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뉴스핌 권지언 특파원] 일본 금융시장이 심상치 않은 패닉장을 연출하며 아베노믹스에 적신호가 켜졌다. 금융시장에서는 당국의 개입 단행이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출처=블룸버그통신> |
10일(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일본은행(BOJ)이 마이너스 금리 도입이라는 파격적인 부양책을 꺼내 들었음에도 시장 불안감이 고조된 것은 아베노믹스가 난관에 봉착했음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2012년 12월 취임 직후 아베 신조 총리가 야심차게 추진해 온 아베노믹스는 일본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고 임금을 비롯한 물가 상승세를 정상 궤도로 올리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아베 총리는 통화완화, 지출확대, 구조개혁이라는 세 개의 화살을 쏘아 올렸다.
하지만 일단 비교적 단기간 효과를 볼 수 있으면서도 아베노믹스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여겨졌던 첫 번째 화살은 원점으로 되돌아가버린 금융시장 때문에 위기를 맞고 있다.
◆ 아베노믹스, 첫 번째 화살도 무위?
유럽에서 시작된 은행권 위기 논란이 일본으로 확산되면서 촉발된 이번 주 일본 증시 폭락세는 글로벌 경기 둔화 및 저유가 등의 우려로 인한 엔화 가치 급등과 맞물려 시장 패닉을 초래했고, 닛케이지수는 BOJ가 2차 양적완화를 발표했던 2014년 10월 이후 최저치로 후퇴했다.
투자자 불안에 안전자산 가치가 뛰면서 달러/엔 환율은 1년여래 최저치로 밀렸고 11일 아시아 외환시장에서도 환율은 112엔대까지 낙폭을 확대(엔화 강세)하고 있다.
한국시간 기준 오후 1시3분 현재 달러/엔 환율은 112.71엔으로 전날보다 0.54% 더 밀리고 있으며, 유로/엔도 127.23엔으로 0.56% 하락 중이다.
달러/엔 환율 1년 추이 (엔화 가치와 반대) <출처=블룸버그> |
그간의 경기부양 노력이 물거품이 돼버릴 위기에 놓인 아베 총리와 구로다 하루히코 BOJ 총재는 일단은 당황하지 않은 기색을 보이려는 듯한 모습이다.
이달 구로다 총재는 임금과 수익 성장 선순환이 다소 약하긴 하지만 일본 경제는 "계속해서 완만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는 기존 입장을 거듭 강조했고, 물가도 헤드라인 인플레이션은 제로 부근이지만 에너지를 제외하면 1% 가까운 상승세가 나타나고 있어 유가만 안정되면 2% 물가목표 달성은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이날 의회에 모습을 드러낸 아베 총리는 구로다 총재와 경제 회복에 여전한 신뢰를 갖고 있다며, "아베노믹스가 종료(end stage)되고 있다는 관측은 오판"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두 수장의 거듭된 당부에도 불안감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는 분위기로, BOJ가 주도한 부양 노력은 비슷한 노선을 걷고 있는 다른 경제국들에 투자심리를 되살리는 것이 금리 변경만큼 쉽지는 않다는 교훈을 남겼다는 평가가 나온다.
◆ 구로다 입에 '시선집중'
BOJ의 다음 통화정책 회의가 3월15일로 예정된 가운데 112엔대까지 밀린 환율에 당장 외환시장 개입이 단행되지 않을까 점치는 분위기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 [사진 : XINHUA/뉴시스] |
구로다 총재가 1월 말 기자회견에서 환율을 목표로 삼지는 않고 있다고 말했지만, 전문가들은 마이너스 금리 상황에서 엔화 강세가 나타나고 특히 지난 2주간 엔고 속도를 감안하면 BOJ의 속이 타들어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HSBC 전략가들은 BOJ의 구두개입은 물론 물리적 개입 가능성도 있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BOJ 개입 조치가 "수사나 추가 완화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며 일본이 환시에 직접 개입할 리스크도 커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BOJ 금리가 올 하반기 중 두 차례 더 인하될 것으로 내다봤다.
BT인베스트먼트 채권대표 비말 고르는 "엔화 강세 압력이 지속되고 있어 BOJ가 엔화 약세를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달러/엔 114엔대를 점쳤던 모간스탠리는 예상보다 빠르게 전개되고 있는 엔화 강세에 시장 개입 가능성이 그만큼 커졌다고 강조했다. 한스 레데커 모간스탠리 외환투자전략부장은 "일본 통화나 재정 당국에서 일부 구두 개입이 나올 가능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는 일본이 직접 달러 매수 엔 매도 환시 개입보다는 구두 개입 정도로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BofA 외환전략가 야마다 슈스케는 과거에도 개입 시도가 "효과적이지 않았다"며 "당장은 실질적인 환시 개입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고 말했다.
싱가포르 일간 스트레이트타임스는 일본이 2011년 이후로는 환율 안정을 위해 엔화 매입이나 매도와 같은 개입을 시도한 적이 없다며, BOJ가 이번에 개입에 나설 경우 중대 이벤트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이는 작년 8월 중국의 갑작스런 위안화 평가절하의 타격을 입은 국가들에게 또 한번의 시련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뉴스핌 Newspim] 권지언 시드니 특파원 (kwonjiu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