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뉴스핌 권지언 특파원] 유가 약세 장기화 등으로 러시아 경제가 2009년 이후 처음 경기침체에 빠져들 것이란 불안감이 고조되자, 러시아를 떠나는 외국 투자자들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26일자 블룸버그통신은 유가 및 루블화 약세에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서방국 제재까지 지속되면서 러시아 경제 전망이 암울해졌으며 이로 인해 프랭클린템플턴과 BNB파리바 등 글로벌 투자기관들이 러시아를 빠져나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주 루블화는 달러 대비 58.5915루블로 한 주 동안 2.8%가 빠졌다. 브렌트유는 배럴당 54.62달러까지 밀리며 4월 중순 이후 최저치를 찍었으며, 작년 고점 대비로는 53%가 빠진 셈이다.
◆ 저유가 부담, 루블화 약세
국제 유가 동향 <출처 = 세계은행, 블룸버그> |
앞서 지난주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저유가 상황이 지속될 것"이라며 러시아가 경기 회복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모간스탠리는 세계 최대 에너지 수출국인 러시아의 석유 의존도를 감안할 때 다른 성장 동력이 없이는 "오랜 (경기) 한파"가 예상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골드만삭스 자산운용 이머징마켓 포트폴리오매니저 야코브 아르노폴린은 저유가가 러시아에 "쓴 약"이라며 "태풍의 눈에서 멀어졌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위기가 완전히 지나지는 않은 것 같다"고 평가했다.
경제 전망에 이처럼 먹구름이 끼면서 자금 유출세도 가속화되고 있다.
러세아 경제부는 이미 지난해 1500억달러 이상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자금 유출 규모가 올해도 900억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내다봤다.
올해 고점 이후 18% 넘게 하락 중인 러시아 주식시장에서도 자금유출이 감지되고 있다. EPFR글로벌데이터에 따르면 러시아 주식 펀드에서는 지난 2달 연속 순 자금유출세가 나타난 것으로 집계됐다.
다만 올해가 지나면 러시아 경제는 서서히 침체의 늪을 벗어날 것으로 보인다. 지난주 드미트리 베드베데프 총리는 러시아 GDP가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확장을 재개할 것으로 내다봤고, 이달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GDP가 3.4% 위축된 뒤 내년에는 0.2% 반등세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했다.
모간스탠리 이코노미스트 알리나 슬리유사르척은 "러시아 경제 전망은 정책 입안자들이 장기 성장 동력을 찾아 이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지 여부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 진입하던 기관투자자들, 다시 짐 싸
작년 최악의 증시 급락 이후 러시아로 복귀하던 투자자들은 러시아 경제 전망 악화에 다시 러시아 밖으로 발걸음을 돌리기 시작했다.
BNP파리바는 6년 전 포르티스 은행 인수 조건으로 사들인 러시아 내 합작사 TKB-BNP파리바 지분을 러시아 기업가에게 전량 매도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BNP파리바 대변인은 러시아 지분 매각에 대한 코멘트는 내놓지 않았다.
러시아 경제 활동 상황 <출처 = 세계은행> |
세계 최대 재보험사 뮤니크리(Munich Re)는 지난 19일 발표한 성명에서 앞으로 러시아 고객 서비스는 뮌헨 사무소에서 처리할 예정이라고 밝혔고, 캐피탈 인터내셔널은 러시아 자동차 리스업체 유로플랜(Europlan)의 보유 지분을 처분할 계획임을 공개했다.
지난 1991년 동구권과 소련 붕괴에 따른 민간 경제 지원을 위해 설립된 유럽부흥개발은행(EBRD)은 지난해 푸틴 대통령이 크림반도 합병을 선언한 이후 러시아 영업을 중단했으며 최근에는 에너지그룹 에넬(Enel) 러시아 보유지분을 매각하고 하이퍼마켓 체인인 렌타(Lenta) 지분을 축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모스크바 소재 매크로 어드바이저리 최고운영책임자(COO) 탐 애드쉬아드는 "일부 은행들은 지금 러시아에서 철수했다가 여건이 나아졌을 때 돌아오겠다는 계획"이라고 말했다.
MENAFN는 지금과 같은 상황이 1998년 러시아 디폴트 직후에도 나타났으며 당시 골드만삭스와 노무라 등이 모두 짐을 싸면서 러시아 증시 및 채권시장, 루블화 동반 붕괴 상황이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이후 2000년 푸틴 집권과 유가 상승세로 인한 경기 확장으로 기관들도 러시아로 돌아왔지만 현재는 장밋빛 경제 전망을 그리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뉴스핌 Newspim] 권지언 기자 (kwonjiu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