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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전쟁'은 불편한 현실, G7- G20으론 역부족

기사등록 : 2013-02-20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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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은행의 대응책, 한계와 위기 수반해

[뉴스핌=김사헌 기자] 지난주 선진 주요 7개국(G7)과 주요 20개국(G20)은 각각 '환율전쟁' 위험을 억제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환율 전쟁은 쉽게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주요 선진국인 미국과 일본, 영국과 유로존 등이 경쟁적으로 극단적인 초완화정책을 구사하면서 "우리가 사는 것이 세계경제를 위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마치 2008년 금융 위기 때 무너지는 금융사들이 "우리가 죽으면 너희는 좋겠냐"면서 뻔뻔하게 납세자의 돈을 빨아가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이러한 선진국의 완화정책은 초기에는 별다른 대책이 없는 세계경제에서 수용이 불가피한 것이었다고 해도, 이제 더이상 경기 부양 효과가 없어진 마당에 전 세계인들의 공감대를 얻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이 정책이 공감을 얻지 못하면 분란의 소지가 생기는데, 이것이 곧 '환율전쟁'이란 탈을 쓰고 있다.

과거 유럽중앙은행(ECB)의 집행이사였고 지금은 하버드대학의 웨더헤드 국제문제 연구소 방문학자로 있는 이탈리아 출신 학자 로렌조 비니 스마기의 조언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스마기는 전통적인 통화정책과 환율 이론에서는 환율전쟁이란 것이 존재할 수 없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잘 설명하고 있다.

◆ 환율전쟁, 복잡한 현실에서 발생한 불편한 현상

논리를 따라가보자. 전통적인 통화정책은 고용이 충분하고 물가가 안정적일 때 경제성장을 지원하는 부양 노력을 할 수 있다. 기대 인플레이션이 잘 안정되어 있고 중앙은행의 물가 전망이 안정 목표 범위 내에 있다면, 기준금리를 낮게 유지하여 소비와 투자의 진작을 지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환율은 원래 경제의 기초여건(펀더멘털)에 따라 시장에서 결정되며, 따라서 통화정책의 기조 차이가 자연스럽게 환율에도 반영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체계에서는 '환율전쟁'은 존재할 곳이 없다.

약한 통화는 경제의 체력이 약해서 그런 것이지 의도적인, 경쟁적인 평가절하 노력 때문이 아니다. 이런 나라에게 통화가치가 낮아졌다고 비난할 근거도 없다. 환율이 정말 문제가 된다면, 통화정책으로 해결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실제 세계경제는 이런 이상적인 기준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먼저 환율은 늘 오버슈팅(overshooting)한다. 금융시장이 재화시장이나 경제보다 빠른 조정과정을 보이기 때문만은 아니고, 투자자들의 기대가 자기충족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하고 또한 금융시장의 쏠림 현상도 이러한 변화에 기여한다. 따라서  이것이 예외가 아니라 법칙이며, 쉽게 완화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또 이런 특징이 있기 때문에 외환시장 개입은 단독으로 성공하기 힘들며, 평가절상국과 평가절하국의 국제 공조가 필수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환율 변화에 따른 이해가 비대칭적이기 때문에 이런 공조는 무척 힘들다.

스마기는 더 중요한 쟁점으로 "지금 위기 상황에서 통화정책이 지니는 경기부양 효과가 미미해졌다는 점"을 든다.

모든 선진국들이 초저금리 정책을 고수하고 있지만 경제 상황은 실망스럽다. 지금 경제 회복이 느린 것은 경제 주체의 채무 부담이 아직 너무 무겁고, 불확실성이 높기 때문이다. 초저금리 여건에서도 돈을 더 빌릴 유인이나 가능성이 거의 없다. 일단 부채 수준을 줄여 지속가능한 수준까지 만드는 '디레버리징'이 우선인 상황이다.

스마기는 "경제가 본격적으로 살아나려면 먼저 경제의 채무 수준이 적절한 곳까지 내려가야 하는데, 이런 과정에서 부의 재분배가 일어나며 주로 대출자에서 차입자로 이동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 금융억압: 채권자에서 채무자로 부 이동, 미래 세대로 책임 전가

채무 감축은 저축하는 사람과 기관투자자들에게 부담이 전가되는 과정이며, 따라서 금융안정성이 위협받는다고 한다. 게다가 이런 과정은 도덕적 해이마저 불러온다.

이에 따라 저축가와 투자자의 손실을 보상하고 금융불안정성을 피하기 위해 이 과정에서 공공부채를 늘리는 방식이 도입되는데, 결코 좋은 평판을 받기 힘들다. 심지어 금융시장에서 신규 채권발행이 힘든 나라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지금 납세자나 미래 세대의 부담으로 과도하게 차입한 경제주체를 구제하는 것은 그 어떤 나라 의회에서도 다수의 찬성을 이끌기 힘들다는 얘기다.

그래서 의회의 동의를 받을 필요가 없는 중앙은행의 화폐찍기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은 '스마트한 아이디어'였다고 스마기는 회고했다. 중앙은행은 늘 하던대로 시장을 조작하여 현금을 투입하면서 금융체계 내에서 위험자산을 제거하고 금리를 낮춰 경제주체들이 다시 차입에 나설 여건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스마기는 "이런 개입이 일시적이라면 유동성 부족에 따른 포트폴리오 자금 이동이나 주요 금융시장의 혼란 위험을 억제하면서 통화공급이나 부의 분배에 지속적인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있지만, 초저금리를 어떤 시점까지 계속 유지할 것을 약속하는 식으로 개입이 계속된다면  이는 "금융억압(financial depression)" 상황이 된다"고 경고했다.

"금융억압"이란 중앙은행이 위험자산을 흡수하고 물가보다 낮은 저금리를 인위적으로 유지하는 것을 통해 손실위험을 막고 이 부담을 아마도 '손실 부담을 좀 더 잘 이겨낼 것이라고 믿고 싶은' 미래 세대로 이전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을 말한다.

국채 이자 상한선을 두거나 양적완화로 국채를 매입하는 식으로 금리를 낮추고 국채 가격을 부양하는 것은 실질금리의 마이너스화로 채권자에게서 채무자로 부를 이동시키는 효과를 가진다. 위험자산으로 자금이 이동하게 하지만 이를 통해 자산 인플레이션과 경제 전반의 인플레이션을 유발해 부담이 국민에게 전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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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적인 선택이 아니라 중앙은행이 경기 부양을 위해 부의 재분배를 수반하는 이러한 정책을 실행하는 것은 또한 재정적자를 화폐화하는 것이라고 평가된다.

스마기는 "투자자들은 이러한 "금융억압"에 당하지 않기 위해 이런 정책이 정치권의 반대에 직면하거나 중앙은행 스스로 금지하는 나라의 해외자산을 매입할 수 있다.  이러한 자금의 흐름은 "금융억압"을 하는 나라 통화의 과도한 평가절하와 반대로 자금이 유입되는 나라 통화의 과도한 평가절상을 유발할 수 있다. 기초 경제여건을 반영하지 못하는 이러한 환율 변화는 곧 불편한 '전쟁'의 양상을 띌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상황에서 전쟁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다른 나라들도 선진국처럼 경쟁적인 완화정책, 금융억압에 나서는 길 뿐이다.

문제는 이런 금융자산 보유자에 대한 억압 방식으로 '환율 평화'가 달성된다면, 그 결과는 전 세계 금융시장의 새로운 '위험보유성향 강화'로 이어질 것이며, 결국 또다른 금융 위기가 언제건 닥쳐오게 될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뉴스핌 Newspim] 김사헌 기자 (herra79@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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