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노희준 기자] NH농협금융이 회장 공백 시 대행체계가 취약한 지배구조의 허점을 드러냈다. 임종룡 전 회장이 금융위원장으로 내정됐지만, 마땅히 회장을 대행할 등기이사가 없어서다. KB사태 때 벌어졌던 비등기 집행임원중에서 대표이사 직무대행을 선임해야 하는 상황이 재연됐다.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농협금융은 전날 이사회에서 이경섭 부사장을 회장 직무대행으로 선임했다. 이 부사장은 등기임원이 아니다. 그래서 KB사태 때 윤웅원 당시 KB금융 부사장이 회장 직무대행을 맡기 위해 밟았던 법원의 등기 절차를 똑같이 거쳐야 한다.
금융당국과 법무부에 따르면, 상법상 대표이사 대행을 해야 할 이사에 법적 제한은 없다. 상법상 이사는 사내이사, 사외이사, '그 밖에 상무에 종사하지 아니하는 이사'(기타비상무이사)로 구별돼 있는데 누구나 직무대행으로 선임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대개 대표이사 직무 대행은 또 다른 사내이사가 맡는 게 일반적이다. 기타비상무이사는 상근을 하지 않는 것이 약점이고, 사외이사는 경영진 견제의 존재 목적상 대행이 적절치 않다는 게 일반적 시각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농협금융의 이사회에 대행을 할 만한 등기이사가 없다는 점이다. 실제 농협금융 이사회는 1명의 사내이사(임종룡 대표이사), 4명의 사외이사, 2명의 기타비상무이사로 돼 있었다. 2명의 기타비상무이사는 현직 단위 조합장 등으로 금융지주 대행에 적절치 않다는 평이다. 집행임원인 이 부사장을 대행으로 택한 이유다.
물론 이 문제는 농협만의 문제는 아니다. 하나금융 이사회도 1명의 사내이사(김정태 회장)와 7명의 사외이사로 구성돼 있다. KB금융도 현재는 사내이사 1명(윤종규 회장)과 사외이사 7명으로 이사회가 운영되고 있다. 회장 공백 시 사외이사가 아니면 집행임원 중 대행을 찾아야 하는 구조다.
반면 신한지주는 1명의 사내이사, 1명의 기타비상무이사(신한은행장), 10명의 사외이사로 돼 있어 상황이 다소 다르다. 사내이사가 없는 구조지만 대행 선임에 상대적으로 용이하고 대행체제가 안정적이라는 평이다. 주력 계열사의 대표이사인 행장이 기타비상무이사로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경영 효율화나 지주 회장의 사실상의 권력 강화를 위해 지주 사장직을 폐지하거나 행장 등 주력 계열사 사장을 지주 등기이사에서 제외한 결과다. 실제 KB금융은 어윤대 회장 시절에는 지주사 사장과 행장이 지주 등기이사로 있었고 하나금융도 2013년 말까지는 지주 사장과, 하나, 외환은행장이 등기이사로 이사회에 포함돼 있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법적 제한은 없지만, 상법 등 법의 취지로 볼 때 직무대행은 사내이사, 기타비상무이사, 사외이사 순으로 하는 게 맞다"며 "농협금융은 금융지주의 역사가 길지 않아 서열승계가 모호하고 체계도 잘 갖춰져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농협금융 고위 관계자는 "지주 부사장 등 집행임원을 등기임원으로 하느냐 등의 문제를 포함해 지배구조 모범규준을 살펴 어떻게 대행의 문제를 보완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노희준 기자 (gurazip@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