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지난 6월말 이후 국제 유가가 40% 가까이 급락한 가운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와 유럽중앙은행(ECB)은 이에 따른 경기 반등에 대한 강한 기대감을 내비치고 있다.
하지만 투자가들은 유가 하락이 실물경기 호조를 이끌어냈던 과거의 논리가 이번에는 현실화되지 않을 것이라는 데 입을 모으고 있어 주목된다.
유정[출처:AP/뉴시스] |
이날 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는 배럴당 63달러 선까지 밀렸다. 모간 스탠리가 내년 브렌트유 평균 전망치를 종전 배럴당 70달러에서 53달러로 대폭 떨어뜨린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연초 모간 스탠리의 전망치는 배럴당 98달러였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 조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내년 하반기 공급 과잉 문제가 크게 악화될 수 있고, 이에 따라 유가가 더욱 극심한 하락 압박을 받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모간 스탠리는 내년 하반기 브렌트유 가격이 배럴당 43달러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날 브렌트유는 배럴당 67.52달러까지 하락, 지난 2009년 10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정책자들은 유가 급락을 반기는 표정이다. 스탠리 피셔 미국 연준 부의장은 국제 원유의 이른바 ‘공급 쇼크’가 미국 GDP를 위축시키기보다 끌어올리는 효과를 낼 것이라고 기대했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 역시 유가 급락에 따른 결과는 긍정적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국제 유가 하락이 유로존의 디플레이션 리스크를 한층 고조시킨다는 지적과 달리 총체적인 효과는 낙관적이라는 의견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역시 유가 급락이 러시아를 포함한 원유 수출국에 불리하지만 일본과 이탈리아, 독일 등 수입국 경제에 약 1%의 GDP 성장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IMF는 국제 유가 하락을 근거로 내년 미국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3.1%에서 3.5%로 상향 조정했다.
하지만 투자은행(IB) 업계의 판단은 이와 다르다. 유가 하락으로 과거와 같이 경기를 살려내는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런던의 헤지펀드 SLI 매크로 파트너스의 파이드 옐마즈 펀드매니저는 “국제 유가 하락으로 인한 글로벌 GDP 성장 효과를 장담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미 에너지 효율성이 높아진 한편 금리가 최저치로 떨어진 만큼 유가 하락이 과거 가져왔던 순기능을 되풀이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과거 1970~2000년 국제 유가의 20% 하락은 20개월 이후 글로벌 GDP를 0.25%포인트 끌어올리는 결과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유가와 GDP의 역학 관계가 이미 깨졌다는 것이 투자가들의 진단이다. HSBC의 스티븐 킹 이코노미스트는 “정책자들이 유가 하락에 따른 효과를 과대평가하고 있다”며 “과거에는 유가 하락이 성장률 호조로 이어졌지만 상황이 달라졌다”고 강조했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유가 하락이 경기를 활성화시켰던 것은 연준의 금리 인하를 부추긴 데 따른 결과인 데 반해 이번에는 연준이 내년 금리인상을 저울질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또 다른 시장 전문가들은 최근 국제 유가 하락이 공급 과잉뿐 아니라 이머징마켓을 중심으로 수요가 위축된 데 따른 측면도 크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유가 하락의 원인이 과거와 상이한 만큼 결과 역시 다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와 함께 과거 원유 수입 의존도가 높았던 미국이 생산국으로 입지가 바뀌는 등 원유 세계의 질서가 과거와는 상이할 뿐 아니라 복잡해진 데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뉴스핌 Newspim] 황숙혜 기자 (higrac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