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뉴스핌 오승주 기자] 19일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발표한 문재인 정부가 ‘증세없는 복지’로 가닥을 잡으면서 논란이 커질 전망이다. 5년간 100대 국정과제 실천에 필요한 재원 178조원을 증세없이 마련하겠다는 구상에 ‘현실 외면’과 ‘포퓰리즘적 발상’이라는 지적도 있다.
당장 정부내에서도 쓴소리가 나온다. 김부겸 행정자치부 장관은 20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재정 당국에서 내놓은 재원조달방안은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며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소득세 최고구간은 조절하겠다고 했고 법인세율도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검토하겠다고 했는데 너무 약한 것이 아닌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해내지도 못하는 지하경제 양성화, 이런 얘기 말고 소득세율 조정 등 증세 문제를 갖고 정직하게 얘기하고 국민 토론을 요청해야 한다”며 “표 걱정한다고 증세 문제 얘기는 안 하고 복지는 확대해야 하는 이 상태로 언제까지나 갈 수는 없지 않으냐”고 덧붙였다.
19일 오후 '100 + 새로운 대한민국' 국정과제 보고대회가 열린 청와대 영빈관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국정운영 5개년계획을 보고한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장에게 박수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
◆ 세수 자연증가로 '증세없는 복지 실현'?
국정자문위원회가 19일 발표한 ‘문재인 정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100대 국정과제)에서는 178조원이 들어갈 것으로 추산했다. 재원 조달 방안은 크게 세입확충과 재정지출 효율성 두 가지로 나뉜다.
세입확충을 통해 82조6000억원, 재정지출 효율성 증가로 95조4000억원 등 178조원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불필요한 씀씀이는 줄이고, ‘소득주도 성장론’이 선순환을 일으켜 내수 등이 살아나면서 자연스럽게 걷히는 세금이 늘어나면 재정확보에 문제가 없다는 설명이다.
국세수입으로 77조6000억원을 충당하는데, 이 가운데 77%(60조5000억원)이 세수 자연증가분이다. 프랜차이즈 ‘갑질’ 등을 바로잡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을 통해 국민 소득이 늘어나고, 내수시장 활성화를 통한 소득세와 부가가치세, 법인세 등 국세가 증가한다는 계산이다.
나머지 세수는 대기업 비과세와 감면 항목을 줄이고 탈루소득 과세 강화 등을 통해 17조1000억원(11조 4000억원, 5조7000억원)을 충당하고, 불공정 거래행위 과징금 상승 등 세외수입으로 5조원을 만든다는 방침이다.
줄이는 부분은 5년간 60조2000억원이다. 4대강 사업처럼 대규모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을 하지 않으면서 재정을 확보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 국세 자연증가에 기대...믿어도 되나?
문제는 허리띠 졸라매고 살아나는 경제를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증가되는 세금으로 178조원에 달하는 복지재원을 마련하겠다는 구상이 가능하겠느냐는 것이다.
일단 겉으로 보면 재원조달은 ‘증세 없이도 가능해’ 보인다. 지난해와 올해 세수가 늘어나며 세입 측면에서는 문제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재원 조달의 빅포인트로 삼은 것은 국세 자연증가분이다. 국세 증가 예상치 77조6000억원 가운데 세수 자연증가분은 60조5000억원이다. 단순 평균으로 연간 12조1000억원씩 늘어나야 한다.
세수 자연증가분은 일반적으로 경제성장에 따른 국민소득 향상에 의한 소득세, 활발한 기업활동에 따른 법인세, 소비 증가에 따른 부가가치세, 부동산 거래에 따른 양도소득세, 석유 등 가격 하락에 따른 유류 에너지세 등 증가를 일컫는다. 경제가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예산보다 더 확보되는 세수다.
지난해에는 예산계획에 비해 24조7000억원의 국세가 더 걷혔다. 올해는 5월까지 11조원이 걷혀 현재 경기 상황들을 고려하면 연말까지 무난하게 20조원 이상이 확보될 전망이다.
정부가 발표한 ‘증세없는 복지’를 국세 부분만 놓고 한정해 보면, 단순하게 연평균 15조5200억원이 필요한데, 국세 자연증가분 등을 고려하면 세입 측면에서는 ‘5년간 77조6000억원 국세 추가 증가’라는 목표 달성이 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지난해 정부 세입 세출 결산표를 살펴보면, 세금이 당초 예산보다 큰 폭으로 증가하기는 했지만 세목별로는 ‘연속성 있는 자연증가분’을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가 곳곳에 숨어 있다.
기획재정부의 ‘2016회계연도 세입 세출 마감’에 따르면 지난해 국세 수입은 242조6000억원으로 집계됐다. 당초 예상치(232조7000억원) 대비 9조8000억원(4.2%) 증가했고, 2015년 국세(217조9000억원)와 비교하면 24조7000억원 늘었다.
올해도 세금은 잘 걷힌다. 올해 5월까지 국세는 11조원이 확보됐다. ‘증세없는 복지’의 근간인 국세수입 충당이 원활히 이뤄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지난해 세입 세출을 들여다보면 특이한 점이 눈에 띈다. 외부효과 등에 취약한 세목에서 큰 폭의 세금이 걷혔다는 점이다. 양도소득세와 교통에너지환경세 등이 목표예산에 비해 큰 폭으로 증가하면서 세수를 늘렸다.
양도소득세는 2015년 11조9000억원이 걷혔다. 하지만 2016년 예산에서 부동산 시장 활황을 예상하지 못하고, 당초 11조1000억원을 정부는 세수 목표로 삼았지만, 실제로는 13조7000억원이 걷혔다. 정부는 초과 달성 원인으로 ‘부동산시장 호조’를 지목했다.
유가 하락에 따른 교통, 에너지, 환경세는 전년 대비 1조2000억원(8.9%) 상승한 15조3000억원이 걷혔다. 유가 하락으로 휘발유와 경유 소비가 증가한 이유가 컸다.
양도소득세와 에너지세를 더하면 29조원이다. 2016년 전체 국세(242조6000억원)의 12%를 차지한다.
기획재정부가 짠 2017년도 국세 예상수입은 242조3000억원. 올해 5월까지 국세수입은 123조8000억원으로 전년 동기에 비해 11조2000억원 더 걷혀 순항중이다. 올 들어서도 여전히 부동산 거래 증가(양도소득세) 등 영향으로 소득세가 1조8000억원 늘었다.
현재 상태로 세금이 걷히면 이뤄지면 '100대 국정과제'는 증세없이도 순조롭게 이뤄질 전망이다. 하지만 '늘 이대로 좋을 수만은 없다'는 것이 지배적인 관측이다.
양도소득세와 에너지세 등은 부동산과 해외 원유가격 급변 등 대내외적 상황에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는 최근 부동산 규제 정책을 내놨다. 날로 뛰는 집값을 잡겠다는 의지는 읽히지만, 규제를 강화하면 지난해와 올해 국세 증가를 이끈 양도소득세 증가분이 대폭 떨어질 것은 당연하다.
또 유가가 현재는 하락 보합세로 낮은 수준이지만, 국제 정세에 따라 급등할 경우 교통 에너지세의 감소도 피할 수 없다.
정부는 경제가 성장하면서 자연적으로 더 걷힐 것으로 추정세수를 고려해 조달 계획을 짰는데, 경기가 꾸준히 좋아진다는 보장이 없고, 글로벌 금융위기 등과 같은 돌발변수 발생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3년 연속 세수 부족사태를 벗어난 게 겨우 2년 전인데, 너무 희망적인 재원조달 정책을 내놨다는 반응이 중론이다.
세금을 깎아주거나 내지 않는 비과세·감면(11조4000억 원)을 줄이고, 탈루소득 과세 강화(5조7000억 원) 방안도 앞선 정부에서 모두 해왔던 방식이지만 이를 통한 추가 재원 확보도 한계점에 부딪혔다는 평가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지금이라도 솔직하게 '증세'를 논의하고 국민들의 설득을 구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국세를 비롯한 세수는 국내외 정세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며 “여러 상황에 따라 소비심리가 위축되면 지갑을 닫는 게 사람 심리인데, ‘증세없는 복지구현’이라는 장밋빛 계획만 쏟아낸 듯 하다”고 꼬집었다.
[뉴스핌 Newspim] 오승주 기자 (fair77@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