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뉴스핌 권지언 특파원/서울=뉴스핌 김성수 배효진 기자] 9월 세계 경제가 붕괴 기로에 놓일 수 있다는 '9월 위기설'이 최근 금융시장에 확산됐다. 이미 8월부터 글로벌 금융시장은 위기의 전조와 같은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출처가 확실치 않은 9월 위기설은 어디서 나온 것이며 시장 우려대로 현실화할 가능성은 있는 것일까? 일단 과거 금융시장 대형 폭락장이 발생했던 시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 '자기실현적 예언'
가장 최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시발점이 됐던 리먼 브라더스 파산사태가 9월에 터졌으며, 2011년도에도 8월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 조치가 나온 뒤 9월 유로존 재정위기가 겹치면서 금융시장이 출렁인 바 있다.
그보다 앞서는 2001년 9.11 테러가 발생했을 당시 전 세계 주식시장이 충격과 공포에 휩싸이며 폭락장을 연출했었고,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때도 주식시장이 20% 수준의 급락장을 연출하기 시작한 것이 9월이다.
24일 오후 코스피 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46.26포인트(2.47%) 내린 1829.81로 장을 마감했다. 장중 한때 1200원대를 넘어섰던 원·달러환율은 4.0원 오른 1199.0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오후 서울 명동 외환은행 본점에서 외환딜러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김학선 사진기자> |
대공황에 버금가는 경제 위기가 매 7년마다 한 번씩 발생한다는 것인데, 73년 오일쇼크부터 시작해 80년 미국 경기침체, 87년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컸던 주식붕괴, 94년 연준의 기습 금리 인상으로 발생했던 채권 패닉장, 2001년 9.11사태와 뒤이은 주식붕괴,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까지 모두 7년을 주기로 발생했는데 올해가 바로 그 다음 순서라는 것이다.
이런 모든 위기설은 대부분 자기실현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이라는 점에서, 시스템 차원의 동학으로 볼 때 단순히 무시하기 힘든 것이 많다. 특히 시스템을 흔들 수 있는 각종 변수, 이른바 위기의 방아쇠(trigger)가 될 중대한 요인들이 잠재된 상태일 때는 더욱 그렇다.
◆ 트리거와 가능성, 'G2 불확실성'에 달려
올해 세계 경제 위기를 촉발할 원인은 일단 두 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중국 경기둔화와 그로 인한 세계 경제 타격이며 또 다른 하나는 미국의 금리 인상이다. 여기에 상품시장 약세, 신흥시장 펀더멘털 부진 및 자금 이탈 등이 부가적으로 겹치면서 위기 가능성을 더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 경기 불안의 경우 지난 달 당국의 기습적인 위안화 평가 절하 조치가 나오면서 우려가 더 고조됐다. 인민은행이 세 차례에 걸쳐 위안화 가치를 4.65% 끌어내린 탓에 주변 아시아 신흥국 통화가 대부분 급락세를 보이고 증시 역시 가파른 내리막을 연출했다.
당국이 각종 부양책을 꺼내 들었음에도 경기가 살아나지 않고 증시도 패닉장을 이어가자 결국 환율 카드까지 꺼내게 된 것이란 관측이 나오면서 중국 둔화 불안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중국 경제 지표도 암울하긴 마찬가지다. 주 후반 발표된 중국의 8월 차이신(Caixin)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 잠정치는 47.1로 6년 반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중국이 지난 1분기와 2분기에 공식적으로 7%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으나 여러 경제지표를 토대로 볼 때 실제로는 이보다 낮았을 것이라는 분석도 많다.
미국 자산운용사 이튼반스 수석투자담당자 에드워드 퍼킨은 조작 우려가 적은 화물 물량이나 전기 사용 데이타 등을 토대로 분석해보면 중국 경제의 올해 성장률은 약 2% 수준에 그칠 것이란 전망을 제시했다.
연준의 9월 금리 인상은 아직까지 불확실성이 남아 있는 모습이다. 24일 공개된 전미실물경제협회(NABE) 서베이에 따르면 연준의 9월 금리 인상을 점친 응답자는 37%에 불과했으며 응답자의 1/4 가까이는 10월을 점쳤다. 17%의 응답자는 12월을 예상했으며 나머지 17%는 금리 인상이 내년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는 이달 7일부터 1일까지 진행된 월스트리트저널(WSJ) 서베이와는 대조적이다. 60명의 이코노미스트들을 상대로 한 WSJ 서베이에서는 82%의 응답자가 9월 인상을 점쳤다.
현재 연준 관계자들은 미국의 고용시장 추가 개선을 확인하고 인플레이션도 2% 수준으로 오를 것이란 확신이 있어야만 금리 인상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연준의 7월 통화정책회의 의사록에서도 금리 인상 시점에 대한 컨센서스는 형성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CME그룹 페드워치는 거래인들이 최근 9월 인상 가능성을 45%로 보고 오히려 12월 인상 가능성은 73%로 점치고 있다고 밝혔다.
◆ 신흥국 성장 신화에 균열… 맹점은 '제도·개혁'
글로벌 시장의 혼란은 각국간 정책 협력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데서 비롯됐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번 사례의 경우 신흥시장이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갈수록 확대되고, 일시적인 혼란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으로는 결국 성장엔진이 될 것이란 신화가 흔들리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신흥국 정책 당국자들은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를 겪으며 불평등 확대와 수출 의존을 기반으로 하는 경제모델의 생명이 길지 않다는 교훈을 얻었다. 때문에 글로벌 수요 창출을 위한 정책 공조로 사회기반시설(인프라스트럭쳐)과 생산성 제고를 위한 투자를 늘릴 필요성에 동의했다.
최근 5년간 선진국과 신흥국, 글로벌 수출 규모 3개월 평균 이동선 <출처=ABN AMRO> |
하지만 여전히 신흥국 경제 모델은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최종 소비자에 대한 높은 의존도를 낮추지 못했고 구조적 문제를 개선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신흥국이 최근 도미노 폭락을 연출하는 것은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도 있다.
하버드케네디스쿨의 다니 로드릭 국제경제학 교수는 "신흥시장이 뒤늦게 깨달은 교훈은 그들의 경제 성장이 생산의 효율화 같은 구조적 변화가 아닌 일시적으로 폭증한 수요와 원자재 시장의 활황, 지속불가능한 민간과 공공의 투자에 기댔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로드릭 교수는 제조업 등 수출 산업에 대한 높은 집중도가 내수 기반의 서비스 산업이 미숙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졌다고 꼬집었다. 서비스가 제조 공산품과 동일하게 거래되지 않고 기술적 활력도 떨어져 대다수 신흥국이 서비스업이 수출 중심 산업구조를 대체하기 취약한 수준이라는 의견이다.
글로벌 경기가 둔화되는 환경에 놓인 신흥국의 과제는 기술 개발과 노동력 교육, 생산 효율성 극대화 등 펀더멘털 강화를 통해 경제가 장기적인 성장을 지속하는 데 집중하는 것이라는 조언도 곁들였다.
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편집장을 엮임한 빌 에모트는 "원자재·금융시장이 출렁이고 글로벌 경제가 둔화되는 등 우호적 환경이 사라지면서 취약했던 정치와 정책, 제도의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고 진단했다.
최근 수년간 글로벌 경제성장과 원자재·금융시장에서 어떤 왜곡이 발생하더라도 저렴한 노동력과 높은 생산성을 결합한 신흥국 경제의 성장은 계속될 것이라는 굳건한 믿음이 붕괴되기 시작했다는 지적이다. 대표적으로 브라질 위기 역시 정부 지지율 급락과 그로 인한 정부의 정책 추진력 저하가 구조개혁에 걸림돌이 되고 있으며 터키와 인도네시아 역시 유사한 상황에 놓여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신흥국 경제가 정치와 제도적 측면의 유연성과 융통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이상 지속적인 성장에 대한 꿈을 버려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1997-98년 외환위기와 차이점은
신흥국 통화가치 급락이 촉발되면서 신흥국이 세계경제에 부담이 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아시아 신흥국 외환시장이 지난 1997~1998년의 위기를 되풀이할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다.
최근 신흥국에서 유출된 자금 규모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의 2배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은 투자은행 NN인베스트먼트 파트너스를 인용, 19개 신흥국에서 지난 7월 말까지 최근 13개월간 1조달러에 이르는 자금이 순유출됐다고 보도했다. 이는 지난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3개 분기 동안 순유출된 4800억달러의 두 배 수준이다.
그러나 1997~1998년 아시아 외환위기가 재연되는 것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과거 아시아 외환위기는 태국·말레이시아·한국 등 고속 성장하던 아시아 지역에 투자 붐이 일면서 대규모 핫머니가 유입됐다가 갑자기 빠져나가며 초래된 반면, 최근의 아시아 경제는 과열 상태에 놓여 있지 않아 과거와 같은 외환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은 낮다는 주장이다.
데이비드 리 캐피탈 이코노믹스 이코노미스트는 "1997~1998년 아시아 외환위기는 당시 고속 성장하던 아시아 지역에 유입됐던 대규모 핫머니 자금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면서 발생한 것이었다"며 "반면 최근의 루피아 급락은 인도네시아의 대외경쟁력 약화로 발생한 것이고, 링깃화 약세는 유가 하락 등에 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시아 국가들 국내총생산(GDP)에서 달러표시 부채가 차지하는 비중이나 외환보유고 등을 감안했을 때도 현재는 과거 위기 당시보다 상황이 양호하다는 분석도 있었다.
제이 브라이슨 웰스파고증권 글로벌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의 대외부채는 1997년 위기 직후에도 거의 대부분 해외통화 표시였던 반면, 현재는 이 비율이 70%로 떨어졌다"며 "태국도 해외통화 표시 부채에 대한 의존도가 크게 낮아졌다"고 말했다.
이어 "아시아 국가들은 이전보다 훨씬 많은 외환보유고를 확충해 놓고 있다"며 "또한 외환위기 직전에 상당수 아시아 국가들이 통화가치를 달러에 연동시킨 고정환율제를 쓰고 있었으나, 최근에는 변동환율제를 채택하고 있는 것도 외부 충격에 대한 완충 작용을 해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뉴스핌 Newspim] 권지언 김성수 배효진 기자 (kwonjiu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