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박미리 기자] 14일 오전 7시30분. 서울 충정로 종근당 본사의 경비가 삼엄하다. 붉은색 벽돌 건물 층마다 2~3명의 경비원이 배치됐을 정도다. 평소 일을 시작하는 시간보다 2시간 가량 일찍 출근한 경비원들은 "무슨 일로 왔냐"고 일일이 물으며, 방문자들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했다.
이장한 종근당 회장이 14일 오전 서울 충정로 본사에서 최근 갑질논란과 관련 공식 사과했다. <사진=박미리 기자> |
운전기사들에게 상습적으로 폭언과 폭행을 일삼았다는 논란에 휩싸인 오너 회장님이 공식 입장을 밝히는 날이기 때문일 것이다. 전날 종근당에 몸담았던 운전기사들은 이장한 회장의 욕설이 담긴 녹취파일을 공개했다. 이 회장은 급히 본사에서 기자들을 소집해 사과의 자리를 마련한 상태.
10시가 되자 기자회견장은 100여명의 기자들로 북적였다. 종근당 관계자들은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굳게 다문 채 자리를 안내했다.
이 회장은 예정했던 시간보다 10분여 빨리 모습을 드러냈다. 굳은 표정으로 회견장에 들어선 그는 연단까지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고, 연단에 올라서자마자 먼저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했다. 이 회장은 "불미스러운 일로 찾아뵙게 돼 죄송하다"고 운을 뗀 뒤 3분 가량 사과문을 읽어나갔다.
그는 "이번 일로 크게 실망하셨을 평소 종근당을 아껴주시고 성원해주신 모든 분들, 그리고 종근당 임직원분들께도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이 모든 결과는 저의 불찰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한다. 한없이 참담한 심정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따끔한 질책과 비판을 모두 겸허히 받아들이고 깊은 성찰과 자숙의 시간을 갖도록 하겠다. 상처받으신 분을 위로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 또한 찾도록 하겠다"며 "이번 일을 통해 저 스스로를 돌아보고 반성함으로써 한 단계 성숙해지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사과문을 읽는 내내 이 회장의 얼굴에는 착잡함이 감춰지지 않았다. 그는 허리도 총 4번 깊이 숙이면서 진심을 전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가 읽은 사과문이 277자로 다소 짧았던 데다, 이 회장이 별도 질의응답도 받지 않고 황급히 회견장을 빠져나가면서 장내는 일순간 험악해졌다. 떠나는 이 회장의 등 뒤로 "질의응답 안 받습니까?"라는 취재진의 날선 목소리가 사방에서 쏟아졌다.
이 회장은 피해 운전기사들에게 사과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묻는 질문에만 "피해자들을 만나러 갔지만 받아주지 않아 만나지 못했다"며 "만나서 하는 방법을 강구할 것"이라고 대답을 남겼다. 다른 질문에는 응답하지 않은 채 회견장을 떠났다.
이날 이 회장이 꺼낸 '깊은 성찰과 자숙의 시간을 갖겠다'는 말도 퇴진을 뜻하지는 않는다는 설명이다. 종근당 관계자는 "아직 이 회장의 거취에는 변동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전날 한겨레신문에 녹취파일에 따르면 이 회장은 과거 운전기사들에게 "도움이 안 되는 XX. 요즘 젊은 XXX들 빠릿빠릿한데 왜 우리 회사 오는 XX들은 다 이런지 몰라" "아 XX 참 거. 운전하기 싫으면 그만둬 이 XX야. 내가 니 똘마니냐 임마?" 등의 폭언을 퍼부었다.
종근당은 현재 폭언 여부에 대해서는 인정했고, 일부가 주장한 폭행은 부인한 상황이다.
이 회장은 종근당 창업주인 이종근 회장의 장남이다. 1952년생으로 미국 미주리대 대학원 언론학을 마친 뒤 안성유리공업 상무, 한국로슈 상무, 한국롱프랑로라제약 대표 등을 역임했다. 종근당에는 1993년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입사했다. 부친이 별세하면서 1994년 대표이사 회장에 올랐고 현재까지 회사를 이끌고 있다.
종근당은 지난해 매출 8320억원의 상위 제약사다. 진통제 '펜잘', 발기부전치료제 '센돔' 등의 제품이 유명하다. 1941년 궁본약방이 전신이고, 1946년 종근당약방으로 상호를 변경한 뒤 1956년 종근당제약사로 법인 전환했다. 2013년에는 기존 종근당을 인적분할해 투자회사인 종근당홀딩스(존속), 사업회사인 종근당(신설)으로 설립됐다.
[뉴스핌 Newspim] 박미리 기자 (milpark@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