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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뉴스핌 권지언 특파원] 지난 50여년 동안 1순위 안전자산으로 손꼽히던 미국 달러화의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
지난 24일 자 금융전문지 인스티튜셔널 인베스터는 정치, 경제, 금융 혼란 시기에 투자자들이 달러 매입을 안전한 선택으로 여기던 시절은 지났다며, 대신 엔과 유로가 안전자산으로 각광받는 모습이라고 강조했다.
통화리서치 업체 포린익스체인지 애널리틱스의 데이비드 길모어는 달러가 엔과 유로에 안전자산 지위를 내주고 있는 최근 흐름을 지적하며 “아마도 달러는 더 이상 당연한 안전통화로 여겨지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올해 시장에서 리스크 회피 심리를 자극하는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트레이더들과 투자자들이 달러 대비 엔과 유로화 매입에 나선 덕분에 달러/엔 환율은 연초 대비 3% 넘게 떨어졌고 유로/달러 환율은 12% 넘게 올랐다.
유로/달러(주황선) 및 달러/엔(파란선) 환율 1년 추이 <출처=블룸버그> |
◆ 엔·유로 선호 배경은
전문가들은 시장 심리가 불안해 질 때마다 투자자들이 엔과 유로를 선택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고 판단했다.
우선 일본과 유로존에서는 꾸준한 경상수지 흑자 흐름이 관측되고 있다. 미국이 계속해서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 G10통화전략 대표 아타나시오스 밤바키디스는 일본과 유로존에서의 경상수지 흑자는 해당국 투자자들이 해외에 상당한 자산을 보유하고 있어 ‘리스크 오프’ 시기가 왔을 때 해당 자산을 팔고 국내 통화에 재투자할 여력이 있음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의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1827억7000만달러 수준이었고, 유로존의 경우 올 1월까지 12개월 누적 경상수지는 3750억달러(당시 환율 기준)를 기록했다. 반면 미국은 지난해 4812억달러의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한 바 있다.
미국이 지지부진한 성장세로 투자 실망감을 안기는데 반해 유럽과 일본 경제가 기지개 신호를 보이고 있는 점도 유로와 엔에 신뢰감을 실어주는 요인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일본 경제 성장률이 1.3%로 작년의 1%보다 가속화할 것으로 내다봤고 유로존은 올해 1.9% 성장률로 지난해의 1.8%보다 개선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 트럼프 공약 불이행·연준 정책 정상화 부담
달러화 <사진=블룸버그> |
미국의 경우 감세나 인프라 지출 등 트럼프 공약 정책들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는 데다 재정 정책도 마비상태가 되면서 투자 분위기를 흐리고 있다.
브라운 브라더스 해리먼 외환전략가 마크 챈들러는 “트럼프와 미국 정책에 대한 의구심이 들면서 투자자들이 달러 대안 통화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연방준비제도(이하 연준)의 대규모 양적완화 프로그램이 9년 넘게 이어지면서 달러가 시중에 너무 많이 풀려버린 점도 달러의 안전자산 지위를 위협하는 요인으로 꼽혔다. 연준의 재무제표는 4조5000억달러로 4배가 넘게 불어난 상황.
트레이더들이나 투자자들이 엔과 같은 저금리 통화를 사용해 미국이나 신흥국 증시와 같은 리스크 자산을 사들였는데 시장 긴장이 높아질 때 이들이 리스크 자산을 팔고 자금조달 통화를 다시 사들이는 것도 엔과 유로 수요 확대의 배경이라는 설명이다.
물론 일각에서는 올해 달러 약세가 나타났다고 해서 안전자산 지위가 축소된 것은 아니라는 주장도 나온다. 하버드 케네디스쿨 교수 제프리 프랭켈은 안전자산이라고 무조건 오르기만 하지는 않는다며, 올 초 이후 9월 말까지 CBOE 변동성지수가 29.7% 하락하고 같은 기간 미국채 대비 고수익 회사채 수익률 프리미엄이 하락한 점을 지목했다.
도이체방크 수석 이코노미스트 피터 후퍼는 미국채가 언제나 안전 자산으로 간주돼 왔는데 이를 사려면 달러가 필요하다며, 달러 지위가 흔들리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실제 가격과 반대로 움직이는 미국채 10년물 수익률은 올 초 이후 9월 말까지 14bp 떨어졌다.
[뉴스핌 Newspim] 권지언 시드니 특파원 (kwonjiu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