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이강혁 기자] "우선협상대상자라도 선정돼야 무엇을 논의하든지 할거 아닙니까. 계약금도 안넣고 있는데 무슨 논의할 것이 있겠습니까. 검토는 하고 있지만 현시점에서는 무엇보다 대주주의 결단이 선행돼야 하지 않겠습니까."(쌍용건설의 한 채권은행 관계자)
"오픈 딜 방식인데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해 버리면 다른 곳은 배제한다는 의미죠. 현재 상황에서 그렇게 하기는 어렵습니다. 출자전환 문제는 채권단 고유권한인데 그쪽에서 답을 내줘야 협상이 진행될 거 아닙니까."(쌍용건설 매각 측 관계자)
쌍용건설의 새주인 찾기가 안갯속이다. 외부자본 유치 형식으로 진행 중인 제3자배정방식 유상증자에 홍콩계 투자자가 입찰제안서를 제출했지만, 출자전환 등의 요구 조건에 부딪쳐 매각 측과 채권단 간 심기만 불편해지고 있다.
이러는 사이 추가적인 투자자 찾기도 크게 속도가 나지 않는다. 한 두 곳의 투자자로부터 추가 입질을 받고 있다는 소문도 있지만 매각 측 내부의 분위기는 썩 좋지 않다. 업계에서는 딜이 지체되면서 쌍용건설의 생존력만 더 안좋아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시선도 나온다.
28일 쌍용건설 매각 측과 채권단 등에 따르면 홍콩계 사모펀드 VVL이 입찰제안서에서 요구한 핵심 조건은 채권단의 출자전환이다. 자신들이 유상증자에 2700억원(2억5000만달러)을 쏠테니 채권단은 자본잠식을 해소할 수준의 출자전환을 해달라는 것이다.
일부 담보채권에 대한 이자부담을 고려해 금리인하는 물론 자본감소(감자)도 요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쌍용건설은 자기자본(1280억원)이 자본금(1488억원)을 밑도는 자본잠식 상태로, 부채비율은 700%가 넘는다. 매각 측은 이같은 VVL의 요구에 대해 지난 23일 채권단 설명회를 갖고 동의를 구했다.
채권단은 매각 측의 설명을 토대로 일단은 출자전환 등의 요구조건에 대한 검토작업에 들어갔다. 채권회수가 달려있는 문제이니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은행, KDB산업은행, 하나은행, 신한은행, KB국민은행 등이 주요 채권단이다.
하지만 채권단 분위기는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다. 출자전환 요구가 부담스러운 수준인데다, 딜을 진행하면서 채권단과의 사전논의 없이 불쑥 요구조건을 들고 왔다는 점도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새다.
한 채권은행 관계자는 "매각 측 설명으로는 VVL이 자본잠식 상태를 벗어날 수 있는 수준의 출자전환과 상환유예를 요구하고 있는데, 향후 채권회수에 불리한 점도 분명히 있다"면서 "채권단으로서는 동의를 쉽게 결정하기 어렵지 않겠냐"고 견해를 나타냈다.
또다른 채권은행 관계자는 "적자가 나면 적자까지도 예상해서 자본금이 제로베이스가 될 수준까지 동의해 달라는 얘기인데, 그러려면 일단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하든지 대주주가 결단을 먼저 내리는게 맞지 않겠냐"며 "계약금도 안넣고 있는 상황에서 채권단보고 무슨 논의를 하라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시큰둥한 반응을 나타냈다.
상황은 이렇지만 매각 측에서는 채권단의 결정이 VVL은 물론 추가적인 투자자를 물색하는데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당연한 요구라고 보기 때문이다. 새출발을 위해서 부담을 떠안고 시작할 인수자가 있겠냐는 것이다.
매각 측 관계자는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해 버리면 다른 곳은 배제하고 딜을 마무리 짓겠다는 것인데, 자칫 협상이 잘못돼 VVL이 빠지면 그 다음은 대안이 없다"며 "투자자 요구 조건에 대해서 협상을 진행하면서 추가적으로 들어올 투자자가 있는지 오픈해 놓고 있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출자전환 문제는 채권단의 고유권한인데 그쪽에서 먼저 요구 조건을 검토하고 어떤 답을 내줘야 그다음 협상이 가능해지지 않겠냐"며 "시간이 지날수록 매각작업은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관련업계 일각은 이런 맥락에서 쌍용건설의 워크아웃(기업회생절차) 신청이 오히려 현재 진행중인 매각작업보다 회생적 측면에서는 더 좋지 않겠냐는 시선도 나온다.
채권과 채무를 변제받고 감자를 단행한 뒤 다시 매각에 나서는 게 제값을 받기도 쌍용건설의 미래에도 도움되는 방향이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물론 현재로서 대주주인 캠코가 동의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관련업계의 한 관계자는 "다른 투자자가 채권단 출자전환 여부를 보고 뛰어들 가능성도 있다고는 하지만 국내 건설경기 불확실성이 더해지면서 속도가 붙을지는 미지수"라면서 "워크아웃 돌입도 염두해 둘 필요가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채권단 입장에서도 채권회수를 위해서는 어느 수준의 동의가 있어야 할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투자자의 요구 조건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결정을 내리기도 실무적으로 큰 부담"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쌍용건설 최대주주인 캠코(한국자산관리공사) 입장에서는 마음이 급하다. 오는 2월 22일이 쌍용건설에 투입된 부실채권기금의 청산기간 종료일인 탓에 딜을 마무리 짓지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 긍정적인 그림을 그려서 정부에 보고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캠코 관계자는 "채권단에게 VVL의 의사가 전달됐으니 출자전환 등에 대한 가부는 전적으로 채권단의 판단에 달린 문제"라며 선을 그엇다.
[뉴스핌 Newspim] 이강혁 기자 (ik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