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뉴스핌 권지언 특파원] 바닥으로 추락한 물가 살리기와 은행권 안정화 사이 균형을 찾아야 하는 유럽중앙은행(ECB)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1조5000억유로 규모의 경기 부양 정책에도 경기 회복세는 아직 요원한 데다, 저유가까지 겹치면서 물가는 목표치인 2%에서 더 멀어졌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더욱 과감한 정책을 구사해야 하지만 이 때문에 금융권의 수익성이 더욱 악화되는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도록 보완책이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달 유로존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연간으로 0.2% 하락해 작년 9월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 영역으로 재진입했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 <출처=AP/뉴시스> |
여기에 상황을 더 골치 아프게 만드는 것은 유럽 은행권이다.
초완화 통화 정책이 지속되면서 유럽 은행 부실 규모는 작년 상반기 기준으로 1조유로로 불어났다. 이번에 ECB 추가 금리인하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면서 금융권의 재무여건 악화 우려는 심화되고 있다. 이 때문에 유럽 은행업종 주가가 지난달 초 하루 만에 8%~10% 폭락하는 등 패닉장을 초래하기도 했다.
8일 자 월스트리트저널(WSJ)은 ECB가 오는 10일 통화정책회의에서 역내 은행권의 여건 악화를 초래하지 않으면서 인플레이션을 끌어 올려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마주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경제전문가들 대다수는 ECB가 예금금리를 마이너스 0.4%로 최소 0.1%포인트 더 낮출 것으로 내다보고 있으며 월간 채권매입 규모를 700억유로로 최소 100억유로 확대할 것으로 점치고 있다. 투자자들 역시 물가를 끌어 올리기 위해 ECB가 예금금리를 0.12%포인트 인하하고 월간 채권매입을 100억~150억유로 정도 더 확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마이너스 금리를 더 낮추면 은행권 수익성이 더욱 악화될 것이 자명한데, 그렇다고 소극적인 조치를 취한다면 부양을 기대했던 투자 실망감이 금융시장을 또 다시 흔들 위험이 있다는 점에서 ECB는 딜레마에 직면했다.
국제결제은행(BIS)은 지난 주말 마이너스 금리 정책의 부작용을 지적하며 ECB가 금리를 추가로 인하하더라도 개인이나 기관 투자자들이 어떻게 반응할지는 여전히 미지수라고 경고했다.
은행들의 비용을 덜어주기 위해 일부 전문가들은 ECB가 일본은행(BOJ)처럼 은행 지급준비금 잔액에 대해서 부분 부담을 지도록 하는 다중 금리 시스템을 도입할 것으로 전망한다. 또 채권매입 확대와 관련해서는 안전자산으로 간주되는 독일국채 등 일부 시장을 피하는 방안을 마련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채권 매입 대상을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국채 등 특정 시장으로 집중할 경우 개별 정부를 재정지원 한다는 측면에서 유럽연합(EU) 조항에 위배될 소지가 있어 문제가 될 것이란 우려도 있다.
일각에서는 암울한 유로존 경제 전망을 감안해 ECB가 일본처럼 주식이나 부동산 등 신규 자산시장으로 눈을 돌릴 것이란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작년 말 통화정책회의에서 나타났듯이 ECB 내부에서도 신규 부양책에 대한 견해가 엇갈리고 있어 오는 10일 최종 결정을 둘러싼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한 상태다.
[뉴스핌 Newspim] 권지언 시드니 특파원 (kwonjiu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