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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이지연 기자] 드론 업계에서 세계 최초의 억만장자가 탄생했다. 세계 상업드론 시장 70%를 접수한 DJI 창업자 왕타오(汪滔 프랭크왕)의 얘기다.
DJI는 기업가치 약 12조원의 글로벌 1위 상업용 드론 업체다. 화웨이, 텐센트에 이어 혁신도시 선전(深圳)이 낳은 글로벌 공룡기업으로, 창업자 왕타오는 스타트업 업계에서 가히 신적인 존재로 여겨진다.
고작 36세에 ‘드론의 제왕’으로 불리는 왕타오는 까다로운 완벽주의 기질 때문에 동료들과 갈등을 빚기도 했지만, 드론에 대한 ‘병적인 고집’이 오늘날의 DJI와 포브스가 선정한 중국 10대 혁신인물을 만들었다.
<이미지=바이두(百度)> |
왕타오는 1980년 저장성(浙江省) 항저우(杭州)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교사, 아버지는 엔지니어였다. 부모님이 선전에서 작은 회사를 운영하기 시작하면서 왕타오는 항저우에 남아 대학 입시시험을 치를 때까지 선생님 집에서 하숙 생활을 한다.
하늘에 대한 동경은 왕타오가 초등학생 때 헬리콥터에 관한 만화책을 읽은 후부터 시작됐다. 그다지 공부를 잘 하지 못 했던 왕타오가 한 번은 우수한 성적을 받자 부모님은 그가 꿈에도 그리던 원격조종 헬기를 선물했다. 하지만 조종 난이도가 높아 툭하면 추락했다. 낙심한 왕타오는 이때부터 자동제어 헬기에 대한 꿈을 품기 시작한다.
화둥사범대학 전자과에 재학 중이던 왕타오는 3학년 때 자퇴하고 홍콩과기대학 전자 컴퓨터 공학과에 입학했다. 2005년, 왕타오는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한다. 과 동기 두 명과 함께 원격조종 헬기의 비행 제어 시스템을 졸업과제 주제로 택한 것. 장학금 1만8000홍콩달러를 들여 6개월간 수업도 빠져가며 졸업과제에 매진했다. 하지만 시연 단계에서 공중에 머물러 있어야 할 비행기가 추락하면서 C라는 충격적인 점수를 받고 만다.
유럽 명문대에 유학하려던 왕타오의 꿈은 추락한 비행기와 함께 박살 나는 듯 했다. 하지만 왕타오를 눈여겨 본 리쩌샹(李澤湘) 로봇기술과 교수는 그를 대학원 제자로 받아들였다. “왕타오가 남들보다 더 똑똑한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성적이 우수하다고 해서 사업적 기질이 뛰어난 건 아니다”. 리 교수는 일찍부터 왕타오의 타고난 리더십을 알아본 것이다. 그는 이후 DJI의 초기 고문 겸 투자자가 된다. 현재는 DJI 이사회 의장으로 지분 10%를 보유하고 있다.
2006년, 왕타오는 졸업과제 멤버 두 명과 함께 홍콩과기대학 기숙사에서 DJI를 창립, 쓰고 남은 학교 장학금을 모두 쏟아 부어 헬기 비행 제어 시스템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다. 이후에는 회사를 선전으로 옮겨 방 3개가 딸린 아파트에서 연구를 이어갔다.
“나는 순수한 구석이 있다. 어릴 적부터 좋아하던 것을 늘 현실로 만들고 싶었다”. 왕타오가 당시 마이너 시장이던 헬기 비행 제어 시스템 사업에 뛰어든 이유는 다름 아닌 그의 어린 시절 비행에 대한 동경 때문이었다.
하지만 초창기 멤버였던 과 동기 2명은 험난한 창업여정과 왕타오의 완벽주의 성향을 견디지 못 하고 창업 2년만에 DJI를 떠나고 만다. 다른 직원들도 지분 분배에 불만을 품고 회사를 떠났다. 북미 영업을 담당하던 콜린 귄(Colin Guinn) 또한 소송까지 불사하며 왕타오와 마찰을 빚었다. 그는 현재 DJI의 가장 위협적인 경쟁사 3D ROBOTICS에 재직 중이다.
DJI가 2008년 선보인 첫 헬기 비행 제어 시스템 XP3.1은 출시 후 2년 뒤에야 경쟁자를 따돌리며 빛을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때 홍콩과기대학이 200만위안을 투자했다. 본래 20명 규모의 연구팀만 잘 굴러가면 된다고 생각하던 왕타오는 드론 시장의 잠재성을 차츰 깨닫기 시작한다. 이후 2009년부터 2014년간 DJI의 매출은 매해 2~3배씩 증가했다.
헬기 비행 제어 시스템에 매진하던 왕타오를 다중 프로펠러 드론 시장으로 이끈 것은 한 뉴질랜드 중개상의 조언 덕이었다. 헬기 비행 제어 시스템 구매자의 90%가 카메라 고정 장치를 다중 프로펠러 비행기에 설치한다고 왕타오에게 일러준 것. 다중 프로펠러 드론은 지금의 DJI를 있게 해준 효자상품이다. 2013년부터 전 세계를 휩쓴 DJI의 간판 제품 ‘팬텀’이 바로 다중 프로펠러가 달린 멀티콥터다.
왕타오는 이후 카메라 일체형 드론을 출시한다. 당시 드론 애호가들은 부품과 카메라를 따로 구매해 직접 조립해야만 했다. 바로 이 점을 왕타오는 날카롭게 간파했다.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제품이 여태껏 중국에 없었다. 저렴한 가격에만 기댔을 뿐이다. 이 시대의 기업은 남다른 생각과 가치관으로 성공을 거머쥐어야 한다. DJI는 ‘진짜’ 제품을 만들어 그다지 자랑스럽지 못한 중국의 현재를 바꿀 것이다”
기술과 제품에 대한 왕타오의 고집은 그가 직접 고안해낸 말에서도 엿볼 수 있다. ‘격극진지, 구진품성(激極盡志, 求眞品誠)’는 DJI의 모토로서 열정을 가지고 최고를 추구해 좋은 제품을 만든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회사의 모토마저 혁신을 추구하는 왕타오의 열정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왕타오 DJI 대표 <이미지=바이두(百度)> |
왕타오는 지난해 4월 뉴욕에서 개최한 신제품 팬텀3 발표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이 제품은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완벽하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왕타오는 스티브 잡스의 생각에 공감하고 또 그를 좋아하지만, 세상의 그 어느 누구도 왕타오의 존경심을 이끌어내지는 못 했다. 아마 완벽한 사람이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왕타오는 중국 IT업계의 발전을 위해 작년부터 RoboMasters라는 전국 대학생 로봇 대회를 열어 후진 양성에 힘쓰고 있다. 아울러 창업 인큐베이터 사업을 통해 스타트업 회사를 돕고 있기도 하다.
드론 시장의 레드오션화, 산업스파이, 경쟁사의 성장 등 왕타오는 고민이 많다. 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는다. 500명 이상의 R&D팀, 10년간 축적한 기술, 수평화된 조직, 빠른 피드백과 판단력이 자신감의 원천이다.
하드웨어를 넘어 소프트웨어 개발 키트(SDK) 영역에 뛰어든 왕타오. 그는 지금도 자동차 트렁크에 드론을 보관해 한적한 곳을 지날 때면 차를 멈춰 세워 어릴 적부터 품은 ‘자신의 꿈’을 하늘에 날리곤 한다. 하늘을 향한 목마름이 해갈될 때까지 그의 비행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뉴스핌 Newspim] 이지연 기자 (delay@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