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이고은 기자] 이탈리아 국민투표에서 개헌안이 부결된 것은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이나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와는 다르며, 결과에 대한 우려가 과도했다는 분석이 외신에서 잇따라 나오고 있다.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사진=블룸버그> |
영국 가디언(Guardian)은 5일 브렉시트나 트럼프 당선과는 다르게 이탈리아 개헌 부결은 세계화와 엘리트에 대한 반감으로 일어난 포퓰리즘의 반란으로 볼 수 없으며, 세 가지 사건을 동일 선상에 놓을 수는 없다는 분석을 제시했다.
◆ 반이민 정서와 무관
개헌 반대 의견은 포퓰리스트 야당인 오성운동(Five Star Movement)이나 반EU 민족주의 정당인 북부동맹(Northern League) 뿐만 아니라 주류 정치인들 사이에서도 터져나왔다.
여기에는 마테오 렌치 총리 자신의 정당인 민주당(PD) 내 당원들과 마시모 달레마, 마리오 몬티와 같은 전 총리, 저명한 학자 및 헌법 재판관까지 포함되었다.
세계화주의자 대 고립주의자, 혹은 반 체제주의자 대 친 체재주의자로 깔끔하게 편이 나누어진 싸움이 아니었다는 것.
이날 파이낸셜타임스(FT)는 외국인 비율이 높은 지역에서는 개헌안에 반대표를 던진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지만, 관계성을 명확하게 밝혀내긴 쉽지 않다고 전했다.
최근 들어 외국인 비율이 높아진 것은 브렉시트 때와는 다르게 이탈리아 국민투표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았으며, 반(反) 이민정서와 개헌안 무산은 무관하다는 것이다.
이탈리아 투표는 결과 면에서도 브렉시트나 트럼프 열풍과는 다르다. 투표로 인한 결과가 훨씬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개헌 부결로 수 주 내에 금융시장에 변동성이 일어날 수 있고, 이탈리아 국채 수익률이 상승하고 부실채권을 보유한 은행주가 하락할 가능성이 타진되고 있긴 하다. 그러나 유럽중앙은행(ECB)가 이미 이탈리아 채권의 수익률이 지나치게 오르지 않도록 조치할 것이라고 발언한 바 있다.
또 투자자들이 이탈리아의 정치적 안정성이 위험에 처하지 않았다고 인식하면 은행권 역시 큰 혼란에 빠지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 "개헌 부결, 오성운동 부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가디언은 이번 개헌 부결이 많은 애널리스트들이 두려워한것과 같이 포퓰리즘 정당인 오성운동의 부상으로 곧바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문은 렌치의 사임이 조기 총선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집권 민주당이 최근 오성운동의 급부상으로 인해 조기 선거를 치르는 데 난색을 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 세르지오 마타렐라(Sergio Mattarella) 대통령이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탈리아에서 존경받는 정치인인 피에로 카를로 파도안(Pier Carlo Padoan) 재무장관이 차기 총리를 맡는 과도정부가 구성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이날 마타렐라 대통령은 렌치 총리에게 내년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할 때까지 총리직을 지켜달라고 요청했고, 렌치 총리는 대통령의 권고를 받아들였다.
개헌에 반대표를 던진 유권자들의 정치 성향이 좌나 우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것도 다음 선거를 섣불리 예측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탈리아에서는 오성운동을 지지하는 지역이나 우파 정치인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에 표를 던진 지역 모두 강력한 '개헌 반대' 지역으로 나타났다.
오성운동의 집권은 지금 당장도, 다음 선거에서도 어려울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단일 정당이 정부를 구성하기 어렵게 만드는 비례대표제로 선거법이 개정될 예정이고, 연정이 계속된다면 오성운동이 자리를 차지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결국 새로운 이탈리아 정부는 렌치 정부가 했던 대로 EU에 친화적인 정책을 펼칠 가능성이 높다. 가디언은 "이탈리아는 유럽의 불안정한 도미노가 될것 같지 않다"고 논평했다.
[뉴스핌 Newspim] 이고은 기자 (goeu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