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백진엽 산업부 재계팀장 = 잊을만 하면 등장한다. 대기업 총수 일가의 갑질 이야기다. 이번에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차녀인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가 갑질 의혹으로 도마 위에 올랐고, 경찰 수사까지 받고 있다.
조 전무는 광고기획사와 미팅 도중 업무상 견해 차이가 나자 상대 직원에게 언성을 높이며 물(또는 음료)컵을 던졌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게다가 대한항공과 한진그룹은 해당 사안을 은폐 또는 축소하려하면서 논란을 더욱 키웠다.
최근 기업인들 사이에서 "갈수록 기업하기 힘들다"는 볼멘 소리를 자주 듣는다. 이들은 경기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다는 점, 중국 수출에 대한 애로, 미국의 통상압박 등 대내외적으로 사업 환경이 어려운 점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로 '반 기업 정서'를 꼽는다.
한 대기업 임원은 "기업인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대기업은 숨만 쉬어도 잘못'이라는 농담이 나올 정도로 최근 기업이 느끼는 여론이 좋지 않다"며 "사업이 어려운 것보다 임직원들이 자괴감을 느낀다는 점이 가장 심각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물론 이번 정권 들어 '대기업=적폐'라는 프레임을 씌워 '규제의 대상'으로만 보려 한다는 우려가 커진 것은 사실이다. 기업을 국가 경제의 한 구성원, 또는 카운터파트너가 아닌 마치 범죄자로 여기는 것은 분명 잘못이다. 이로 인해 반기업 정서가 커지고 기업의 생명력이 약해지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하지만 단순히 반기업 정서를 정부탓, 일부 여론탓으로 돌려서는 안된다. 오히려 '땅콩 회항' '물컵 투척' '형제간 경영권 다툼' '운전기사 발길질' 등 총수 일가들이 보여줬던 일탈들이야말로 반기업 정서의 거름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말 대한상공회의소가 조사한 기업호감지수 중 대기업에 대한 수치를 보면 52.2로 긍정적인 수치가 나왔다. 기업호감지수는 50을 기준으로 이상이면 긍정적인 시각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지난해말은 사상 최대 수출과 경제성장률 상향 등 경제적 성과 덕에 호감지수가 높아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실제로 전년인 2016년말 조사에서는 대기업호감지수가 33.0에 그쳤다.
세부적으로 보면 경제적 성과에 대한 평가는 좋았지만, 사회적 기여나 윤리 준수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이 많았다. 전체 기업에 대한 호감지수는 55.8로 긍정적이었지만, 사회적 기여 부문은 46.5, 윤리 준수 부문은 44.4로 부정적인 시각이 많았다.
총수 일가의 갑질이나 일탈, 불법 또는 편법은 이런 부문에서 가장 큰 악영향을 준다. 한 순간의 실수 또는 잘못으로 인해 선대부터 쌓아온 경제적 성과가 물거품될 수 있는 것이다.
대한항공이 아무리 세계 최고 수준의 항공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해도, 조현아·조현민 자매의 갑질로 인해 "사명에서 '대한'을 빼라"는 항의가 나올 정도로 이미지가 추락했다.
"나는 아무리 큰 돈을 벌어준다고 해도 도덕적으로 믿을 수 없고 신용이 가지 않는 사람과는 함께 일하지 않는다." 세계적인 투자가 워렌 버핏이 투자대상 또는 파트너를 고르는 기준에 대해 한 말이다.
기업의 존재 이유는 '이윤 창출'이다. 부가가치를 창출해 구성원들과 주주에게 이익을 나누어 주고, 고용을 창출해 국가 경제를 활성화 시키는 것이 기업의 가장 근본적인 존재 가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정당함과 윤리가 기본이 돼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폭언을 내뱉고 물컵을 던진 후 "일에 너무 집중하다 보니"라는 변명은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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