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 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유럽중앙은행(ECB)이 채권시장을 ‘독식’하면서 유동성 위축과 가격 왜곡이 심각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이달 통화정책 회의에서 비금융 부문 투자등급 회사채를 매입할 것이라고 밝힌 뒤 신규 발행 및 매수 열기가 뜨거운 가운데 시장 질서가 무너질 것이라는 경고다.
실제로 사노피와 로열 더치 셸의 회사채 수익률이 0% 아래로 떨어지는 등 ECB의 정책 파장이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유로화 <출처=블룸버그통신> |
23일(현지시각)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ECB가 계획한대로 자산 매입 규모를 월 800억유로로 늘릴 경우 7조유로 규모의 국채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5%로 뛸 전망이다.
이는 현 시점의 비중에 비해 두 배 높은 수치다.
코메르츠방크에 따르면 ECB는 국채와 정부채를 매월 440억유로 가량 사들이는 것으로 파악된다. 하지만 양적완화(QE) 규모를 200억유로 늘릴 경우 국채 매입이 월 600억유로에 이를 전망이다.
회사채 시장에서도 흡사한 상황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ECB는 2분기부터 우량 회사채 매입에 본격 나설 예정이며, 이로 인해 투자등급 회사채 시장에서 10%에 이르는 비중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됐다.
인플레이션과 성장률을 부양하기 위해 마련된 ECB의 대응책은 이미 채권시장 유동성을 조이기 시작했다. 독일 단기물 국채를 필두로 주요국 국채 수익률이 속속 0% 아래로 떨어진 것이 이를 반영하는 단면이다.
니콜라스 포레스트 칸드리암 인베스터스 그룹 글로벌 채권 헤드는 CNBC와 인터뷰에서 “QE가 이미 채권시장의 유동성을 크게 위축시켰다”며 “국채시장에서 ECB의 비중이 25%에 이를 경우 거래의 흐름이 막힐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올해 유로존의 국채 발행이 마이너스로 떨어질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BNP 파리바는 ECB의 자산 매입 프로그램을 감안할 때 올해 회원국의 국채 발행액이 마이너스 1320유로로 내려앉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이 경우 이미 전례 없는 수준으로 떨어진 국채 수익률은 추가 하락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편 RBC는 ECB가 투자등급 회사채를 매월 50억유로 가량 사들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2017년 3월 QE 종료 시점까지 매입 규모가 약 500억유로에 이를 것이라는 얘기다.
ING에 따르면 유로존 회원국 이외 해외 기업이 발행한 유로화 표시 채권을 제외하고 투자등급 회사채 규모가 2018년 1월 총 1조2000억유로를 기록할 전망이다. ECB가 QE를 종료하는 시점에 우량 회사채 시장의 10%를 잠식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RBC의 피터 샤프릭 매크로 전략가는 “가뜩이나 채권시장의 깊이가 얕아진 상황에 ECB가 내년 3월까지 대규모 자산 매입을 지속할 때 수익률부터 스프레드까지 주표 지표들이 과거에 경험하지 못했던 영역으로 빠져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업계에 따르면 160억유로에 이르는 회사채 물량이 마이너스 수익률에 거래되고 있다. 오는 5월 만기 도래하는 프랑스 제약사 사노피의 회사채 수익률이 마이너스 0.016%에 거래됐고, 셸의 2018년 만기 회사채 역시 마이너스 0.021%까지 떨어졌다.
[뉴스핌 Newspim] 황숙혜 뉴욕 특파원 (higrac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