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오영상 전문기자] 신흥국의 주식·채권시장에서의 자금 유출이 심상치 않다. 2월 들어 불과 보름 사이 약 76억달러(약 8조원)의 자금이 빠져나갔다.
20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국제금융협회(IIF)가 인도, 인도네시아, 브라질 등 주요 신흥 8개국의 주식, 채권시장을 대상으로 집계한 결과 외국인 투자 자금은 1월 말 이후 유출 초과로 돌아섰다.
특히 2월 5~9일 한 주간에만 약 60억달러의 자금이 유출되면서 주간 기준으로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달러 강세가 가속화됐던 지난 2016년 11월 이후 가장 큰 규모를 기록했다.
신문은 “미국의 장기금리가 상승하고 주식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됨에 따라 기관투자자들이 신흥국에서의 운용 리스크를 회피하기 위해 선진국 시장으로 자금을 회수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신흥국에서의 자금 유출은 채권이나 주식 지수에서도 선명하게 드러난다. 달러화 표시 신흥국 채권 상장지수펀드(ETF)에서 세계 최대 규모인 ‘아이셰어즈 JP모간 미국달러 신흥국 채권 ETF’는 14일, 2017년 1월 이후 최저치 수준까지 떨어졌다.
주식시장에서는 MSCI 신흥국 주가지수(달러화 표시)가 하락 반전했다. 이 지수는 1월 하순까지만 해도 약 10년래 최고치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 신흥국 통화 약세도 두드러져
외환시장에서는 신흥국들의 통화 약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지난주에는 달러화에 대해 필리핀 페소가 2006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고, 인도네시아 루피아도 2016년 이후 최저치까지 떨어졌다.
자국 통화 약세 등을 미리 내다 보고 선제적인 대응에 나서는 신흥국도 나타나고 있다. 멕시코 중앙은행은 지난 8일 정책금리를 연 7.50%로 0.25%p 인상했다.
신흥국 정부와 기업들은 지금까지 미국의 금융 완화에 의한 저금리 환경을 이용해 달러화 표시 차입을 늘려 왔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금융 부문을 제외한 신흥국의 달러화 표시 채무는 2017년 9월 말 시점에서 약 3조 5200억달러로 10년 만에 2.4배가 늘어났다.
미국의 금리 상승은 자금 조달 비용 증가를 초래한다. 게다가 금리 상승과 함께 달러 강세가 함께 진행되면 신흥국의 채무 상환 부담은 더욱 커진다. 늘어난 채무만큼 투자자의 경계심도 높아진다.
1월에는 아르헨티나가 90억달러, 오만이 65억달러의 달러화 표시 국채를 발행했다. 미국의 시장조사 전문회사 딜로직에 따르면 신흥국의 채권 발행에 의한 자금 조달액은 996억달러로 전년 동월에 비해 30% 늘어나며 1월 기준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신흥국 자금 유출의 방아쇠가 됐던 미국의 장기금리 상승과 세계적인 주가 하락은 일단은 안정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금리 상승에 다시 탄력이 붙으면 주식시장은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 메릴린치의 클라우디오 이리고옌 전략가는 “미국의 금리 상승과 리스크 선호도 하락으로 신흥국 시장의 조정은 계속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뉴스핌Newspim] 오영상 전문기자 (goldendo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