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뉴스핌 정경환 기자] 이란이 우리나라 은행의 원화 계정이 예치돼 있는 자금을 인출할 조짐을 보이자 우리 정부가 급해졌다. 최근 대(對)이란 제재 해제에 따른 교역 활성화 기대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에선 이란이 과거 한국이 멜라트은행을 제재한 사실을 의식한 '보복성 공세' 아니냐는 분석과 함께 예치금리 인상 등을 위한 포석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29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오는 30일 이란을 방문해 교역 결제 시스템 관련 협의에 나선다.
송인창 기재부 국제금융정책국장은 "이번 주말에 이란으로 가서 결제 방안에 대해 협의할 예정"이
라고 말했다.
앞서 이란은 국내 우리은행과 기업은행에 예치된 자금을 본국으로 가져가겠다는 의향을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기재부는 이란 측이 국내 은행에 있는 원유수출대금을 본격적으로 회수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사실은 없다고 해명한 바 있다.
유엔의 이란 제재로 달러화 등을 통한 결제가 어려워지자 우리나라와 이란은 그간 수출입 대금을 우리은행과 기업은행의 이란 중앙은행 계좌를 이용해 원화로 결제해왔다.
이란 제재 해제 이후에도 달러화 결제는 여전히 막혀 있는 상태라, 우리나라 입장에선 해당 계좌의 필요성이 크다. 게다가 해당 계좌에 있는 자금이 3조~4조원에 이를 정도로 규모가 큰 것도 우리정부로선 부담이다.
최상목 기획재정부 1차관이 지난 25일 서울시 중구 우리은행 본점에서 열린 '이란 교역·투자지원센터' 개소식에 참석,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기획재정부> |
이란이 한국 내 자국계좌 예금 인출 카드를 꺼낼 가능성과 관련, 과거 우리나라의 이란 멜라트은행 서울지점 제재가 부메랑이 돼 돌아올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2010년 핵개발 의혹을 문제 삼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대이란 제재를 결의하자, 멜라트은행 서울지점도 우리정부로부터 외국환업무 2개월 정지 제재를 받게 됐다. 외환 업무에 대해서는 건별로 승인을 받아야 했다. 이에 멜라트은행은 기재부를 상대로 건별 승인은 부당하다는 행정소송을 냈지만 1·2심에서 모두 패소, 현재 3심이 진행 중이다.
이에 대해 멜라트은행 서울지점 관계자는 "우리가 잘못한 게 없기 때문에 소송을 제기한 것"이라고 언급했다.
다만, 지난 17일 이란 제재가 해제되자 우리 정부가 한은의 멜라트은행 서울지점에 대한 사전 승인 조치를 없애 소송 결과는 사실상 의미가 없게 됐다.
현재는 2010년과 상황이 역전됐다. 그동안은 이란이 제재 조치로 인해 돈을 빼갈 수 없었는데, 제재가 해제되면서 그 돈을 그렇게 둬야 할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멜라트은행 서울지점 관계자는 "그동안 제재 때문에 낮은 금리 등을 감수하면서 맡겨둔 것으로 아는데,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며 "우리나라 입장에선 (그 돈을) 계속 두려면 금리를 시장수준으로 높여준다든가 하는 명분을 줘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기재부 관계자는 "멜라트은행 서울지점은 전 세계 이란 은행들 가운데 제일 마지막까지 영업을 했다"며 "우리가 마지막 순간까지 최대한으로 영업할 수 있게 해줬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란에 적용됐던 UN 안보리 제재 및 미국·EU의 경제제재가 지난 17일 해제됐다. 이로써 이
란과의 교역이 자유로워지고, 투자금 송금 등 자본거래도 가능하게 됐다.
[뉴스핌 Newspim] 정경환 기자 (hoa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