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 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안전성과 현금흐름을 동시에 제공하는 미국 국채로 노후를 대비했던 일본 은퇴자들이 혼란에 빠졌다. 환율 헤지비용을 감안할 때 미국 국채 투자에서 사실상 손실이 발생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영국 퇴직연금 업계에는 비상이 걸렸다. 바닥을 뚫고 내리는 금리 때문에 부채가 눈덩이로 불어났고, 앞으로 전망 역시 잿빛이다.
미 달러화<사진=블룸버그> |
기업 이익을 주가로 나눈 값이 10년물 국채 수익률보다 높을 때 주식이 상대적인 투자 매력을 지닌다는 월가의 오랜 원칙은 설 자리를 잃었다. 이 모델을 적용할 때 적정 주가 지수 적정치가 누구도 받아들일 수 없는 비현실적인 수치로 산출되기 때문이다.
전례 없는 초저금리가 금융시장을 뿌리부터 흔들었고, 이에 따른 파장이 주식 투자자부터 퇴직자까지 지구촌 인구의 실생활로 스며들고 있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 이후 ‘뉴 노멀’로 지칭되는 현상이 곳곳에서 등장했지만 최근 마이너스 금리 정책(NIRP)에 이르기까지 중앙은행의 비전통적 행보가 수위를 더하면서 자산시장이 ‘아마겟돈’을 연출하고 있다.
미국 국채 투자로 안정적인 은퇴 생활을 꾸려온 일본의 세키아이 카오루 씨는 지난 4월부터 보유 물량을 팔아치우고 있다.
일본은행(BOJ) <출처=블룸버그> |
일본 국채에 비해 상당폭 높은 이자 수입을 제공하는 동시에 안전성이 높다는 이유로 미국 국채를 매입했지만 금리 하락으로 인해 환헤지 비용을 감안한 실질 수익률이 마이너스 영역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유럽과 일본의 마이너스 금리 정책이 투자자들의 달러화 자산 선호도를 높인 데 따라 환헤지 비용이 전례 없는 수준으로 뛰었고, 미국 금리 역시 동반 하락한 탓이다.
사정은 미국 국채를 보유하고 있던 다른 일본 은퇴자들도 마찬가지다. 노후 대비의 공식으로 통했던 투자 기법이 설 자리를 잃었다는 것이 일본 자산운용업계의 얘기다.
핌코의 사킨 굽타 채권 펀드매니저는 8일(현지시각)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미국 국채에 의존한 노후 대비는 옛 말”이라며 “최근 금융시장 여건은 미국 국채 투자 수요를 줄이는 데 그치지 않고 매도를 촉발시킬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초저금리가 연금과 보험 업계를 위협한다는 것은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하지만 최근 상황은 장기물 국채 이자에 의존했던 관련 업계의 자산 운용이 난항을 맞은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부채 규모가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고 있어 투자자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이날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영국 FTSE100 지수 및 FTSE250 지수 편입 기업의 퇴직연금 부채 규모가 2010년 말 640억파운드(835억달러)에서 지난 5월 말 기준 980억파운드로 불어났다.
월가 트레이더들 <출처=블룸버그> |
같은 기간 퇴직자들에게 지급한 연금이 750억파운드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미래 연금 가입자들에게 지급해야 할 금액과 자본의 차액인 연금 부채가 눈덩이로 불어난 것은 금리 하락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시장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금리가 상승세로 돌아설 경우 더 큰 문제다. 마이너스 수익률에 거래되는 채권이 12조달러에 이르는 등 금리 하락이 이미 한계 수위를 벗어나면서 금리 등락에 대한 채권 가격의 진폭을 의미하는 듀레이션 리스크가 크게 치솟았기 때문.
빌 그로스 야누스 캐피탈 펀드매니저를 포함한 월가의 구루들이 연이어 경고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채권시장의 버블이 터질 경우 충격이 퇴직연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금융업계 전반에 쓰나미를 일으킬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 밖에 주식 운용자들의 원칙에도 저금리로 인해 적잖은 변화가 발생했다. 국채 수익률과 상장 기업의 이익 수익률의 비교를 근간으로 한 밸류에이션 평가가 무의미해졌다는 지적이다.
유세프 압바시 존스트레이딩 인스티튜셔널 서비스 전략가는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현 시점에 이 얘기를 꺼내는 것은 얼빠진 짓”이라며 “믿을 수 있는 것은 기업의 이익 증가뿐”이라고 강조했다.
[뉴스핌 Newspim] 황숙혜 뉴욕 특파원 (higrac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