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핌=황세준 기자 ] 삼성전자가 17일, 창업주인 호암 이병철 선대회장의 30주기를 맞았다. 안팎으로 위기의식이 높은 현재, 공격적인 미래 먹거리 투자로 회사를 살렸던 그의 경영정신이 재조명받고 있다.
故 이병철 삼성 창업주 <사진=뉴스핌 DB> |
회사측에 따르면 이날 오전 용인 호암미술관 선영에서 이병철 창업주의 30주기 추모식을 개최한다.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물산 패션 사장, 김재열 제일기획 스포츠사업총괄 사장 등 가족과 삼성 계열사 사장단이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1910년 2월 12일 경상남도 의령에서 태어난 호암은 1987년 11월 19일 향년 78세로 세상을 떠났다. 호암은 1983년 이른바 ‘도쿄 선언’을 통해 오늘날의 삼성전자 초석을 깔았다. 도쿄선언 직후 반도체 사업 투자를 결정했고, 1987년 2월 기흥 반도체 3라인 건설 지시를 내렸다.
재계는 반도체 투자를 불황 속에서 미래를 내다본 '신의 한수'로 평가한다. 1983년 당시엔 반도체 D램이 없어 못 팔 정도로 호황이었으나 1985년부터 일본 업체들의 저가 공세에 반도체 가격이 급락했다.
경영진은 일제히 기흥 3라인 건설에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호암은 이를 기회로 봤다. 글로벌 동향을 정확히 읽고 미국과 일본 간 무역마찰이 벌어질 것을 예측한 뒤 내린 치밀한 결정이었다.
단지 감이 아니었다. 1960년대 후반부터 전세계 전자산업의 동향을 주시해온 그는 반도체 투자를 결정하기까지 수많은 전문가들의 의견 및 관련자료를 손 닿는 대로 섭렵하고 반도체와 컴퓨터에 관한 자료를 조사하고 검토했다.
호암은 1980년 7월 전경련 강연에서 "결심하기 전에는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지만 계획이 확정되면 과단성 있게 실행하는 것이 사업가의 기본태도"라는 어록을 남겼다.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공장 항공사진 <사진=삼성전자> |
예견은 적중했다. 미국의 압력으로 일본 반도체 기업들이 메모리 반도체 생산량을 25% 감축하면서 D램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다. 불황으로 일본 반도체 업체들이 투자를 중단했고 미국 D램 업체들도 손을 뗀 상태에서 글로벌 수요가 삼성전자에 몰렸다.
삼성전자는 3라인이 완공된 1988년에 그동안 투자한 비용과 설비에 대한 감가상각을 처리하고도 3200억원의 이익을 남겼다. 경기회복기를 대비해 오히려 공격적 투자에 나선 호암의 결단이 삼성전자는 물론 그룹 전체를 살렸다.
반도체 사업은 현재도 글로벌 1위 리더십을 바탕으로 삼성전자 영업이익의 절반 이상을 책임지고 있다. 올해 3분기 반도체 실적은 매출액 19조9100억원, 영업이익 9조9600억원이다.
잭 웰치 GE 전 회장은 호암에 대해 "대단한 의욕의 소유자다. 내가 호암선생을 만난 것은 이미 그가 노년에 접어든 이후였는데 젊은이보다 더한 진취적 의욕에 불타고 있었다"며 "기적이라 불리우는 한국 경제의 놀라운 성장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창업 3세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할아버지인 호암과 비슷한 행보를 보여 왔다. 2014년 5월 이건희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쓰러지면서 경영 전면에 나선 이 부회장은 미래 먹거리 중심으로 삼성의 사업구조를 변화를 모색했다.
지난해 고(故)이병철 선대회장의 추도식에 삼성그룹 사장단의 차량이 진입하고 있다. <이형석 사진기자> |
특히 하만 인수금액은 9조3000억원으로 삼성전자 창사 이래 최대, 국내기업의 해외기업 M&A 역사상 최대 규모다. 경기 불확실성 확대로 기업들이 투자를 줄이는 상황에서도 이 부회장은 '위기가 곧 기회'라는 판단으로 미래 먹거리에 집중하기 위한 통큰 결단을 내렸다.
그러나, 이 부회장이 올해 초 구속 수감되면서 이같은 행보에는 제동이 걸렸다. 삼성전자는 지난 16일 221명의 임원 승진인사를 단행하며 경영 정상화에 시동을 걸었으나, 경영진들은 '현재 여전히 위기'라고 입을 모은다.
시장에서는 반도체 호황이 2018년 이후 둔화된다는 전망이 이미 나오기 시작했다. 재계는 위기인 지금, 삼성전자 경영진들이 호암정신을 되새겨 사업 재편, 경영 시스템 변화, 기업윤리, 사회적 책임 등 4가지 방향성에 매진할 때라는 지직이다.
삼성전자는 이사회와 경영의 분리 등 그동안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선택하면서 이재용 뉴삼성 시대를 준비하는 중이다. 임원 인사는 변화를 수용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2010년 설정한 5대 신수종 사업을 재점검하고 소프트웨어 등 미래 먹거리를 설정할 골든 타임은 바로 지금이라는 진단이다.
삼성전자는 조만간 조직개편과 보직이동 등 임원인사 후속조치도 마무리할 계획이다. 다음달에는 김기남 사장(DS), 고동진 사장(IM), 김현석 사장(CE) 등 신임 부문장 주재로 글로벌 전략회의도 연다. 전략회의에서는 국내외 주요 경영진과 해외법인장 등 약 400~500명이 참석해 주력 사업부문의 초격차' 유지하는 방안을 집중 논의한다.
[뉴스핌 Newspim] 황세준 기자 (hsj@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