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정광연 기자] SK그룹은 지난 1월중순 4대그룹 중 가장 먼저 투자 및 채용 계획을 발표했다. 투자규모는 역대 최대인 17조원이며 채용은 8200명이다.
매년 진행하는 투자와 채용이 무슨 큰일이냐고 반문할수도 있다. 하지만 “떨어지는 낙엽도 무서워 한겨울 앙상한 나무밑조차 피해 간다”는 대기업 관계자의 농담 섞인 푸념이 씁쓸한 시국을 감안하면 남다르게 다가오는 결정이다. 극에 달한 반기업 정서, 그 탓에 모두가 웅크리던 와중에 조용하지만 신속하게 내린 ‘선택과 집중’이기 때문이다.
SK의 변화는 공격적이다. 이미 SK(주)와 SK이노베이션이 LG실트론과 다우케미컬 에틸렌아크릴산 사업 인수에 각 6200억원과 3억7000만달러(4200억원)을 투자했다.
또한 SK(주)는 중국 3위 소 전문 축산업체 커얼친우업의 지분 27% 인수(약 800억원)를 검토중이다. SK이노베이션은 중국 상하이세코 지분 50% 인수를 위해 1조5000억~2조원의 실탄을 준비했다. SK하이닉스는 도시바 반도체사업 지분 매각 입찰에 3조원 이상을 제안한 상태다.
투자, 특히 인수합병(M&A)는 양날의 검이다. 성공과 실패에 따른 파장이 극명하게 갈린다. 어지러운 국내 환경과 혼란스러운 글로벌 경제라는 악재가 겹쳤음에도 불구하고 SK는 역대 최대 투자를 결정했다. “변화는 변하지 않는 가치”라고 강조한 최태원 회장의 철학에 충실한 결과다.
흥미로운 건 외적으로는 공격적인 변화를 주문한 최 회장이 내부에서는 부드럽고 유연하게 결속을 다지고 있다는 점이다.
최 회장은 올해 1월 신입사원 연수행사에 직접 참가해 젊은 인재들과의 소통을 강화했다. 이 자리에서 최 회장은 SK텔레콤의 음성 인식 인공지능(AI) 스피커 ‘누구(NUGU)’를 소개하며 새로운 트렌드에 익숙해질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지난 22일에는 승진 임원들과 만찬 행사를 열고 그룹의 미래를 위한 이야기를 나눴다. 교통과 바이오, 신 에너지를 성장 키워드로 제시한 최 회장은 그룹의 중심인 임원들의 역할을 거듭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통을 기반으로 한 행보로 그룹의 역량을 집중시키는 모습이다.
'최순실 게이트'의 불똥이 재계로 옮겨붙으며 주요 그룹들이 한순간에 공공의 적이 됐다는 푸념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기업은 위축되고 시장은 얼어붙었다.
이럴때일수록 조용하지만 힘있는 발걸음이 필요하다. 날선 비수가 끊임없이 날라오고 있지만 그래도 묵묵히 가고자 하는 길을 가겠다는 뚝심말이다. SK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최 회장의 우직한 행보는 기억에 남을 듯 하다.
[뉴스핌 Newspim] 정광연 기자(peterbreak2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