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 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아마존을 필두로 로보틱스와 인공지능(AI) 등 신기술로 무장한 IT 기업들이 미국의 임금 상승을 압박, 일본식 디플레이션을 초래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재닛 옐런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 증언에서 저조한 인플레이션을 빌미로 ‘비둘기파’ 발언을 내놓는 등 정책자들이 꿈쩍 않는 물가에 골머리를 앓는 가운데 나온 의견이어서 관심을 끌고 있다.
아마존의 인공지능 '알렉사'와 연동한 폭스바겐의 커넥티드카 서비스 <사진=김겨레 기자> |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메릴린치는 투자 보고서를 통해 아마존을 필두로 한 IT 기업들이 임금 상승을 억제, 과거에 비해 제조 품목과 서비스의 가격을 떨어뜨리는 형태로 디플레이션을 부추기고 있다고 진단했다.
자동화와 로보틱스 등 신기술이 임금 상승 기대치를 떨어뜨리고, 기업들이 비용 감축에 무게를 두는 등 실물 경제의 ‘아마존화’가 뚜렷하다는 지적이다.
아마존은 소매 업계를 뿌리째 흔들며 전통적인 시장 매커니즘을 깨뜨렸고, 대형 가전부터 식품까지 유통 업계에 구조적인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이는 각종 소비재와 서비스의 가격을 떨어뜨려 성장률 및 고용 회복에도 인플레이션이 정책자들의 목표 수준에 이르지 못하도록 한다는 것이 BofA-메릴린치의 주장이다.
실제로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6월 비농업 부문의 시간당 평균 임금 상승률은 연율 기준 2.5%에 그쳤다.
또 5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는 0.1% 밀린 뒤 6월 제자리 걸음에 그쳤다. 시장 전문가들은 0.1% 상승을 예상했으나 기대가 어긋난 셈이다.
BofA-메릴린치는 미국의 인플레이션 상황이 소위 ‘잃어버린 10년’을 겪은 일본과 흡사한 형태로 전개되고 있다고 판단했다.
미국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지난 3년간 100bp의 박스권에 갇혔고, 달러/엔 환율 역시 100~120엔의 영역을 4년째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같은 기간 월가의 공포 지수로 불리는 CBOE 변동성 지수(VIX)는 10~25에 머물고 있다.
이들 세 가지 금융 지표가 장기간에 걸쳐 좁은 박스권을 뚫지 못하는 것은 미국 경제 사이클이 강력한 성장과 인플레이션 상승을 창출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시사한다고 BofA는 강조했다.
IT 업계가 전통적인 경제 질서를 헤집어 놓은 데 따른 충격을 희석시키기 위해서는 정책적인 측면에서 파격적인 대처가 요구된다고 BofA는 강조했다.
마이클 하트네트 전략가는 보고서에서 “로봇에 대해 과세하는 방안이나 실리콘밸리의 IT 업체에 대한 세금 인상, 아울러 최저임금제 등의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뉴스핌 Newspim] 황숙혜 뉴욕 특파원 (higrac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