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김규희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된 가운데, 특검이 제기한 뇌물공여 혐의가 대부분 무죄로 판단되면서 박 전 대통령 등 ‘국정농단’ 관련자들 재판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서울고법 형사13부(정형식 부장판사)는 5일 뇌물공여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 부회장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한 1심을 파기하고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이 부회장은 박 전 대통령과 최씨에 뇌물을 공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즉 ‘뇌물 공여자’인 이 부회장의 항소심 재판 결과가 ‘뇌물 수여자’인 박 전 대통령 및 최씨에게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셈이다.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 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5일 오후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이형석 기자 leehs@ |
◇박근혜-최순실 공동정범 또 인정
1심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오랜 친분과 최씨가 국정운영에 관여한 점 등을 토대로 이들의 공동정범 관계를 인정했다.
2심도 둘의 공동정범 관계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은 이 부회장에게 뇌물을 요구하고, 최씨는 뇌물을 수령함에 더 나아가 승마지원을 통한 뇌물수수 범행에 이르는 핵심적 경과를 조종하거나 저지·촉진하는 등으로 지배해 박 전 대통령과 자신의 의사를 실행에 옮기는 정도에 이르렀다고 보인다”며 “이들은 뇌물수수죄의 공동정범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박 전 대통령과 최씨를 뇌물수수죄 공동정범으로 인정하면서 이들은 뇌물수수 혐의를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마필·차량 무상사용 이익만 뇌물 인정...朴-崔 수수액 줄어
특검은 이 부회장 등이 부정한 청탁의 대가로 박 전 대통령과 최씨가 실질적 지배권을 갖고 있는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을 위한 출연금 204억원을 뇌물로 공여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마필과 차량 무상사용 이익만을 뇌물로 인정하고 대부분의 뇌물죄 공여 부분을 무죄로 선고했다. 1심에서 재단 출연금 200여억원 중 89억원을 뇌물공여로 인정했으나 2심은 이를 전부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재판부는 “미르·K스포츠재단은 제3자뇌물수수죄에 있어 제3자에 해당하지만 피고인들은 장차 설립될 재단법인에 재산출연의 의사표시를 하고, 종국적으로 성립된 재단법인에 이 사건 각 출연금을 교부한 것이므로 박 전 대통령과 최씨가 설립하려는 재단의 출연금을 대납해 준 것으로 볼 수는 없다”고 밝혔다.
항소심 재판부가 코어스포츠에 건넨 용역대금 36억원과 최씨 측에 마필과 차량을 무상으로 이용하게 한 ‘사용 이익’만을 뇌물로 인정하면서 뇌물공여 액수가 크게 줄어들었다.
이에 따라 박 전 대통령 등 뇌물수수 재판에서도 유죄로 인정될 부분이 함께 줄어들 전망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1심 선고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이재용 부회장의 항소심 선고는 의미가 크다”며 “마필 및 차량의 사용 이익만 뇌물로 인정됐기 때문에 박 전 대통령 재판에도 비슷한 판단이 나올 수 있다”고 전했다.
아울러 재판부가 "이번 사건을 최고 권력자인 박 전 대통령이 기업을 겁박했고, 이 부회장 등이 요구를 거절하지 못한 채 거액의 뇌물공여로 나아간 사안"이라며 이 부회장을 사실상 피해자로 판단해 박 전 대통령 등 재판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왼쪽)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가운데), 최순실 씨(오른쪽) [뉴스핌DB] |
법조계에서는 이번 사건 외에도 박 전 대통령이 연루된 사건이 많은 만큼 법원의 판단을 지켜봐야 한다고 신중한 입장을 보인다.
서초동에 근무하는 한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이 뇌물수수 혐의 외에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과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사건 등에도 연루돼 있는 만큼 법원의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박 전 대통령 재판은 오는 20일 115차 공판을 열고 최순실씨를 증인으로 소환한다. 심리가 마무리에 다다르고 있어 이르면 3월 말이나 4월 초에 선고가 내려질 전망이다.
[뉴스핌 Newspim] 김규희 기자 (Q2kim@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