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중산층은 경제 뿐 아니라 사회와 정치 등 여러 부문에서 허리 역할을 하는 중요한 계층이다. 중산층이 탄탄하다는 것은 그 나라의 경제와 사회, 정치가 튼튼하다는 말로 귀결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중산층은 누구일까. 막연히 떠오르는 이미지는 있지만 구체화하긴 힘들다. '중산층 70% 달성'을 외치며 출범한 박근혜 정부 역시 중산층을 명확히 규정하지 못하고 있다. 한달에 받는 월급이 얼마인지만 계산해 일렬로 세워 놓고 가운데 그룹을 중산층이라고 부를 뿐이다. 또 이를 근거로 근로소득세를 더 내게 했다가 소위 '연말정산 파동'을 겪었다.
뉴스핌은 [한국의 중산층은 누구인가] 기획을 통해 중산층과 중산층 관련 정책을 다각도로 알아봤다.
[뉴스핌=함지현 기자] # 중소기업 과장인 A씨(40. 남)는 7살, 4살 두 아이의 아빠다. 수도권에 살면서 지하철로 1시간 정도 달려 서울로 출근한다. 그는 5000만원이 넘는 연봉을 받고있지만 본인이 중산층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전세자금 대출금과 두 자녀의 양육비, 각종 공과금, 보험료 등 생활비를 제외하고 나면 정말 남는 게 없다. 한 푼이 아쉬우니 아내도 대형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줄일 수 있는 것은 이미 줄였다. 20년 가까이 피웠던 담배도 끊었고 동창들과의 모임도 줄였다. 유치원생 아이가 다니는 태권도장을 끊어볼까 생각해 봤지만 차마 그러지 못했다. 아이들이 대학을 가려면 아직 시간이 남았지만 본격적으로 들어가야할 사교육비 그리고 대학 등록금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온다. 부부의 노후자금 준비는 지금으로선 꿈도 꾸지 못한다. A과장은 자신이 저소득층이 아닌가 생각한다.
새해 벽두부터 이른바 연말정산 파동이 거세게 몰아쳤다. 이 과정에서 정부가 중산층으로 내세운 기준과 실제 국민들이 생각하는 체감 중산층 간 큰 괴리가 드러났다.
정부는 근로소득세 납부 통계를 기초로 상위 10%에 해당하는 연소득 7000만원 이상 160만명을 고소득층으로 규정했다. 또 세금을 더 낼 수 있는 중산층을 3450만원 이상으로 정하려다 반발이 심해지자 5500만원 이상으로 전환했다. 이들은 약 80만명으로 소득상위 16%에 해당한다.
이 통계를 기초로 5500만원 이상 중산층과 고소득층의 세부담을 늘려 저소득층의 복지를 강화하겠다는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하지만 정부의 생각과 달리 이 구간에 속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본인을 중산층이라고 보지 않았다. A과장처럼 저소득층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생활이 팍팍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세 부담 증가에 대해 분노가 폭발했다.
◆ 월급 177만원~531만원이 중산층?…"적어도 500만원 이상은 돼야"
통계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에 맞춰 각종 세금이나 보험료 등을 제외하고 실제로 쓸 수 있는 가처분 소득이 중위소득 50~150%에 해당하는 가구를 중산층으로 보고 있다. 중위 소득이란 전체 가구를 일렬로 세웠을 때 가장 중간에 위치한 소득을 말한다.
이를 우리나라에 적용하면 4인 가족 기준 중위값은 354만원이 되고, 월 가처분 소득 177만~531만원 구간에 해당하는 가구가 중산층이 된다. 정부는 이를 기준으로 세금과 복지 등 각종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한다.
반면 국민들이 생각하는 중산층의 가처분소득은 월 500만원 가량으로 OECD 기준과는 차이가 있다. 뿐만 아니라 중산층의 개념을 복합적인 척도로 들여다보면 생각의 차이는 더 커진다.
최근 현대경제연구원이 내놓은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중산층의 모습은 매달 515만원을 벌어 341만원을 쓰며, 35평짜리 주택을 포함한 6억6000만원 상당의 순자산을 보유한다. 또 매달 12만원 상당의 외식을 네 차례 즐기면서도 사회적 약자를 위해 소득의 2.5%를 기부후원을 하고 1년에 3.5회 무료로 봉사활동을 한다.
그렇지만 현실의 중산층은 매달 416만원을 벌어 252만원을 쓰고, 27평짜리 주택을 포함한 3억8000원 상당의 순자산을 갖고 있다. 외식은 매달 6만원 상당으로 세 차례 즐기고 사회적 약자를 위해 소득의 1.1%를 기부후원하며 1년에 3.1회 무료봉사를 한다.
벌이에서 월 100만원 정도의 차이가 있고, 순자산 수준에서도 약 3억원의 격차가 있다. 특히 자신의 계층을 체감할 수 있는 소비생활에서 달랐다. 외식의 질과 횟수가 다르고, 기부도 달랐다. 다만 봉사활동에선 큰 차이가 없었다.
<표=송유미 미술기자. 자료=현대경제연구원> |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가 지난해 발표한 '한국사회, 중산층이 사라지고 있다'에 따르면 스스로를 중산층으로 인식하는 한국인의 비중이 80년대 후반에는 전체 인구의 60-80%에 달했다. 하지만 90년대 중반에 42%로 감소했고, 2013년 조사에서는 20.2%로 떨어졌다. 지난 30년간 지속적으로 중산층 귀속감이 축소돼 온 것이다.
◆ 중산층 이상과 현실 괴리, 왜?
이같은 인식의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정부가 소득만을 기준으로 중산층을 규정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계급적 지위나 교육수준, 가구소득, 주택규모 혹은 보유한 차종 등 보유자산 수준이 중산층에 고려되지 않는 것이다. 외국과 같이 외국어 구사 능력이나 문화·레저 수준, 약자에 대한 배려심 등은 더더욱 포함되지 않는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OECD기준으로 중산층을 규정하는 것은 소득기준일 뿐"이라며 "우리나라에서는 자산도 항목에 포함이 안 돼 있는데 데이터상으로만 보면 자산은 많지만 소득이 적으면 저소득층이 될수 있는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유리지갑'인 근로소득자들의 세부담이 크게 늘어난 반면 고소득 자영업자, 임대소득자 등의 세금은 정체상태다. 이로 인해 월급쟁이들은 상대적으로 많은 연봉을 받는다해도 물려받거나 축적한 자산이 없으면 중산층이라 인식하지 않는 셈이다.
중산층의 소득이 과거에 비해 늘어났긴 하지만 교육과 주거비 부담 등으로 인해 삶의 질이 악화된 것도 중산층 인식 차의 이유로 꼽힌다.
최근 우리 가계는 수입보다 지출이 많아지고 있다. 소비지출 항목 중 식료품비와 주거비·교육비 등이 높아지도 보니 체감물가 상승률은 더 올라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울러 주택 보유와 노후 준비 등으로 인해서 들어갈 돈이 많아지다 보니 기준으로 내세운 중산층만큼 돈을 벌더라도 살림살이는 팍팍한 적자가구가 늘어나게 됐다는 분석이다.
[뉴스핌 Newspim] 함지현 기자 (jihyun0313@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