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이영태 기자] 헌법재판소가 재판관 8명 만장일치로 파면한 박근혜 전 대통령이 12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사저로 복귀하면서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며 사실상 헌재 탄핵선고에 대한 불복을 시사해 조기 대선을 앞둔 한국 사회에 상당한 정치적 파장이 예상된다.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으로 청와대를 떠난 박근혜 전 대통령이 12일 오후 서울 삼성동 사저에 도착한 후 지지자들과 웃으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사진=뉴시스> |
박 전 대통령은 이날 저녁 7시54분경 삼성동 사저에 도착한 직후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민경욱 자유한국당 의원을 통해 통해 이 같은 메시지를 전했다.
박 전 대통령은 민 의원이 대독한 대국민메시지를 통해 "제게 주어졌던 대통령으로서의 소명을 끝까지 마무리하지 못해 죄송하게 생각한다"며 "저를 믿고 성원해 주신 주민 여러분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결과에 대해선 제가 안고 가겠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고 있다"며 사실상 헌재 파면 결정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 전 대통령의 발언은 지난해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이후 "사익을 추구한 바 없다"며 헌법과 법률 위배 혐의를 일관되게 부인해온 연장선상에서 향후 검찰 수사 및 형사 재판 과정에서 헌재 판결에 승복하지 않고 적극적인 법적 투쟁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박 전 대통령이 현직에 있는 청와대 정연국 대변인이 아니라 전직 대변인인 친박계 여당 국회의원을 통해 불복 의지를 담은 대국민 메시지를 대독시킨 것은 향후 법적 투쟁 과정에서 정치적 파워게임까지 불사하겠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날 정 대변인이 청와대 출입기자들에게 전달한 박 전 대통령 퇴거관련 공식 메시지는 "박근혜 대통령은 오후 6시30분 경 비서실장, 안보실장, 경호실장 및 각 수석들과 티타임을 갖고, 오후 7시 경 녹지원 앞길에 전송을 나온 비서실, 경호실 직원 등 500여 명과 걸어가면서 일일이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오후 7시20분 경 청와대를 출발했습니다"가 전부다.
청와대 현직 대변인이란 공식 라인을 통해선 정치적 의미가 담기지 않은 퇴거 사실만을 발표한 반면, 측근이라고 할 수 있는 '친박계' 현역 의원을 통해선 헌재 판결 불복이라는 강력한 정치적 메시지를 발신한 것이다.
◆ 야4당, 일제히 박 전 대통령 비판…여당은 묵묵부답
정치권도 일제히 헌재 판결 불복을 시사한 박 전 대통령의 대국민메시지를 비판하고 나섰다.
더불어민주당 윤관석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박 전 대통령 발언에 대한 구두논평을 통해 "사실상 헌법재판소 결정에 대한 불복 입장을 밝힌 것으로 볼 수 있다"며 "대단히 걱정스럽고 유감"이라고 꼬집었다.
윤 수석대변인은 "청와대에서 뒤늦게 퇴거했지만 마지막 모습에서 헌재 입장을 승복하고 존중하는 입장을 밝혀줄 것을 기대했지만 사실상 지지층에 대한 감사를 전했다"고 비판했다.
바른정당 조영희 대변인도 "헌법재판소 판결의 존중과 통합 메시지를 원했건만 본인 스스로의 입장표명도 없었다"며 "스스로의 입장 표명도 없이 대리인의 입을 통해 분열과 갈등의 여지를 남긴 것은 유감"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박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 최고 헌법기관인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엄숙하게 받아들이고, 그 결과를 존중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아울러 "아직 탄핵의 앙금으로 극렬 시위가 열리는 등 사회 불안감이 곳곳에 남아 있다"며 "여전히 양 극단에서 대선주자를 비롯한 일부 정치세력의 불복과 선동의 언행은 지도자로서의 자질 부족과 무책임한 행태로 퇴출되어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국민의당 장진영 대변인은 "박 전 대통령이 헌재 판결에 승복해 국민 통합에 기여할 것을 기대했지만 역시 허망한 기대였다"면서 "'진실은 밝혀진다'고 운운하며 끝내 헌재 결정에 불복한 것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논평했다.
장 대변인은 "대한민국은 법치국가고 헌재 결정에는 모든 국민이 승복해야 법치국가 국민의 자격이 있다"며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 사상 초유의 탄핵을 당해놓고도 자신의 잘못을 깨우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박 전 대통령 개인의 불행을 넘어 국가의 불행"이라고 말했다.
정의당 한창민 대변인은 "박 전 대통령은 진실이 밝혀진다고 했지만 그 진실이 밝혀질수록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법적 책임은 더 커질 것"이라고 힐난했다.
한 대변인은 "아직도 엄중한 책임에 대해 자기 지지자들만을 위한 메시지를 냈을 뿐"이라며 "대국민 사과가 아니라고 판단한다"고 평가했다.
여당인 자유한국당은 박 전 대통령 메시지에 대한 별도의 입장을 발표하지 않았다.
다만 한국당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10일 헌재 탄핵선고 직후 기자회견에서 "한국당은 대통령 탄핵 인용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대한 책임을 통감한다"며 "집권여당의 비대위원장으로서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죄를 드린다"고 고개를 숙인 바 있다.
앞서 박 전 대통령은 이날 오후 7시16분께 청와대를 떠나 20분 만에 삼성동에 도착했다. 박 전 대통령은 삼성동에서 기다리던 최경환·윤상현 등 친박계 의원들과 이원종·이병기·허태열 전 비서실장 등 과거 청와대 참모진 등의 영접을 받고 잠시 대화를 나눈 뒤 사저로 들어갔다.
박 전 대통령이 삼성동 사저로 복귀한 것은 2013년 2월 25일 청와대에 입주한 지 1476일 만이다.
박 전 대통령은 '20오8206' 에쿠스 차량에 탑승해 이날 오후 7시16분께 청와대 정문을 출발, 삼성동 사저로 이동했다. 카니발 차량 등을 포함해 6대가 박 전 대통령의 뒤를 따랐다. 수행차량에는 허원제 정무수석과 배성례 홍보수석 등이 탑승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삼성동 사저로 들어간 직후 민경욱 자유한국당 의원이 박 전 대통령의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했다.
다음은 민 의원이 대독한 박 전 대통령 메시지 전문이다.
◆ 박근혜 전 대통령 대국민메시지 전문
제게 주어진 대통령으로서의 소명을 끝까지 마무리하지 못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저를 믿고 성원해주신 국민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이 모든 결과에 대해서는 제가 안고 가겠습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고 있습니다.
[뉴스핌 Newspim] 이영태 기자 (medialyt@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