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이강혁 기자] 삼성그룹이 내년 사업계획과 함께 연말 정기인사의 그림 그리기를 본격화하고 있다.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이 여전한데다 그룹 주력인 삼성전자의 실적 약화 현상, 계열사간 합병 등 사업 재조정 여파로 내년 계획 수립은 어느 해보다 쉽지 않은 작업이라는 게 삼성 내부의 설명이다. 더구나 내년은 사실상 '이재용 시대'의 원년이라는 점에서 사업과 인적자원관리에도 고려할 부분이 많다.
19일 복수의 삼성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삼성은 내년 경영상황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고 위기(위험)관리와 지속성장을 사업계획 수립의 중요 과제로 설정했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각 계열사들은 이에 따라 사업과 인사, 조직운영 등 전반적인 계획 수립에 돌입한 상태다. 예년과 비교해 비슷한 시기에 시작된 작업이지만 올해는 삼성전자의 실적 부진 현상과 그룹 전반의 사업 재조정 여파가 좀더 무게감 있게 내년 계획에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 등 각 계열사들은 이번주부터 연초 세운 목표치 달성을 점검하면서 임원들에 대한 평가작업도 시작했다. 이미 8월 말께 삼성경제연구소의 하반기 및 내년 경기전망 보고서를 전달받아 사업계획 수립에 이를 반영하고 있다.
내년 경영상황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데 삼성 내부의 이견은 없다. 때문에 내년 계획 수립은 쉽지 않은 작업이 될 것이란 얘기가 많다. 최대한 보수적으로 예산계획 등을 설정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하는 계열사 관계자가 여럿이다. 한 계열사 관계자는 "현금을 최대한 보유하라는 지침이 내려진 계열사가 있을 정도로 예산운영에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전했다.
사실 그룹 총매출의 68% 가량을 차지하는 삼성전자부터 실적 약화에 따라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고 있다. 최근 들어 강도높은 비용절감 노력과 함께 인력운영 전반에 상당한 변화를 주는 상황이다. 성숙기에 접어든 스마트폰 사업이 차이나 쇼크까지 겹치면서 실적 약화 현상은 당분간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단적으로 실적 약화의 진원지인 무선사업부를 중심으로 고강도 비용절감에 나서고 있다. 임직원 출장비를 20% 줄이고 비행시간 10시간 이하의 해외출장에서 임원도 이코노미석(일반석)을 타도록 했다. 무선사업부 임원들은 실적 부진에 따른 책임 차원에서 상반기 목표달성장려금(TAI)의 25%를 자진 반납한 바 있다.
인력운영 역시 발빠른 변화를 주면서 재조정하는 중이다. 이달 1일과 15일자로 삼성전자 본사 스탭인력 중 150여명이 수원사업장 등 현장에 재배치됐다. 지난주부터는 무선사업부 소속 소프트웨어 개발 인력 500여명이 소프트웨어센터, 네트워크사업부,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로 이동했다.
중공업 계열의 한 부장급 실무담당자는 "환율부터 사업성과까지 경영계획 짜는 일이 만만치 않은 작업"이라며 "정확한 흐름을 읽어야 위기상황에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데 최근 분위기는 흐름을 읽는 것부터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처럼 상황이 녹록치 않다보니 삼성 특유의 신상필벌 인사 기조는 올해 더욱 강해질 것이란 내부 전망이 우세하다. 지난해 연말 정기인사에서는 삼성전자의 성공 DNA를 전파하겠다며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역대 최대 규모의 임원 승진자를 배출하고 사장 등 임원급의 계열사 이동 역시 활발하게 이루어진 바 있다.
삼성 주변에서는 올해의 경우 인사정책상 승진 인사 폭은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고 관측한다. 삼성전자의 실적 약화와 계열사 합병 이슈 등을 고려할 때 사업 재조정에 따른 인력 구조조정 역시 불가피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올라갈 자리가 줄어드는 만큼 승진자를 지난해 수준으로 맞추기는 어렵지 않겠냐는 것이다.
다만 이건희 회장의 장기부재에 따라 내년이 사실상 '이재용 시대'의 원년이라는 점에서 인사와 조직의 쇄신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는 형성되고 있다. 일부 계열사에서는 임원 조기퇴임이나 사업부서 전보조치 등이 상당 폭 크게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하면서 결과적으로 전체적인 인사 폭은 오히려 역대 최대 규모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일정상 삼성 미래전략실 주도의 최고경영자 경영평가는 11월 중순께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된다. 9월까지는 각 계열사별 전무급 이상 임원 평가를 우선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고 10월 중으로 상무급 평가가 마무리되면 고참 부장급 중 신임 임원 승진자를 추리는 작업이 이루어질 예정이다.
삼성 관계자는 "각 계열사별로 올해 사업과 경영목표 등을 평가하면서 내년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며 "변수 요인들을 꼼꼼하게 살펴서 11월 중순께 각 계열사 내용을 취합해 사업계획과 정기인사가 최종 확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김상국 경희대 산업공학과 교수는 "삼성은 이건희 회장의 부재로 미래 경영환경 등에 대한 비전제시 능력이 앞으로 가장 큰 문제가 될 수 있다"면서 "게을러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끊임없는 쇄신 요구와 함께 조직원들의 능력을 집중화시키는 방향성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뉴스핌 Newspim] 이강혁 기자 (ik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