근저당 설정비를 부담한 대가로 저렴한 대출금리나 중도상환수수료율 등의 혜택을 본 점 등을 볼 때 해당 조항이 공정성을 잃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 약관 혼란 일으킨 은행도 ‘甲’ 행위 잘못
소송에서 이겼지만, 이번 혼란의 이유는 은행이 우월적 지위를 행사한 것 때문이라는 비판이 많다.
2003년 3월 이전에 사용되던 은행여신거래기본약관은 설정비용 전액을 고객이 부담하도록 했다. 일병 ‘고객 부담형’이다. 대출 상품을 제공하면서 발생한 비용은 고객이 내는 게 정당하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공정거래위원회가 소비자 권익을 보다 강화해야 한다며 2002년 12월 근저당 설정비를 부담할 선택권을 소비자에게 줘야 한다고 권고하면서 2003년 3월 1일부터 ‘선택형’으로 바뀌었다. 은행이 부담할지 고객이 할지 선택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소송의 빌미가 된 것은 선택형 약관이 또 개정되면서다. 발단은 한국소비자원이 설정비용을 대출금리에 반영하게 해 소비자들이 어느 금융회사의 대출조건이 유리한지 판단할 수 있다고 공정위에 요청하면서다. 공정위는 이를 받아들여 설정비용을 은행이 일률적으로 부담하는 약관으로 2008년 1월30일 개정했다.
이러자 은행은 발끈해 “공정위의 개정 표준약관 사용권장은 적법하지 않다”고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은 “공정위의 처분은 적법하다”고 인정했다. 이를 본 일부 소비자단체는 “법원 판결로 종전의 선택형 표준약관 자체가 불공정한 무효 약관”이라며 “설정비를 반환하라”며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그러나 이날 법원은 약관은 적법하다고 판시했다.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소비자단체가 소송 근거로 삼은 예전 법원의 공정위 표준약관 권장처분 적법 판시는 소비자 보호측면에서 적법하다는 것이지 이전 약관(선택형)이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승소한 은행도 스스로 반성해볼 대목이 있다는 지적이다. 근저당권 설정비를 일방적이든 선택적이든 고객에게 부담시킨 것은 다른 금융사의 대출조건을 비교할 기회를 박탈했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금융소비자보호가 중요시되는 상황에서 더욱 크게 다가오는 대목이다.
◆ 반환소송 마무리
이날 승소로 근저당권 설정비 반환 소동은 마무리될 전망이다. 금융소비자원 등 소비자단체는 소송을 제기하지 않는 대신 금융사에 협조를 구하는 방식을 택했기 때문이다.
금소연은 "수십만 명이 참여하는 소송은 소비자에게 막대한 비용을 발생시키고, 개별단체들의 비정상적인 소송 관행이 지속할 우려도 있다"며 "앞으로 건전한 소비자 권익 찾기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선 조정, 후 소송'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뉴스핌 Newspim] 한기진 기자 (hkj7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