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강필성 기자] “기사 보고 웃었습니다. 독립운동 하는 것도 아니고…. 옷에 안중근은 왜 쓴 거에요?”
지난 24일 롯데그룹 수사와 관련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에서 나온 말이다.
정승인 코리아세븐 사장이 롯데그룹 수사와 관련 검찰에 소환 조사될 당시 바지 속에 ‘안중근’이라는 이름 석자가 적힌 종이를 부착하고 불리한 진술을 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일화에 대한 검찰의 반응은 이 정도였다.
하지만 이 에피소드에 대한 롯데그룹의 분위기는 정 반대였다.
이인원 롯데 정책본부 부회장. <사진=김학선 사진기자> |
검찰은 증거 인멸 의지와 함께 불리한 진술을 하지 않겠다고 작심한 것으로 본 반면, 롯데그룹 내부에서는 그야말로 목숨을 건 결의로 이해한 것.
이인원 롯데그룹 정책본부장 부회장의 갑작스러운 자살 소식에 롯데그룹의 분위기가 침통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26일 경찰과 롯데그룹 등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이날 오전 7시 10분께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의 한 산책로에서 목을 맨 사체로 발견됐다. 이 부회장의 검찰 소환 조사를 수 시간 앞둔 시점이었다.
현재까지 그를 자살로 내 몬 원인은 추측만 무성할 뿐이다. 이 부회장의 A4용지 3장 분량의 유서는 인근에서 발견된 승용차 안에서 발견됐지만 아직 구체적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이 유서에는 “롯데그룹에는 비자금이 없다”, “신동빈 회장은 훌륭한 사람이다” 등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진다.
때문에 롯데그룹 안팎에서는 이 부회장의 자살의 원인이 검찰의 수사와 무관치 않으리라는 시각이 많다. 검찰은 지난 6월 롯데그룹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작으로 약 70일이 지난 현재까지 고강도의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여기에는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오너일가를 포함해 주요 사장단, 심지어 오너인 신 총괄회장의 사실혼 관계 서미경씨까지 수사대상으로 올랐다. 이 부회장 역시 배임·횡령 혐의의 피의자로 지목된 상황이다.
롯데그룹 자문을 맡고 있는 대형로펌과 연일 소통하며 검찰 출석을 대비했던 이 부회장. 그가 받고 있는 혐의의 무게가 심경을 짓눌렀던 것인지, 오너 일가로 향하는 검찰의 칼끝에 '롯데 충신'으로 압박감을 느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롯데그룹 2인자이자 오너일가와 가장 가까웠던 이 부회장의 입장에서는 일련의 수사와 자신이 출두해 조사를 받아야할 과정 등에 적잖은 부담과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롯데 충신으로 억울한 마음까지 더해지며 심리적 충격이 커졌을 것이란 관측이다. 그가 유서에서 "롯데그룹에 비자금이 없다"고 항변한 것은 이런 심경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이를 검찰의 탓으로 돌리기는 무리가 있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피의자가 검찰의 강압적인 수사 때문에 심리적 압박을 느끼고 자살하는 경우가 없지는 않지만 소환조사도 받지 않았던 이 부회장의 사례에 비교하기는 적절치 않다”고 평가했다.
다만, 검찰이 이번 이 부회장의 죽음에 상당한 부담을 안게 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검찰 측은 이날 “진심으로 안타깝게 생각한다. 고인에게 애도를 표하며 명복을 빈다”며 “롯데그룹 수사 일정의 재검토를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실제 수사팀은 소환 계획을 모두 취소하고 향후 수사 방향과 일정 등을 숙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르면 다음주부터 오너일가를 불러 조사하겠다는 계획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한편, 롯데그룹은 침통한 분위기 일색이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롯데그룹은 누구보다 헌신적으로 롯데의 기틀을 마련한 이 부회장이 고인이 됐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운 심정”이라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강필성 기자 (feel@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