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삼성그룹의 경영승계가 빠른 속도로 전개되고 있다. 선택과 집중 전략의 사업 효율화 작업과 더불어 지배구조 개편이 큰 잡음 없이 진행 중이다. 최근 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흡수합병키로 하면서 경영승계는 사실상 9부능선에 다다랐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회장 추대 등 메인 이벤트는 남아있지만 제일모직이 움직임을 보였다는 것은 승계가 정점을 향하고 있다는 해석을 낳는다.
[뉴스핌=김선엽 기자] 지난 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전격 합병을 발표했다. 이번 합병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삼성그룹 매출의 80%를 차지하는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한층 강화하게 됐다. 길게는 1996년 삼성에버랜드(현 제일모직)의 전환 사채 발행 이후 20여년에 걸쳐 차곡차곡 진행된 승계작업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통해 9부능선을 넘었다는 게 재계의 중론이다.
삼성그룹은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로 시선이 쏠리는 것을 의식해서인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건설 사업을 통합해 운영 효율을 개선하고 삼성물산의 글로벌 역량을 제일모직에 결합해 사업 경쟁력이 높아질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합병의미를 강조했다. 또 합병 법인이 삼성그룹의 신수종 사업인 바이오제약 사업의 최대 주주로 올라서게 된다면서 2020년까지 바이오제약 사업 매출을 1조8000억원 규모로 육성할 계획이라고 주장한다.
이같은 삼성의 입장과 달리 미국 월가와 사회 일각에서는 곱지 않은 시선을 내비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분명한 권력이동"이라고 꼬집었고, 경제개혁연대(소장 김상조)는 합병 발표 직후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를 위한 사업재편"이라고 논평했다.
여의도 증권가에서는 최근 삼성물산이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신규수주를 의도적으로 회피한 것이 합병을 위한 사전작업이었다는 지적도 제기한다.
백광제 교보증권 연구원은 27일 보고서를 통해 "합병 발표 이전 합병 과정을 용이케 하기 위한 주택 등 기존 사업의 의도적 신규수주 회피 등의 논란이 존재했다"고 설명했다.
◆ 3남매 지분 높은 제일모직을 지주사로..7조원대 상속세 아껴
그렇다면 왜 제일모직은 삼성물산이라는 공룡을 집어삼켜야만 했을까.
이광수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지난 27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대주주가 지배하고 있는 회사(제일모직)와 삼성전자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 그룹 영업 지배력을 보유한 회사(삼성물산)의 합병으로 대주주 영업지배구조를 안정화시키려는 목적이 가장 컸던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2013년 7월부터 본격화된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재편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이 부회장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제일모직 사장 등 오너 3남매의 지분이 몰린 삼성SDS와 제일모직의 덩치가 커졌다는 점이다.
삼성그룹은 삼성SNS, 삼성에버랜드 등 계열사를 삼성SDS와 제일모직에 각각 합병시켰다. 또 삼성SDS와 제일모직을 나란히 유가증권시장에 상장시켰다.
3남매, 그 중에서도 특히 장남 이 부회장의 지분이 높은 회사들의 기업가치를 극대화시켜 적은 비용으로 삼성그룹을 지배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3남매가 보유하고 있는 상장 주식의 현재 가치는 16조원. 1996년 이건희 회장이 이재용 부회장에게 약 46억원(이하 세후 기준), 이부진·이서현 사장에게 각 34억원(추정치)을 증여한 것을 종잣돈으로 3남매는 20년만에 삼성그룹을 사실상 지배하게 됐다.
만약 이 자산을 사전에 증여받지 않고 현시점에서 아버지로부터 증여받는다고 가정하면 내야 하는 세금은 8조원에 이른다. 하지만 실제 3남매가 이제껏 납부한 증여세는 수백억원에 불과하다. 2006년 삼성꿈장학재단에 8000억원을 출연하고 수백억원대의 추징금을 낸 것을 고려해도 삼성家는 7조원 가량을 절세한 셈이다.
삼성 지배구조 재편의 또 다른 포인트는 시대 흐름에 맞게 순환출자 구조를 단순화시키면서도 그룹 주력사인 삼성전자에 대한 오너家의 지배력을 유지하는 경로를 하나 더 마련했다는 것이다.
삼성그룹의 순환출자 구조는 현재 '제일모직→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물산·삼성전기·삼성SDI→제일모직' 형태로 이뤄져 있다. 하지만 합병 후에는 '통합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단순화된다. 합병 후 삼성물산이 삼성생명과 삼성전자에 대해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는 형태로 바뀌는 셈이다.
이에 따라 오너가의 경영권 행사 경로도 달라진다. 삼성전자에 대한 지분이 3.38%인 이건희 회장은 금융사인 삼성생명(삼성전자 지분 7.21% 보유) 최대주주(20.76%)라는 지위를 통해 삼성전자 및 계열사를 지배해 왔다. 삼성전자 주주와, 삼성생명 최대주주라는 두 갈래로 영향력을 행사해 온 것이다.
이 부회장은 여기에 더해 본인이 최대주주(16.5%)인 통합 삼성물산을 통해서도 삼성전자를 지배할 수 있게 됐다. 합병으로 통합 삼성물산이 삼성전자 지분 4.1%를 보유하게 되기 때문이다.
한편 수년 전만 해도 두 자매가 계열분리를 해 나가는 시나리오가 거론됐지만 현재는 이 부회장의 단일 상속에 재계의 예상은 쏠리고 있다.
◆ 삼성SDS 지분, 상속세 실탄으로 쓰일 가능성 낮아
그렇다면 삼성 그룹 재편의 마지막 퍼즐은 무엇일까. 하나는 삼성생명과 삼성전자의 연결고리를 완전히 해소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상속세 마련이다.
이 둘은 당연히 밀접한 연관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부회장이 보유하고 있는 삼성SDS 지분(11.25%) 활용방안에 따라 결론이 날 것으로 보인다.
삼성SDS 지분 활용에 대한 업계 및 증권가의 시나리오는 크게 2가지다. 오너 일가의 상속세 납부에 활용하는 방안과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데 활용하는 것이다.
이건희 회장의 재산은 현재 약 18조원에 이른다. 향후 내야 하는 상속세 규모만 8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삼성은 공익재단 등을 이용한 우회적인 상속은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입장을 반복해 왔다.
문제는 2014년 세법 개정으로 상장 주식에 대해서는 물납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동산 상속세만 부동산으로 물납할 수 있다.
따라서 향후 상속받는 입장에서는 상속받은 12조원대의 주식 중 절반 가량은, 어느 시점엔가 현금화해야 한다.
이 부회장이 보유하고 있는 삼성SDS 지분의 가치는 현재 약 2조6200억원. 이를 상속세 납부를 위한 재원으로 사용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지분매각 소식이 퍼질 경우 '이재용 주식' 프리미엄이 사라질 것이므로 주가는 현재 수준을 유지하기 힘들다. 매각가가 지금 계산과 전혀 다를 수 있다. 장내 매도가 사실상 불가능한 이유다.
결국 장외거래를 통해야 하는데 삼성전자를 제외하면 매매 상대방을 찾는 것이 만만치 않다. 게다가 그룹의 전산실 역할을 수행하는 삼성SDS를 외부에 덥석 넘겨줄 가능성도 크지 않아 보인다. 삼성SDS 지분 매각시 불거져 나올 편법 증여 논란도 역시 부담스럽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삼성SDS와 삼성전자의 합병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와 삼성SDS도 합병을 통해 이 부회장 체제 공고화에 기여할 것이란 전망이다.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 지분은 0.57%에 불과하다. 반면 삼성SDS는 11.25%를 갖고 있다. 두 회사가 합병될 경우 합병법인에 대한 지분은 1.7%가 된다. (27일 종가기준) 이건희 회장이 보유한 지분과 합쳐지면 약 4.7%까지 늘어난다.
이 시나리오를 따를 경우 상속세원 마련을 위해 이건희 회장이 보유하고 있는 삼성생명 주식의 상당액을 매각할 가능성이 있다. 통합 삼성물산을 통해 삼성전자를 지배할 수 있는 구조로 전환됐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 과정에서 삼성생명이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을 가칭 삼성홀딩스(삼성전자에서 분할된 지주사) 또는 9월에 출범할 통합 삼성물산에 넘기는 시나리오를 업계는 그리고 있다.
상속세를 마련하는 또 다른 방법으로는 보유하고 있는 토지를 전부 현금화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역시 매수주체를 찾기 쉽지 않다는 점이 부담이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그룹은 최근 몇년새 사업구조 및 지배체제 개편을 통해 이재용 부회장 체제로의 전환을 사실상 마무리했다"며 "상속세가 마지막 남은 과제로, 이건희 회장의 건강을 고려할 때 조만간 가시적인 움직임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김선엽 기자 (sunup@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