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심하늬 기자] # 회사원 A씨. 2년여 준비 끝에 겨우 취업했지만, 다음 달 회사를 그만둘 계획이다. 회사는 5개월밖에 다니지 않았다. 그는 취업 준비 기간이 길어지자 눈을 낮췄다.
그러나 적은 월급과 잦은 야근, 여기에다 비전마저 안보인다. '회사는 전쟁터, 회사 밖은 지옥'이라는 말이 정말일까 두렵지만 A씨는 '지금이 아니면 그냥 계속 이렇게 살게 될까 봐' 하루빨리 회사를 그만둘 생각이다.
# '퇴준생(퇴사준비생)' 2년 차 직장인 B씨는 최근 한 IT회사의 신입사원 면접을 보러갔다가 놀랐다. 발표 면접에서 같은 조가 된 지원자 3명이 모두 1~2년차 직장인이었던 것. 월차를 내고 왔다는 동료 지원자의 말에 '나같은 사람이 많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퇴사를 꿈꾸는 20~30대 신입사원이 늘고 있다. 지난달 한국고용정보원과 청년희망재단이 만 19~34세의 취업초년생 52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85%가 이직을 고민 중인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경영자총협회의 '2016년 신입사원 채용실태 조사'에서도 대졸 신입사원의 1년 내 퇴사율은 27.7%에 달했다. 신입사원 4명 중 1명이 입사 후 1년 안에 회사를 떠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시대적 조직 문화', '일과 생활의 불균형', '맞지 않는 직무' 등 이유는 다양하다.
<사진=Getty Images Bank> |
개인적인 시간을 존중하지 않는 조직 문화 탓에 많은 신입사원들이 퇴사를 결심한다. 온라인 직장인 커뮤니티 등을 살펴보니, 상사가 주말에 사내 동호회 참석 등을 강요하며 사생활을 침해해 고민하는 젊은 직장인들의 게시글이 전체 불만글 중 20~30%를 차지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과거 세대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회사 중심 문화가 사생활을 중시하는 요즘 세대에게는 굉장한 스트레스가 된다"며 "심할 경우 이직이나 퇴사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실제 지난 3월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구직자 2935명을 대상으로 '직장 선택의 기준'에 대해 설문한 결과 경력직은 연봉 수준(24%)을 1순위로 꼽았지만, 신입직은 근무시간 보장(24.8%)을 1순위로 꼽았다. 젊은 세대에게는 돈보다 '워라밸(워크앤라이프밸런스·일 생활 균형)'이나 삶의 질이 더 중요한 가치라는 것을 보여준다.
전체 대기업 중에서도 초봉이 최상위권에 속하는 기업에 취직했던 이모(32)씨도 채 1년이 되지 않아 회사를 퇴직했다. 버는 돈이 많은만큼 주말도 휴일도 없이 회사에 매여 있어야 했다. 이씨는 공기업을 꿈꾸며 퇴사했다가 우연히 찾게 된 사업 아이템으로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13일 오전 서울 중구 을지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금융권 공동 채용박람회가 구직자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김학선 기자 yooksa@ |
'취업난'이어서 조기 퇴사를 하기로 마음 먹었다는 이들도 존재한다. 취업난에 취업 준비생들이 선망하는 대기업에 입사했던 최모씨(28)는 입사 6개월만에 회사를 그만뒀다.
이런 취업 불경기에 회사를 그만두냐는 만류도 있었지만, 최씨의 퇴사 이유는 오히려 '취업난'이었다.
최씨는 "취업난이라는 이유로 내게 맞는 직무와 조건을 잘 살펴보지 않고 취업했던 탓에 조기 퇴사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실제 입사 후 1년 이내 조기 퇴사한 이들 가운데는 취직이 급해 맞지 않는 곳에 취업했다 퇴사하게 된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가 하면 이같은 조기 퇴사 움직임을 탐탁지 않게 보는 시선도 있다. 최근 온라인상에서는 'YOLO(욜로) 찾다 골로 간다'는 말이 유행이다. 한동안 열풍이었던 욜로(YOLO·You Only Live Once·인생은 한번뿐)가 현재의 행복에 충실할 것을 권하며 조기 퇴사를 장려했다면 최근에는 이같은 말이 무책임하다는 인식이 번지고 있다.
최근 온라인에서는 '욜로하다 골로간다'는 말이 유행이다 <사진=MBC '무한도전' 캡처> |
3년차 직장인 박민지(29)씨는 "최근 SNS 콘텐츠 등을 보면 조기 퇴사하고 꿈을 찾아 새 인생을 찾았다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면서 "사람들은 '꿈을 찾아라', '마음의 소리를 들어라'라고 쉽게 말하지만 꿈을 찾는 동안 월세나 생활비를 어떻게 충당해야할지 등에 대해서는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했다.
취업준비생 유모(25)씨는 "이직을 준비하는 1~2년차 직장인들을 면접에서 자주 본다"며 "퇴사와 이직을 준비하는 마음은 이해할 수 있지만, 취업이 너무 어려운 나머지 그럴 거면 처음부터 누군가에겐 절실했을 자리를 왜 뺏었느냐 하는 원망이 들 때도 있다"고 했다.
[뉴스핌 Newspim] 심하늬 기자 (merongya@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