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김범준 기자] A일보 기자 김모씨는 요즘 하루를 어떻게 '채울지' 계획 짜느라 분주해 보였다. 자고 일어나면 제로(0)에서 시작되는 하루. 김씨는 하루의 시작은 빈 도화지 혹은 빈 상자 같다고 생각한다. 기왕이면 멋진 그림과 의미있는 것으로 채워 마음 속 서재에 보관하고 싶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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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들은 스스로를 '하루살이'라고 표현한다. 매일 펼쳐지는 '백지'와 같은 지면·전파·온라인 공간을 기사와 보도로 메워야 하기 때문. 매일매일 발제(發題)하고 하루하루 마감하는 게 영락없는 하루살이의 모습이다. 김씨도 마찬가지였다.
"취재거리가 넘쳐나는 날, 단독(특종)을 쓰는 날은 1년 365일 중 며칠도 안된다"고 말한 김씨는 "그럼 나머지 대부분에 해당하는 '보통날'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뭘로 지면을 메워야 할 지가 항상 고민"이라고 했다.
이따금씩 의욕도 없고 기사거리도 없는 날은 하루를 대충 때웠다. 혹은 타성에 젖어 그저 그런 하루를 보내거나, 바쁜 일정에 끌려다니기도 했다.
그러자 자괴감이 밀려왔다. 도화지에 멋대로 물감을 뿌려 망치는 기분, 아니면 아까운 종이를 구겨서 그대로 쓰레기통에 버리는 기분이 들었다.
문득 소포클레스(Sophocles, BC.496~BC.406)가 생각났다고 한다.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 하루는 어제 죽어간 이가 그토록 바라던 내일이다." 김씨는 기왕이면 의미있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로 하루를 채워보기로 했다.
평소 로망이었던 바이올린을 배우기 위해 학원에 등록했다. 토요일 아침은 늦잠 대신 바이올린 음악으로 채우며 하루를 시작한다고 한다. 오후에는 카페에서 커피와 책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여유와 지식을 채운다. 저녁에는 가족 또는 지인들과 자리를 가지며 대화와 즐거움을 채운다.
1주일마다 스스로에게 '주간상'도 주기로 했다. 주중 단 하루라도 대충 보내지 않고 스스로 만족할 만한 기사를 써냈다고 생각이 들면 갖고 싶은 것을 사는 것이다. 소소한 탕진잼(탕진하는 재미)도 맛볼겸 해서다.
김씨의 방 한켠 진열장에는 펜, 진귀한 술, 프라모델 등으로 조금씩 채워져 가고 있다.
현대인들은 바쁜 일정과 반복되는 일상에 치여 그저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만다. 직장인은 매일매일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인다. 학생들은 학업과 각종 대내외 활동에 치이고, 취업준비생은 전쟁과 같은 공채일정에 치인다. 가정주부 역시 집안일에 치인다.
그저 다람쥐 쳇바퀴 돌듯 보내는 하루는 삶의 무료함을 가져온다. 대부분의 정신과 의사 또는 심리상담사들은 '중심'을 잡고 하루하루를 주도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반드시 무엇을 바쁘게 하지 않아도 여유를 즐길줄 아는 것도 필수라고 강조한다.
동심화(動心畵·읽는 그림)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멍석 김문태 화가(인덕대 외래교수)도 그의 저서 '그냥 -느리게 감상하고 조금씩 행복해지는 한글꽃 동심화'에서 '여유'를 이렇게 풀이했다.
소망하는 것 하나쯤 포기하기 / 꽉 채우지 않고 한 칸 비워두기 / 서두르지 않고 한 템포 늦추기
지금 이 순간이 찰나이고 / 당신이 전부라는 것을 / 깨닫기만 하면 되는 / 여유로운 삶
한 독자는 "항상 근심 걱정에 마음을 비울 여유를 가져보지 못했다"면서 "역설적이지만 비움으로써 하루를 채우는 법을 알게 됐다. 비운 공간에 의미있고 좋은 것으로 채워 나갈 것"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멍석 김문태 화가의 저서 '그냥' 중 일부 발췌. 출판 라의눈. 발매 2015.06.11. |
[뉴스핌 Newspim] 김범준 기자 (nunc@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